다시 읽어도 소름 돋는다. 재미있다.

뒷심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스토리를 이끌어 가는 힘이 좋다는데 이견이 없다. 읽을 때 마다, 울컥 하니까. 이 카툰의 특징은 한 인간이 품은 희망과 꿈이 변질되고 좌절하는 과정을 통해, 야욕에 찬 얼굴이 어떻게 변하는가를 보여주는 사례라 할 만한 그림들이 포진해 있다는 것 이다. 400kg 달하는 금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각양각색 사람들의 얼굴이 처음과 다르게 일그러지고, 눈빛은 점점 충혈되고 광기에 들린 이들처럼 변해간다. 이 책의 제목처럼 간의 옆에 붙어 있지 않는 한 잉여의 존재밖에 되지 않는 '쓸개'로 허송세월을 보내다 주객이 전도 된 삶을 산다. 단, 주인공 쓸개를 포함한 예외적 인물 이정환의 행보는 조금 다른 물욕을 보이지만 인간의 선·악을 논하기에 앞서 물욕은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로 의식주를 범주하는 포괄적인 단어로 보아야 할 것이 아닌가 싶다. 그래야 어떤 면에서 그들의 부당 이득 취득이 보상이라고 볼 수 있을테니까.

 

전 3권으로 이루어진 이 카툰은, 소재의 참신성은 없다. 그런데 캐릭터는 김칠맛 난다. 거기에다 코믹함까지 있다.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터지는 웃음은 후반부에 무게감을 실어 주기 위한 포석으로 보인다. 모든 인과관계를 관통 했던 지옥의 굴레는 400kg의 금에서 잉태 됐고, 그것에 관계한 모든 이들의 삶을 나락으로 떨어트렸다. 분노로 삶의 터진을 일구었던 길학수의 욕망은 삐뚤어져 있었다. 그 안에 가족은 없다. 살기 위한 투쟁에서 부자가 되기 위한 광기에 휩싸여, 살육을 주저하지 않는다. 예전의 그는 성실하고 착실한 청년이었다. 큰 돈을 벌기 위해 옥희철 사장의 꼬드김에 넘어가기 전 까지는. 돈이 되지 않는 일에 회의를 느낄 무렵 찾아온 배신에 그의 야욕은 본격적인 질주를 시작했다. 그 무렵 조선족 김해영은 학수의 아이를 임신하고 출산했지만, 변해가는 그의 모습을 보며 살기 위해 금을 탈취해 한국으로 밀양하게 된다. 금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그의 몸부림은 살인과 폭력으로 그 수위를 넘었고, 반듯이 찾고야 말겠다는 의지가 그를 세실리아 흥업의 실세로 만든다.

 

드넓은 바다 한복판에서 하늘을 향해 꼴리는 대로 살고 싶다 외치는 마오수는 어찌보면 운명적으로 김해영과 마주하게 된다. 정신을 잃은 해영은 아이를 끌어 안고 있었고, 그녀를 본 오수는 첫 눈에 반해 지극 정성을 들여 그녀를 보필하고 아이의 아버지가 되어 준다. 하지만 가진 돈이 떨어지자 돈의 필요성을 절감했고, 그녀는 종로에서 30kg의 금을 처분하고 아이를 보호하기 위해 무적자의 신분으로 세상과 조우하게 한다. 고향 미신에 따르면 아이는 어미의 몸에서 떨어져 나온 살덩이니 신체기관이나 신체부위로 이름을 지어야 건강하고 효도한다고 해서 아이를 이름을 쓸개라 지었다. 한편 꼭꼭 숨어 살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해영의 불안감은 날로 커졌고, 이에 쓸개를 오수에게 맡긴채 숨어 버리게 된다. 쓸개는 오수와 20여년을 함께 했다. 그의 아내가 바뀌는 모습을 가까이서 지켜보며 환풍기 사이로 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키웠다. 그리고 오수의 마지막 유언을 들으며 삶의 전환점을 맞게 된다.

 

세상에 나오면 안되는 '금'을 통해 알게 되는 출생의 비밀과, 그 '금'을 갖기 위해 탐욕을 여과없이 들어내는 사람들의 얼굴을 통해 쓸개는 세상을 깨닫기 시작한다. 정계를 뒤흔드는 사건의 축의 되는 '금'. 갖고자 하는 자들의 마음을 이용하는 쓸개의 전략은 기가 막히게 절묘했고, 여동생 희재의 담력은 위기를 모면하는 카드로 그의 이복 오빠 마철수와 함께 극의 흐름을 바꾸는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개인적으로 마철수 역은 배우 유해진씨가 한다면 잘 어울리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아무튼 쓸개, 희재, 철수, 이정환 그리고 그의 똘마니 노랑이를 제외한 모든 이들의 얼굴이 변한다. 눈치 채지 못하게 아주 조금씩 일그러진다. 『살인자O난감』에서 이탕의 얼굴이 점점 변해 갔던 것 처럼, 처음의 의도와는 다르게 변질 되어가는 명분에 얼굴이 새까맣에 타오른다. 방향을 상실하고 맹목적으로 쫓기만 했던 금은 갖고자 하는 이들의 젊음이자 순수했던 시절의 황금기였기에 오싹할 정도로 표현력이 좋았던 그 시절의 조우는 박수가 절로 나올정도로 완벽했다. 하지만 이렇다할 반전이 없어 아쉬웠다. 정해진 루트의 진행은 진부하지 않으나 판돈이 커진 놀음판에서 다이를 외치고 나오는 꼴로 보인다. 날 뛰던 야수를 잠재웠던 금. 그것을 취하고, 다시 멀어지는 길(감옥)을 걸어가는 그의 모습은 언뜻 이해하기 힘든 장면이다. 그의 질주는 끝났지만 이제 시작하는 야수 정차식의 탐욕은 멈출 수 없는 굴레를 표현하는 것 같다.

 

영화는 어떤 느낌일까? 강형규 작가의 작품은 처음인데, 흡입력은 가히 최고다. 몰입도도 좋고. 등장 인물들의 얼굴과 눈동자가 잊혀지지 않는다. 나를 만나는 눈동자에 날카로운 송곳니만 가득한.. 그곳에 금이 있다고 말하는. 도취 되는 순간 잉여가 된다. goo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