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들을 잃은 아픔, 또 기와채 몇 십채값은 그냥 껌값인 어마어마한 재산 상속. 이 두 가지 키워드를 삼류 드라마에 공식처럼 대입하면 나오는 끝없는 방황과 방탕한 삶, 자포자기의 심정 등이 나올 법도 한데 전형필은 전혀 달랐다. 이 재산을 어떻게 쓸 것인지 고민하다 목표를 정했는데 일본으로 반출되는 문화재를 지키고 의미 있는 문화재를 한국에 남아 있게 하는 것이었다.

 그래도 아직 젊고 사회생활에 대해 어리다고 하면 어렸을 수도 있는 전형필이 목표를 정하고 그 목표를 위해 끝까지 노력할 수 있었던 것은 전형필을 도와주는 사람들과 조언을 주는 멘토 오세창, 목표를 향해 매진하면서 만났던 인연들 덕분이었을 것이다. 책 속에서 비쳐지는 전형필의 인품이라면 사람들이 절로 따랐을 것 같고 그렇기 때문에 귀한 인연들도 많이 만났을 수 있었을 것이다. 인상 깊었던 부분은 사회주의자들이 박물관에 전시할 의미 있는 문화재들을 모으는 전형필이 할 일 없어 보이는 돈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해서 많이 찾아와 돈을 내놓으라고 협박했는데 전형필이 문화재를 사느라 돈이 없다며 이 문화재라도 가져가겠소? 하는 것이었고 몇몇이 가져간 문화재들은 다시 전형필에게 돌아왔다는 부분이었다. 전형필의 인품이 어떠했을 지 짐작케 하는 부분이다.

 또 이 부분 외에도 여러 문화재를 모아가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전형필의 정확히 파악할 수 있는 안목과 현명함, 놀라운 결단력 등이 부러웠다. 이 책을 읽다보면 전형필이 문화재를 모으기 위해 얼마나 많은 어려움을 겪었는 지 여러 에피소드가 나오지만 가장 마음이 아팠던 것은 한국전쟁이었다. 일본에서 해방되어 드디어 원하던 독립이 왔지만 소수 권력층의 이기심으로 발발한 한국전쟁은 전형필의 재산과 애써 모은 문화재들을 뿔뿔이 흩어지게 했다.

 정말 그 상실감이 어떠했을 지 상상조차 가지 않는다.. 일제 치하 아래에서도 조심하고 조심하며 애써 정말 힘들게 모아왔던 문화재가 일제도 아니고 동포라 생각했던 사람들에 의해 잃어버리게 되었을 때 그 허탈함이 얼마나 컸을까? 전형필은 그 많은 재산으로 편안하고 안락한 부유한 삶을 살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미래의 후손들에게 우리나라의 찬란했던 자랑스러운 문화들을 간직해 보여주고 그 아름다움에 대한 자부심을 길러주기 위해 힘들지만 의미 있는 문화재들을 보존하는 길을 택한 것이었는데.. 아마 전형필이 오래 살지 못했던 것도 거기서 오는 일종의 배신감도 있었을 것 같고 그 복합적인 감정의 울화가 있었지 않았을까 싶다..

  ‘노블레스 오블리제’. 남들보다 더 많이 가진 사람들이 사회를 위해 갖춰야할 도덕적 의무인데 정말 그것을 실천으로 제대로 보여준 사람이 전형필이 아닐까. 문화재를 모으고 박물관 건립에 매진했을 뿐만 아니라 그는 교육 사업도 추진했었다. 충분히 편하게 살 수 있었을 텐데 그의 업적들은 세상의 시각으로 보기에 바보스러울만치 고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매우 높은 수준의 도덕 의식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그리고 상속받은 유산에 대해 사회를 위해 어떻게 쓸 것인지라고 생각할 수 있는 책임 의식이 없다면 전형필이라는 사람은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지금 이 시대는 일제 강점치하도 아니고 개인의 자유가 극대화된 세상인데도 전형필 같은 사람은 그저 이런 책에서밖에 볼 수 없다는 사실에 안타까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