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아프간 주둔중인 미군이 코란을 불태운 것으로 외신뉴스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나라

탈레반이 주둔했으며 전쟁의 갈등과 참변이 끊이지 않는 나라

여성인권이 열악한 이슬람 국가

'아프간'을 떠올려 본 느낌이다. 총선을 앞두고 많은 정치인들의 책이 나왔지만, 유독 눈길을 끈 건 아프간 최초로 여성 대통령이 될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들어서일까. 여성인권이 혹독한 나라인데 어떻게 여성이 정치가로 그것도 차기 대권주자로 거론될만큼 성장할 수 있었을까? 강한 호기심이 들었다. 니캅을 두른채 눈동자를 드러낸 표지를 보면 붉은 사막의 한 가운데 서 있는 것 같은 강렬한 느낌이 들었다.

 

두꺼운 책이라서 언제 다 읽어볼까 싶었는데 허겁지겁 읽었다. 술술 읽힌다.

잘 몰랐던 아프간의 역사의 일부분이 생생하게 전개됐고 파지아 쿠피를 둘러싼 가족들의 삶이 망막을 스쳐 지나갔다. 장엄한 서사시의 한편을 본듯 웅장한 파노라마가 펼쳐졌다.

파지아 쿠피 본인이 직접 책을 썼지만, 마치 다른 사람의 입을 빌려 얘기하듯이 한 사람의 생애가 피고 지는 모습을 관찰하듯이 담담하게 그려냈다. 이 책에는 아프간의 고단한 역사가 담겨있고 한 여인의 삶이 예리한 나이프로 난도질 당하듯이 '세상에 이런 일이'에 나올만한 기가막힌 이야기들이 담겨있었다.

 

1975년은 그녀가 태어난 해다. 여자로 태어난 이유로 사막에 버려져 죽을 운명에 처하다 가까스로 목숨을 구한 사연이 기구하다.

이슬람 문화에서는 일부다처제가 용인되고 4명의 부인까지 거둘수 있다고 하는데 파지아 쿠피의 아버지는 일곱명의 부인을 거느렸다. 아버지가 그 지역의 유지인 탓으로 다섯살때까지 부유한 삶을 살았던 그녀는 아버지가 당시 정부와 반목한 무자헤딘으로부터 죽음을 당한 후에 비로소 참혹한 비극의 시련이 시작됐다.

책에서는 국제 테러의 온상으로 지목받는 텔레반의 활약상에 대해 세밀하게 그렸다. 다민족으로 구성된 아프간 내전이 심화되면서 남부지역의 종교학교 '마드라싸'에서 탈레반이라는 이름의 조직으로 급부상했다. 이슬람 근본주의에 입각한 그들의 잔혹성은 아프간의 정신을 말살시키는데 주저함이 없었다. 박물관을 약탈하고 도서관에 불을 지르고 세계유산을 폭파시키고 TV와 라디오 방송을 선전 목적으로 이용하고 거리의 시민들을 학살했다. 저자는 탈레반이 파키스탄과 아프간의 남부 지방에서 시작된 조직이었지만 아프간이 아닌 아랍에서 온 사람들로 주로 구성된 범죄단체란 점을 계속 강조하는 것처럼 보였다. 

 

문맥상 파지아 쿠피의 어머니가 죽고 하미르와 결혼하기까지 난 나름대로 익숙하지 않은 이슬람 문화권의 낯설고 이질적인 느낌에 적응해야 했다. 지역 이름과 낯선 문화의 모습들, 그러나 남편 하미르가 탈레반에 끌려가고 탈출하는 과정에서 이들이 과연 살아날수 있을까 싶은 긴장감에 페이지를 넘기는 손가락에 땀에 배였다.

혹독한 고문으로 남편의 죽음을 맞이하면서 파지아 쿠피의 정치적 신념이 탄생했다.

국회의원 당선 과정과 의회 부의장에 오르기까지 여성으로서 하기 힘든 신념과 소신을 펼치는 그녀의 모습을 보면서 죽음을 담보로 하는 그녀의 정치적 여정의 뒤에는 남편 하미르가 있구나 싶었다.

 

파지아 쿠피, 그녀의 모습이 우리나라에도 많이 소개되면 좋겠다.

영어로 검색하면 쏟아지는 무수한 정보에도 불구하고 한글로 검색해 보면 그다지 알려진 바가 없다. 

그녀의 '국민을 대표하는 의원이라는 자가 중요한 투표를 돈으로 얻겠다고 생각할 수 있는가'의 질탄이 들리는 것 같다. 뇌물상납, 돈봉투사건, 전관예우를 일삼는 강자의 약탈을 당연시 여기는 국내 정치인들은 국민들의 가슴에 멍을 지를 뿐이다.  

 

이 책을 읽노라면 <연을 쫓는 아이>, <천 개의 찬란한 태양>가 생각난다.

아프간의 역사를 배경으로 한 두 소설을 읽은 사람이라면 파지아 쿠피와 자연스럽게 친해질 수 있을 것이다.

파지아 쿠피, 그녀의 이야기를 듣게 돼서 정말 다행스럽다.

누구의 말마따나 아프간에서 여성 대통령이 나온다면 그녀가 됐으면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