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라는 남자가 겪는 3일간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흔히 소설을 읽을때마다 주인공에 나를 대입시켜 상상의 나래를 펴기 일쑤인데, 이번에는 약간 서늘한 기운이 들어 애써 감정이입을 안하려고 애썼다.

다들 생각하기 나름이겠지만, 난 좀 무서웠다. 내가 익숙해져 있고, 또 살아가고 있는 이 현실에 대해 이게 가짜인가, 미래의 세계에서 지켜보는 과거시점일까 하는 상상을 할라치면 무서운 것 같다.

주인공 K는 그래도 용감한 것 같다. 자신의 기억속에서 사라진 몇시간을 기점으로 뭔가 석연치않은 현실에서 벗어나 익숙한 환경속에 살고 있는 나를 찾아나설수 있었으니 말이다.

토요일 아침 7시 자명종소리에 눈을 뜬 순간부터 K는 자신의 상실된 기억의 유무를 깨닫기도 전에 아마 그 공간안에 흐르는 낯선 공기를 감지했을지도 모르겠다. 아내와의 섹스도 낯설고 딸과의 포옹마저도 어색하다 느낄 정도면 정말 K는 낯선 시공간에 떨어졌는지도.

평소와는 다른 아내의 태도를 비롯하여 지금까지 써왔던 스킨이 아닌 다른 천박한 브랜드의 스킨을 대하는 순간 K가 느꼈을 그 공포감은 아무리 남의 일이라 생각해도 섬뜩한 기운을 저버릴수가 없다.

어떻게 보면 아주 미세한 일상의 변화일수도 있었을텐데, K는 어김없이 찾아내 자신의 평범했던 일상에 균열이 생겼음을 직감한것이다.

의사친구에게 가족이 낯설고 생소한 사람같다고 상담을 하게 되고, 그의 가족중에 가장 좋아했던 사람을 만나 이야기나눔으로써 정체성을 회복하라는 충고대로 누나를 찾아나선다. 예전의 K였다면 그런  충고를 받아들일리 만무하다. 그렇지만 연락이 뜸해졌던 누나와 어렵사리 만나 이야기를 나누면서조차 K는 두사람이 기억하는 과거의 모습이 다르다는 것에 다시한번 놀랐던 것 같다.

아무튼 K가 또다른 K의 존재를 알게 되고, 그와 함께함으로써 진정한 자아를 발견하는 것이 낯선 타인들과의 생활에서 벗어날수 있는 멋진 해결책이 아니었을까?

 

암투병으로 오랫동안 힘든시간을 보냈을 작가 최인호님이 이번에는 현대소설로 돌아오심을 환영하고, 그가 "내가 쓴 보잘것 없는 글들이 이 가난한 세상에 작은 위로의 눈발이 될 수 있도록, 그 누군가의 헐벗은 이불 속 한 점 온기가 되어줄 수 있도록, 나는 저 눈 내린 백지 위를 걸어갈 것이다."라고 말한것처럼 그의 글들이 우리에게 깊은 감명과 함께 괜찮다고 위로하고 격려해주는 위안처가 되었으면 하고 바라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