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읽게 되는 책의 폭이 그다지 넓은 편이 아닌지라 다양한 책읽기로 부터 얻어지는 풍부한 읽는 재미와 앎의 즐거움은 나와는 다소 거리가 먼 편이었다.

그 중에서도 일본 소설 분야에서는 불과 몇년 전 까지만 하더라도 내심 저어 하는 마음이 없지 않아서 의도적으로 때로는 의도하지 않았으나 읽기를 시도 하지 않았던 경우가 많았었다.

물론 나 역시 십년을 살짝 넘은 그 시기엔 상실의 시대나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들을 읽던 때가 있긴 했지만, 모두가 좋다 멋지다 극찬해 마지 않던 그의 작품에서 유치한 이유지만 치기 어린 반발심이 생겼는지 멀어지기 시작했고 그것은 다시 일본 소설은 읽지 않는 형태로 나타나게 되었던 모양이다.

그러던 몇년 전 즈음 에쿠니 가오리의 작품을 읽게되었고 그녀의 문체와 책 안에서 낮게 읊조리듯 들려오는 소리들에 귀를 쫑긋 세우는 일이 많아졌고, 다시 그녀를 비롯한 일본 작가들의 소설을 빈약한 양이긴 하지만 다시금 접하게 되었다.

그들 문장이 가지는 담담함이 때로는 냉정하게 까지 느껴지는 이유에서 몇몇 작품들을 읽고 서는 우리말과 구조가 닮은듯 다르니 차라리 일본어로 된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 싶은 생각에 나름 일어공부 까지 시도하려고 했으니 선무당이 뭣도 모르고 나서다가 지레 포기하고 만 꼴이 되고 만 웃지못할 일도 있었다.

 

이번 여름은 꽤나 다양한 미스터리와 추리 소설들을 읽고 있는 편인데 지금 눈을 잡고 있는 [13번째 인격]은 미스터리 추리 그리고 스릴러라고 할 수 있겠다.

일본인들의 원령이나 원귀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가 우리에게 처녀귀신이나 달걀귀신이 주는 친숙한 공포와 비슷할까 하고 생각해보았다.

원한을 품은 귀신이 등장하는 일본 영화를 보더라도 그들은 우리나라보다 어쩌면 그것들에 더 두려움과 매력을 동시에 느끼고 있는지도 모른다. 많은 영화나 소설에서 두려움과 미스터리가 등장하는 것을 보면 말이다.

 

13번째 인격에서는 한신 대지진의 고통이 지나고 있는 지역에서 상대의 감정을 간파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엠파시- 유카리가 피해지역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심리치료의 자원봉사를 하게 되면서 다중 인격 소녀인 16세의 치히로를 만나면서 이야기가 전개된다.

꼬마였을때 교통사고로 부모가 죽은 끔찍한 일을 당한 치히로는  유체이탈과 임사체험을 경험했고 받아들이기 힘든 현실의 고통으로 부터 자신을 격리하기 위해 여러 인격을 가진 다중인격이 되었다.

한신대지진을 통해 치히로에게 하나의 인격이 더 해지게 되면서 모두 열세개의 인격을 가지게 되고 치히로의 학교 심리상담 교사인 히로코와 더불어 인격을 하나로 통합하는 상담치료를 하게 된다.

쉽사리 정의 되거나 협조적이지 않는 13번째의 인격의 실체에 가까이 갈수록 유카리와 히로코는 혼란스러워지게 되고 역시 한신대지진을 격은 마나베와 유카리의 만남으로 13번째 인격 이소라에 점점 다가선다.

13번째 인격 이소라의 원한과 아픔, 그것이 가져다 주는 공포에 유카리와 마나베는 두려움을 느끼게 되고 이소라의 본질을 알게 되면서 그들이 겪어야할 일은 어느정도 예상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13번째의 인격에서 찾을 수 있는 진정한 공포와 두려움은 모든 사건이 해결되었다고 확신했을때 나타난다.

 

이름 모를 들짐승과 밀폐된 한공간에 갇혀 짐승의 움직임 없이 숨죽인 숨소리를 듣고 있는 것처럼 몸의 한쪽이 서늘해지고 차가운 땀이 흐르는것만 같다.

13번째 인격, 이소라가 남긴 그것이 유카리와 마나베의 급 애정전선으로 의아하던 생각을 깨끗이 잊게 만들었고, 과연 다중인격이라는 흔하게 이야기화 되는 친밀한 소재임에도 식상하지 않게 만들어주었다.

 

8월이 다 지나고 있는데도 푹푹찌는 더위를 체감 하지 못하는 지역에 살고 있어 여름밤이 서늘한 날이 많았는데 13번째의 인격을 읽은 밤들은 더욱 그러했다.

돌발적인 상황과 액션이 난무하는 미스터리는 아니지만 13개의 인격의 면면을 생각해보고 상상해보는것이 즐거운 담담한 또하나의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