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어려서부터 나는 빨랐다.

글자를 읽는것도, 속셈이라고 하는 더하기빼기곱하기나누기 숫자놀이도.

구구단을 외는것도 다른 또래들보다 빨리 끝냈다.

 

달리기도 빨랐다.

초등학교때는 늘 반대표 달리기선수였다.

학교에서 육상선수로 키우자고 했지만 학업에 뜻을 두신 부모님의 반대로 무산.

어쨌거나 빨리 달렸다.

 

피아노를 배우는것도 빨랐다.

손가락도 빠르게 움직였고, 악보도 빨리빨리 외웠다.

 

해야하는것들이 있으면 빨리빨리 해치워야하는,

그래서 방청소도, 설거지도 빨리빨리 후다닥 해치우는 편이었다.

 

머리를 쓰는것도, 몸을 쓰는것도, 그리고 성격마저도

나는 빠른아이었다.

 

그리고 고만고만한 아이들 중에

무엇이든 빨리 하는 아이는 늘 남보다 잘하는 아이었다.

 

 

#2.

언제부터일까?

더이상 남보다 빠른 사람이 아닌건.

다들 배울만큼 배운 나이가 되니 빨리 배운건 의미 없어졌고,

나이가 들고 살도 좀 찌고나니 빠르게 움직이던 몸도 둔해졌고,

빠릿빠릿 미루지 않고 일이든 공부든 해치우던 성격도 느려졌다.

 

어렸을때의 나에 비해 지금의 내모습이 굼떠지고 느려졌고,

이런 모습들에 내가 한없이 게을러진것 같아서 마음의 조급함에 항상 쫓기는 것이었다.

 

 

 

#3.

강세형이라는 작가를 처음 만난 순간을 기억한다.

누군가의 블로그에서 강세형 작가의 첫 책의 어느 구절을 읽고. 순간 철렁해 졌었다.

 

친구는 말했다. 

그날 또한 평소와 다름없이

사무실에서 헉헉대며 일을 하고 있었는데

맞은편에 앚은 선배를 보니 5년 후 나는 저렇게 살고있을까? 

건너편 과장님을 보니 10년 후 나는 저렇게 살고있을까? 

저 멀리 부장님을 보니  20년 후 나는 저렇게 살고 있을까?

갑자기 두려웠단다.

"그냥 그냥 이렇게 살다 죽는 건 아닌가 두려웠어.

그럼 너무 억울할 것 같아서."

                                                       - 나는 아직 어른이 되려면 멀었다 -

그래서 그 친구는 사표를 날리고 세계여행을 떠났다고 했다.

작가의 친구와 똑같은 꿈을 꾸고 똑같은 두려움을 느끼던 나는 그 책을 샀다.

그렇게 강세형이라는 작가를 만났고, 그녀의 두번째 책을 집어 든 것이다.

 

 

#4.

이미 책을 두번째로 내고 있는 이 작가는,

게다가 그 책들은 이미 베스트셀러 10권안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데

자꾸 자기는 좋은 작가가 아닌척, 성공하지 못한척, 뭔가 뒤쳐지고 있는 척을 한다.

다른 글쓰는 이들은 어떡하라고.

 

그녀의 책은 엄청난 짱짱함으로 무장한 소설도, 사색과 명상의 철학이 듬뿍듬뿍 담겨있는 위대한 고전도 아니다.

다만, 일상에서 느끼는 그 소소한 생각들을 담은 책이다.

라디오 작가였던 전업에 맞는 감성을 쿡쿡 찔러대며, 이것저것 공감하게 만든다.

 

연애야 뭐, 하고 있을 수도 있고 안 하고 있을 수도 있고, 지금 내가 혼자라 해도 예전에 안 해봤던 것도 아니고 앞으로 영 못할 거라 비관하고 있는 것도 아니니 상관없는데, 그건 좀...... 부러웠던거다. 

그리움.

 

함께 있지 않을 때도 보고 싶다는 그리움.

이젠 만날 수 없는 상대일지라도 좋은 것을 보면,

좋은음식을 먹을 때면, 좋은 곳에 갈 때면 떠오르는 그리움.

상대가 내 마음을 알든 모르든

일을 할 때도, TV를 볼 때도, 친구와 수다를 떨다가도

문득 문득 떠오르는 그리움.

새벽녘 잠에서 깨 창밖을 바라보면 나도 모르게 떠오르는 얼굴.

그리움.

친구를 위로하며, 스스로에게 위로하는 한마디가

내마음에도 위로가 된다.

 

"우리, 너무 조급해하지 말자. 

조급함의 반대말이 게으르다는 아닌 것 같아 "

 

 

#5.

그녀는 느리다.

그래서 그녀의 글도 느리다.

그래서 나도 느리게 읽었다.

읽다가, 생각하다가, 그리워도 하다가,

또 조금 쉬면서 다른 책도 보다가.

이 책이 읽고싶을때 천천히 읽었다.

 

그래.

조급함의 반대말이 게으르다는 아니니까.

조급해는 하지말고, 그래도 꾸준히 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