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시황 하면 떠오르는 영화가 바로 <진용>이라는 영화다. 어릴적 정말 재미있게 봤었는데 특히나 영화를 더 재미있게 느낄 수 있게 만든건 환생이 얽혀들어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이야기였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사실 그 영화에서 진시황의 이미지는 그닥 좋지 않았다. 무자비한 살상을 자행하는 폭정으로 세상을 어지럽히는가 하면, 장생설을 믿고 불로장생약을 구하려고 한다. 그래서일까? 어릴적부터 진시황하면 분서갱유, 만리장성, 군현제, 중앙집권체제 등의 내용보다는 우습게도 불로장생이나 환생이 더 먼저 떠올랐다. 아마 영화의 탓이 크지 않을까 싶다. 사실 진시황에 대해서 내가 아는건 몇되지 않는다. 진시황의 업적이라고 학창시절 시험때문에 달달 외운것, 고작 그게 다였다. 그럼에도 웬지 나는 진시황을 잘 알고 있는 기분이 든다. 물론 그가 누구냐고 묻는다면 '잘은 모르지만' 이라고 대답하겠지만. 마치 연예인 누구누구를 이름과 얼굴, 그리고 방송에서의 모습만 보고서도 친근하게 알고 있다는 느낌을 가지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진시황은 이름이라도 많이 들어봤지만 이사는 솔직히 이름도 잘 들어보지 못한 자였다. 역사서를 즐겨 읽긴 하지만, 중국역사서는 그닥 많이 접해보지 못한것도 이유라면 이유. 그나마 요즘 중국역사서를 두어권 접하면서 나라가 다르긴 하지만, 분위기나 그 시대에 존재했던 재상이나 신하들은 다들 비슷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과거와 현재가 다를 뿐이지, 과거에 존재했던 재상과 신하들이 다른모습으로 현재에 존재하는 것과 같지 않을까. 그래서 우리는 지나간 역사를 그저 '지나간 역사'로만 보고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서 지혜를 얻고 배움을 얻는 것이 아닐까 싶다.

 진시황을 지배한 재상이라고 하니 '이사' 이 사람에 대해 더 궁금해졌다. 천하의 진시황을 지배한 재상이 있었단 말인가. 천하의 경영자가 있었단 말인가 싶어 두눈이 커다래진다. 처음 생각했던것처럼 진시황을 좌지우지 흔들고 자기 마음대로 주물렀던 자는 아니었지만, 진시황에게 큰 영향을 끼친 인물임에는 틀림없었다.

 처음 이 책과 마주했을때 이 많은 분량(약 1000페이지가 약간 넘는)을 언제 다 읽을까 걱정했는데, 의외로 술술 읽혔다. 책이 얇아 금방 읽겠지 싶었다가 아이구나를 연발하는 책과는 반대로 두꺼운 분량임에도 오히려 술술 넘어가서 어느순간 돌아보면 '벌써 이만큼 다 읽었나?' 싶은 책이다. 마치 드라마를 본지 10분도 채 되지 않은것 같은데 어느순간 '다음시간에'를 보며 내일을 애타게 기다리는 것처럼.

 이사는 전국시대 말기부터 진 통일제국 때까지 산 인물이다. 이사라는 인물을 만나게 되면서 나는 그외의 인물인 시황제, 여불위, 한비, 몽염, 조고등의 인물들도 함께 만날 수 있었다. 마치,사극을 본것 같은 느낌이다. 1000페이지가 약간 넘는 분량이라 방대하다고 생각했지만, 이 책이 18년에 걸친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는 것을 감안한다면 그리 많은 분량도 아닐것이다. 마치 사극을 본것 같다고 느꼈던 것은 이사라는 인물과 그 주변사람들의 이야기를 흥미롭게 들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1권에서 만나게 되는 여불위, 노애, 조희 등의 인물과 얽힌 이야기들은 정말 흥미진진했다. 조금 안타까웠던 점은 어느시대든 권력은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느꼈다는 거다. 여불위를 하늘처럼 받들던 조희도, 성실하고 내성적인데다 마주치기만 하면 얼굴이 빨개지는 청년 노애도 권력의 힘, 권력의 맛에 그때 그 시절이 있었나 무색할 정도로 변해버린다. 권력이란 원래 그러한 것이 아니던가. 흥미진진하게 그들의 이야기에 빠져들면서도 그점은 못내 안타까웠다.

 사극을 보다보면 그런 인물들을 만나게 된다. 이사와 같은 인물 말이다. 뭔가를 꿰뚫어보고 앞을 내다볼 줄 아는 사람을 만나게 되면 웬지 등줄기가 오싹해진다. 한편으론 존경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론 부럽다가도 또 그런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무서워지기도 한다.

 전국시대 말기에서 통일 진제국에 이르는 시대에서 만난 이사, 여불위, 진시황, 한비등의 인물들과 함께한 이야기, 흥미로운 그들의 이야기에 단숨에 빨려들게 된다. 이 책은 소설과 역사서의 중간 형식을 취하고 있는 퓨전형식을 취하고 있는데, 그래서 더 색다르게 다가왔던것 같다. 정사를 바탕으로 하되 거기에 저자의 추리와 상상력이 맞물려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더불어 인물들의 심리가 어떠한가를 현재 우리가 느낄 수 있는 것들로 예를 들어, 그 기분을 바로 알 수 있게 해준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 중국과 미국의 농구 시합 결승전에서 야오밍은 농구 코트를 누비며 미국 NBA 선수들을 꼼짝 못하게 만들었다. 경기가 끝난 후 그는 '이제 내 몸값이 어느 정도인지 알았다'는 명언을 남겼다. 거침없는 언변으로 여불위의 혼을 쏙 빼놓은 이사도 바로 그런 느낌이 아니었을까? 그쯤했으면 자신의 가치가 어느 정도인지 감이 왔을테니 말이다. (상권 p91中)

 흔히 영화의 예고편은 화려하고 박진감 넘치는 장면들로 채워진다. 그러나 막상 돈 주고 극장에 가서 영화를 보고 나면 어딘지 시시하고 본편이 예고편보다 못한 경우가 많다. 영정에게 <고분>과 <오두> 두권의 책은 한비의 사상과 이론에 대한 일종의 예고편이었다. 그러나 막상 한비의 모든 사상을 이해하고 난 후에는 기대에 벗어나는 부분이 많아 실망감을 지우지 못했던 것이다. (하권 p297中)

 어쩜 이리도 알기 쉽게 설명할 수 있단 말인가. 그때의 심정이 어떤지가 바로 느껴진다. 이게 바로 퓨전형식이 주는 매력이 아닐까 싶다.

 깨달음은 갑자기 찾아온다고 했던가. 어느날 뒷간의 생쥐와 곳간의 생쥐가 사는 꼴이 다른 모습을 보고 깨달음을 얻어 중앙 정치 무대로 나아가기로 결심하는 이사. 그 이사를 따라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전국시대 말기부터 진 통일제국 때까지에 살았던 인물들을 이렇게 만날 수 있어 좋았다. 더불어 그 속에서  분노, 행복, 슬픔, 절망등의 감정을 느끼게 되고 어찌할 수 없는 상황에서 결국 어떤 선택을 했는지를 글로 읽는 것이 아닌, 마음으로 읽을 수 있어 좋았던 것 같다. 그 일을 할 수 밖에 없는 주인공의 고뇌와 심리적 갈등이 느껴지고 어떤 기분일까를 함께 맛볼 수 있어, 이사의 굴곡진 삶과 운명이 더 와닿았던 것 같다.

이사, 진시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