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소설을 즐겨 읽지만, '이노우에 아레노'라는 작가의 작품을 단한권도 읽어보지 못해, 이 작가의 작품은 어떨까 내심 기대가 되었다. 처음 만나는 사람이 어떤 사람일까 싶어 설레는 것처럼 그렇게 작가의 작품 <채굴장으로>와 대면한다. 제목에서도 묘한 신비로움, 뭔가 베일에 쌓여있는 듯한 느낌이 묻어나는데, '2008년 나오키상 수상작'이라는 문구와 '누군가를 좋아할 때의 그 가슴 저림을 잊지 못하는 당신의 이야기'라는 광고띠의 문구는 그 궁금증을 더 증폭시킨다. 사실 나오키상 수상작을 읽고서 실망한 적도 더러 있었다. 심사위원들의 기준과 나의 기준이 달라서인지 작품을 읽고도 '이게 과연 수상작 맞나?' 싶은 작품도 있었지만, 호기심이랄까. 아니면 혹시 이번엔? 하는 기대심리 때문일까? 나는 그렇게 이 책을 집어들게 된다.

 남편을 사랑하는 한 여자가 또 다른 남자에게 끌리고 사랑하는 감정을 느낀다고 하면 얼핏 불륜으로 내비칠 수도 있다. 하지만, 책을 덮고나서 불륜이라는 느낌이 들지는 않는다. 오히려 주인공쪽보다 그와 함께 일하는 학교교사 쓰키에 쪽이 불륜에 가깝다. 그러나 그쪽도 비난하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는다. 유부남과 연애하는걸 자랑스럽게 떠들고 다니며 섬사람들이 모르는 이가 없을정도로 연애를 하는데도 비난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 것은 아마도 쉬쉬거리며 몰래서 하는 사랑이 아닌, 당당하게 내놓고 사랑을 즐기는 쓰키에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그 사랑이 불륜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웬지 쓰키에와 본토씨(이 사람은 조금 답답한 면이 없지나마 있긴 했지만;)가 그리 미워보이지 않았나 보다.

 제목과 소재만 보면 뭔가 파격적인 내용도 나올것 같고, 뭔가 일이 벌어질것만 같은데 실상은 그렇지 않다. 답조롭다 못해 싱거운 느낌마저 든다. 하지만, 우리네 일상과 참 많이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영화나 소설에서처럼 좋아하고 사랑하는 감정을 대놓고 표현하는 것들, 현실성과 거리가 먼 이야기들이 많기 때문이다. 특히, 유부녀의 이야기라면 더 그렇다. 남편과 사이가 좋지 않거나 별거중인 사람도 아니고, 남편과의 사이도 꽤 좋은, 아직도 남편을 여전히 사랑하고 있는 유부녀의 마음속에 조용한 파문이 일면서 그 누군가가 들어온다면 과연 어떻게 행동할까? 문득 영화 <키친>이 생각이 났다. 두 남자를 사랑하는 한여자. <키친>을 영화로 본것이 아니라, 비디오 소개해주는 방송에서 줄거리만 대략 살펴본지라 전체적인 느낌은 알 수 없지만, <키친>의 여주인공 마음이 지금 이 소설속 여주인공의 마음과 같지 않을까 싶다. 다른점이라면 소설속 여주인공은 그 마음을 대놓고 드러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게 친절하지도 않고 자신에게 다정하지도 않지만, 웬지 끌리고 자꾸만 눈길이 가는 남자. 그래서 자꾸만 시선이 가고 마음이 가는데 자신은 유부녀이고 이미 곁에는 사랑하는 남자가 있다면 나, 그리고 당신은 과연 어떻게 행동할것인가? 책속에 그녀의 그런 마음이 고스란히 묻어있다.

 광고표지에 그런 문장이 있다. 앞서 소개했듯 '누군가를 좋아할때의 그 가슴 저림을 잊지 못하는 당신의 이야기'라는 문장인데, 이 책에는 그 가슴저림을 잘 표현하고 있다. 잔잔하다 못해 맹물처럼 싱겁기까지 해서 조미료를 첨가해서 간을 맞추고 싶은 마음도 들지만, 그렇기에 그 마음이 더 전해져온다고나 할까? 아마 여기에 조미료를 첨가했다면 그 느낌은 지금과는 또 다를 것이다.

 '이게 과연 연애소설인가?' 싶을 정도로 잔잔한 일상이지만, 분명 그 속에서 주인공을 비롯한 여러사람들의 마음을 옅보면서 웬지 모르게 가슴이 콩닥뛰기도 하고 맘이 심란해지기도 한다. 이사와(새로 온 남선생님)을 생각하는 세이(여주인공)의 마음을 알수는 있지만, 정확하게 꼬집어 말할 수도 없다. 세이를 생각하는 이사와의 마음이 어떤건지, 그리고 쓰키에와 이사와가 어떤 관계였는지 짐작만 할뿐 명확하게 알지는 못한다. 그렇지만, 그들을 따라다니며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사랑'에 대해서 한번쯤 돌아보게 된다.

 세이의 가슴에 조용한 파문이 일어났지만, 다시 세이는 일상으로 돌아간다. 마치 이사와가 강하게 스쳐 지나가는 바람인것처럼, 한낱 꿈이었던듯 그렇게 남편과 변함없는 하루를 살아간다. 우리의 일상도 그렇지 않을까?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존재하듯 다양한 사랑도 존재한다. 불타 오르는 강렬한 사랑도 있겠지만, 이렇듯 잔잔한 사랑은 어느새 주인공이 되어 또는 예전 그 설레였던 순간으로 나를 되돌려 콩딱뛰는 가슴을 느끼게 해주며, 짠해지는 기분을 맛보게 해준다.

채굴장으로, 잔잔한이야기, 2008년나오키상수상작, 이노우에아레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