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사 귀찮아 질때가 있다. 그냥 웬지 모르게 기분이 울적할때가 있다. 모든게 다 우울한 밤, 어느 누구라도 붙잡고 이야기를 터놓고 싶은데 마땅히 그럴 상대도 떠오르지 않고, 이게 뭔가 싶을때. 괜스레 사는게 허무하고 내 인생은 또 이게 뭔가 싶을때. 그럴때가 있다. 모든게 다 우울한 밤, 한번쯤은 있지 않나?

 <모든게 다 우울한 밤에>라는 책을 집어들고 읽기 시작한 밤 역시 우울한 밤이었다. 웬지 이 책이 위로가 되지 않을까 싶은 마음도 적잖아 있었다. 아마도 모든게 다 우울한 밤에라는 제목이 큰 영향을 끼친듯 했다. '날 봐. 그럼 마음이 한결 편안해질꺼야.' 그렇게 유혹하는 책을 외면하지 못한체 읽어나가기 시작했지만, 마음의 안식을 얻기는 커녕, 마음이 무거워져 갔다. 그저 가볍게 아무생각없이 읽어내려 가고자 했건만 예전에도 가끔 생각했던 문제에 봉착했기 때문이다. 바로 살인과 사형, 그리고 사형제도에 관한 부분이었다. 이미 여타의 소설이나 드라마, 영화에서도 종종 들여다 보았던 이야기였지만, 주인공 나의 심리변화와 직업(교도관이라는)과 주변사람들의 이야기가 얽혀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교도관 주임의 이야기가 웬지 기억에 남는다. 그중 사형제도의 문제점에 대해 이야기하는 부분이 있는데 그 부분에서는 나도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같은 죄를 지었는데도 누구는 사형이고 누구는 그렇지 않다. 그런데 그 중심에는 유가족들이 있다. 유가족들이 울부짖고 그래서 언론이 그 문제를 들고 일어서면 보통 그 죄를 지은 사람은 사형을 면하기 어렵다. 반면, 유가족이 없고 그래서 그 일이 크게 언론화되지 않고 잠잠하면 같은 죄의 크기라도 사형을 면할수 있다는 것이다. 참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사형제도는 마땅히 있어야 되는것일까? 아니면 폐지되어야 할 것인가? 사실 이 문제는 그리 쉬운 문제가 아니다. 만약 내가 유가족이라면 사형제도는 마땅히 있어야 되고 살인범은 죄의 댓가를 치뤄야 된다며 울부짖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제3자의 입장에서 차분하게 생각해보노라면 사람 목숨을 앗아간다고 해서 뭐가 달라질까 하는 생각도 든다는 거다. 그 사람이 교화되어 사회에 나와 좋은일을 할수도 있고, 그로인해 새사람이 된다면 더 없이 좋지 않을까? 그렇지만, 그렇게 새사람이 되는 이들도 있는가 하면 또 사회에 나와 이전과 같은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들도 많으니. 그래서, 이 민감한 문제를 두고 '이렇다, 저렇다' 확실하게 말하지 못하는 것이다.

 죽어야만 마땅한 살인범이라면 사형이 마땅하겠지만, 그 문제를 두고 망설이게 되는 가장 큰 이유는  혹시나 억울하게 누명을 쓰거나, 우리가 겉으로 보는 살인범의 모습 외에 우리가 알지 못하는 어떤 것이 있는건 아닐까 하는 우려 때문이다. 예전,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이라는 소설을 읽은 적이 있는데 그 소설속 인물중 정윤수라는 남자 역시 억울한 누명을 쓰고 사형을 당하는 인물로 그려진다.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내고 세상의 밑바닥으로만 떠돌다가 세 명의 여자를 살해한 죄로 인해 사형을 당하게 되는 그. 겉으로 볼땐 세명의 여자를 무참히 살해한 살인자일뿐이지만, 깊게 파고들어가 진실과 마주하고 나면 한동안 가슴이 쓰라려옴을 느끼게 된다. 물론 정윤수는 소설속 인물일 뿐이라고 말할수 있겠지만, 혹 현실에서 그와 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모든게 다 우울한 밤. 내가 우울한 가장 큰 이유는 바로 내 안에 있다. 주인공 나와는 전혀 다른 이유이지만, 그 문제의 원인이 나라는 것은 변하지 않는다. 물론 난 나를 자제하지 못할만큼 분노를 느끼지도, 그렇게 흥분해본적도 없다. 그리고 죽이고 싶을만큼 원망을 품은 자도 사회를 지독히 원망해본적도 없다. 그렇지만 웬지 주인공을 비롯한 주변인물들의 마음을 조금은 알 것 같다.

 스무살짜리 사형수. 앞으로 하고 싶은것도 할것도 많은 그가 사형을 면하기 어려움에도 항소를 하지 않는 것을 보고 정윤수를 떠올렸던것 같다. 뭔가 우리가 모르는 진실이 있을꺼야 라고 생각했지만, 그 진실과 마주하고 나자 허탈해질 뿐이다. 물론 그의 불우한 어린시절을 생각해보노라면 안쓰럽긴 하지만, 그것으로 인해 억울하게 죽은 이와 그 유가족들이 치뤄야 할 고통이 사라지지는 않을것이다. 답답한 마음에 나는 깊고 깊은 한숨만 내 쉴뿐이다.

 정말이지, 모든게 다 우울한 밤이다.

모든게다우울한밤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