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문학'을 잘못 보고 '경제문학'으로 보았더랬다. '엥? 경제를 문학으로 풀어낸건가.' 싶어 두 눈 뜨고 다시 바라보니, '경제'가 아닌 '경계'였다. 경계문학이라는 단어 역시 내겐 낯선 단어였다. 도대체 무엇의 경계란 말인가? 문득 현실과 환상의 경계는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경계문학이라는 단어가 웬지 멋스럽게 느껴졌다. '장르문학을 대표하는 열두명의 작가. 그들이 펼쳐내는 낯설고 기이한 이야기들'이라는 광고문구를 보며 두 눈이 '낯설고 기이한 이야기들'이라는 부분에서 머문다. 오호라 싶었다. 그렇지만, 경계문학이 대체 어떤 문학인지 알지도 못한체 기이하고 낯선 이야기라는 말에 혹해 읽을 수는 없지 않은가. 바로 검색에 들어갔다. 그런데 나의 검색실력이 부족해서인지 원하는 만큼의 정보를 얻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대략 이런거구나 싶은 내용을 찾을 수는 있었다.

 영미권에서는 80년대 말에 생긴 ‘슬립스트림(slipstream)’이란 용어가 널리 통용되었다고 한다. 슬립스트림이란 장르의 핵심은 비현실적인 ‘인지적 부조화’를 야기하는 것이라고 하며, 흔히 에스에프와 판타지, 그리고 주류문학 사이의 어디쯤에 위치하는 것으로 파악한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경계소설’이라는 표현도 종종 쓰지만 그것과는 약간 다르다고 한다. 약간이 어느정도로 다른건지는 모르겠지만, 책을 읽어본 결과 약간의 차이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대강 슬립스트림을 경계문학정도로 해석해도 되지 않을까 싶다. 이 책에 실린 12편의 단편들은 에스에프와 판타지, 그리고 무협소설의 이야기들이 대부분이었는데 모두가 기이한 이야기였다는 점에서 흥미로웠다. 물론 게중에 몇편은 약간 아쉬움을 자아내는 단편도 있긴 했지만, 대부분 좋았다. 슬립스트림의 장르의 핵심이 비현실적인 인지적 부조화를 야기하는 것이라 했던가. 경계문학 역시 비현실적인 인지적 부조화를 야기한다. 그래서 조금은 몽롱한 기분을 자아내는가 하면, 환상특급에서 볼듯한 이야기로 인해 '아!' 하는 짧은 탄성도 내지르게도 만든다. 어쨋든 정말 흥미롭고 재미있는 기이한 이야기 속에 빠져들어 시간가는줄 몰랐더랬다.

 개인적으로 단편을 좋아하는 편이다. 요근래 단편집을 많이 읽었는데 그중 가장 흥미로웠지 않나 싶다. 얼마전에 읽은 <유,로봇> 역시 한국SF단편선이라 공상과학, 에스에프의 이야기라 흥미로웠지만, 낮설고 기이한 몽롱한 느낌을 준 이 책에 조금 더 점수를 주고 싶다. 김정률을 포함한 12명의 작가는 사실 내게 너무 낯선 작가들이다. 이름도 생소하고 작품을 들여다 본 적도 없다. 덕분에 좋은 문학을 접하고, 새로운 작가분들을 알게 되어 일거이득이었던것 같다.

 개인적으로 12편의 단편중 인상적인 작품을 몇편 꼽자면 김정률의 <이계의 구원자>, 윤현승의 <인카운터>, 전민희의 <11월밤의 이야기>, 하지은의 <앵무새는 단지 배가 고팠을 뿐이다.>를 들고 싶다.

 김정률의 <이계의 구원자>는 처음부터 흥미롭다. 간만에 읽은 판타지라 그런지 흥미로운데 드래건, 마계, 마물들이라는 소재 역시 이야기를 흥미롭게 만들지만, 구양무극의 마지막 선택을 보고 피씩 웃게 된다. 조금은 어이없는 구양무극의 결정. 예전에 접했던 판타지에서는 생각해 볼 수 없는 결론에 더 플러스 점수를 주게 되지 않았나 싶다. 독특하고 재미있었다.

 시간여행, 그리고 다른 차원의 문, 특별한 공간이라는 소재는 늘 흥미롭다. 윤현승의 <인카운터>는 그런 흥미로운 소재를 이용해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갑작스런 범인의 행동, 그리고 그 남자(범인)의 존재와 드러난 진실을 보며 '와!'라는 짧은 탄성을 내지르게 만든다.

 어릴적 공포소설에서도 그리고 환상특급을 다룬 이야기에서도 종종 사용되는 소재중 하나가 바로 머리카락이었다. 그러고 보니 공포영화 <가발>에서도 머리카락(가발)이 등장한다. 그래서일까? 전민희의 <11월밤의 이야기>에 나오는 머리카락을 보며 처음엔 조금 소름이 끼치기도 했다. 아마도 공포영화 <가발>이 떠올랐기 때문이 아닐까? 가발을 쓰면서 조금씩 변하는 여주인공. 가발, 즉 머리카락은 사람의 기억을 가지고 있다고 했던가. 양 손으로 눈을 가렸다 펼쳤다 하면서 본 영화가 떠올라서 조금은 무섭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11월밤의 이야기>는 무서운 이야기가 아닌 기묘한 이야기였다. '도대체 그 머리카락의 존재는 무엇이며 그녀는 누구인가?'하는 생각과 함께 꿈이 주는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보며 빠져들었던 단편이었다. 기묘한 이야기는 읽고 난 다음에도 여운이 오래가는것 같다.

 공포영화를 많이 본 탓일까? 하지은의 <앵무새는 단지 배가 고팠을 뿐이다>라는 제목을 보며 앵무새가 무슨 괴물이라도 되는듯이 이상한 공상에 빠져버렸다. 그러나, 이야기를 접하고 나서는 피씩 웃게 되었다. 기묘하고 몽롱한 느낌보다는 재미있다고나 할까? 독특하다고나 할까? 결론에서까지 또 한번 나를 웃게 만든다.

 단편은 이야기가 간단하고 쉬이 읽힌다는  장점이 있지만, 가끔 결말이 허술한 단편을 만나기도 한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장편보다 단편을 쓸때 조금 더 힘들지 않을까 싶기도 한데, 짧은 이야기안에 그 모든것을 다 담아내야 되기 때문이다. 처음엔 화려했다가 결말에서 '뭐야?' 싶은 단편을 만날때면 '이건 아니잖아' 싶어 허탈해지기도 하지만, 이렇듯 이야기도 흥미롭고 결말에서까지 여운을 주는 재미있는 단편을 만날때면 책이 결말로 향해갈수록 좀 더 천천히 책장을 넘기게 된다. 아마도 즐거운 시간을 더 오래 붙들고 싶기 때문이 아닐런지.

 현실의 경계를 넘어 낯설고 기이한 이야기 속으로 들어간 시간, 정말 즐거웠다.

경계문학, 낯설고기이한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