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 기억과 관련된 책을 읽은 적이 있었다. 그 책에서는 사람의 기억이라는 것이 상황이나 순간에 따라 변할 수 있으며 왜곡되기도 한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어 흥미로웠더랬다. 분명 같은 사건을 겪었는데, 그 사건을 들으면 화자에 따라 조금씩은 다른 이야기라고 생각되는 경우가 있다. 말하는 사람에 따라 과장이 심하거나 허풍이 심해 이야기가 변질되는 경우도 있겠지만, 분명 사실을 전하는데도 겪은 사람에 따라 이야기가 달라지는 것은 그 사람이 처한 상황과 감정들이 기억에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우리의 기억은 왜 그토록 불안정할까?>란 책을 만났다. 가끔 그럴때가 있다. 기억이 날듯말듯 할때...머릿속에서는 어떤 대상이 떠오르는데 그게 막연하게 떠오를때, 알듯 말듯 해서 괜히 답답할때가 그렇다. 우리의 기억을 주관하는 것이 무엇일까? 왜 우리의 기억은 그토록 불안정한지 궁금할때가 종종 있었다. 그리고 드라마나 영화속에서 자주 볼 수 있는 '기억상실증'과 알츠하이머병에 관련된 내용을 들여다 보며, 기억에 대해 더 호기심을 빛내곤 했다.

 이 책에서 단기기억과 작업기억, 그리고 장기기억, 기억질환, 뇌 기능의 영상, 기억의 구성과 기능등을 살펴 볼 수 있었는데, 그 글을 살펴보며 영화 두편이 떠올랐다. 하나는 <내 머리속의 지우개>라는 한국영화이고 다른 하나는 <내일의 기억>이라는 일본영화가 그것이었다. 알츠하이머병에 걸린 주인공이 등장하고, 조금씩 기억을 잊어버리는 장면, 그리고 기억을 잊어버리는 그를 바라보는 또다른 사람(아내나 남편)을 보면서 짠해졌던 영화였다. 기억이라는 소재를 가지고 사랑에 대해서, 그리고 인생에 대해서 돌아보게 만든 영화였는데, 그 영화를 보며 기억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되기도 했다.

 그 영화를 보면 주인공들이 분명 기억을 조금씩 잊어버리기는 하나, 일상생활에 큰 영향을 미치지는 않음을 알 수 있다. 조금씩 주위의 사람들을 잊어버리거나 길을 잊어버리기는 하지만, 정상적으로 말하고 사물과 얼굴의 풍경을 감지한다. 일상생활의 몸짓을 정확하게 실행하며 정상적인 지능을 유지하기까지 한다. 이 책에 보면 기억은 선택적으로 피해를 입는다고 한다. 정말 놀라운 일이다.

 이 책의 초반에 기억에 관련된 흥미로운 실험을 소개하고 있는데 바로 다음과 같다. 코르사코프는 병원에서 환자들을 방문한 뒤 처음으로 환자를 만나면 손을 내밀고 인사를 한다. 그리고 2~3분 뒤에 다시 가면 환자는 인사를 하지 않는다. 환자에게 가서 자신을 본 적 있으냐고 물어보면 환자는 아니라고 대답한다. 불과 3분전의 일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흥미로운 점은 그렇다면 처음 보았으니 다시 손을 내밀고 인사를 해야 될텐데 왜 3분뒤에 갔을때에는 인사를 하지 않는가라는 점을 둘 수 있다. 몇분전에 본 사람이기 때문에 다시 손을 내밀지 않는 행동상의 반응은 기억상실증 속에 보존된 기억의 한 형태에 기초를 둔 반응이라고 한다. 기억에 대해 알면 알수록 신비롭기만 하다.

 4장의 기억질환에 대한 부분이 꽤 흥미로웠는데 이 장에서 전행성 기억상실과 후행성 기억상실, 기억상실 증후군, 정신착란 증후군, 기억 상실증 등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수 있는 시간이 되었기 때문이다. 사실 이 장에서 앞서 언급했던 영화 두편이 절로 떠올랐는데 그때 주인공의 행동과 이 장에서 설명하는 내용이 절로 비교되어 '맞아' 하며 고개를 절로 끄덕이기도 했더랬다.

정상적인 기억과 질환적 기억 사이에서의 경계는 어디에 있는 것인지를 명확하게 알고 싶었는데 그 부분은 조금 아쉬웠다. 하기사 앞부분에서 조금 언급했듯(다른 책에서 읽은 기억에 대한 부분을 이야기하며) 정상적인 기억도 불안정하지 않은가. 사건에 대한 기억은 시간이 흐르면 주체의 경험과 바람에 따라 변화하기 때문이다.

 처음 책을 받아들었을때만 해도 '어라, 책이 너무 얇은거 아닌가' 싶어 조금은 쉽게(?) 보았던것 같다. 어렵지 않게 술술 읽힐 줄 알았는데 예상외로 읽는데 조금은 벅찼던 것 같다. 아마도 논문처럼 딱딱하게 되어 있어 책을 읽는 동안 전공서적을 읽는 기분이 드는 것이 마치 기억과 뇌에 대해 공부를 하는듯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자고로 책은 즐겁게 읽어야 술술 읽히는데 ^^;) 실험이나 사례를 풍부히 담고 있었다면 조금은 덜 지루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지만, 기억의 본질을 과학적으로 접근하면서도 인문학적으로 들여다 볼 수 있어 또 다른 시간이 되기도 했다.

 조금은 난해하긴 했지만, 기억에 대해 좀 더 자세히 들여다 볼 수 있어 유익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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