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에서 웬지 모를 비장함이 느껴진다. 이 책을 읽을 당시의 내 심정같다고나 할까. 하루 하루 반복되는 일상속에서 지쳐가고 있는 요즘이다. 뭔가 좋은일이 없을까 두리번 거려보기도 하고 신나는 일을 찾아보려고도 하지만 만사 귀찮기만 하다. 그렇다고 맥놓고 있을수 만도 없다는 사실땜에 웬지 초조해지는 기분마저 드는 이때 이 책을 보았다. <이렇게 왔다가 이렇게 갈수는 없다>.

 제목을 보고서 '그래, 맞아' 고개를 끄덕였던것 같다. 그냥 그랬다. 이렇게 왔다가 이렇게 갈수만은 없다는 생각이 들면서 그렇게 책장을 펼쳤다. 처음 만나는 작가를 만나면 으레 그렇듯 꼼꼼히 작가소개란을 읽어보다가, 이 책의 저자가 <튤슈를 사랑한다는것은>의 저자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튤슈를 사랑한다는 것은>을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제목을 들어보고 표지를 보았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웬지 모르게 반갑게 느껴졌다.

 작가에 대해 알수록 '역시' 하며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특히 1972년 고아들에게 교육기회를 마련해주기 위해 '네신재단'을 설립했으며, 1995년 사망후 유언에 따라 그의 작품에서 발생하는 모든 인세가 이 재단에 기부되고 있다는 글을 접하며 참 멋진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왔다가 홀연히 떠나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를 남기는것...그것도 많은 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줄 수 있는 것을 남긴다는 것이 참으로 멋진것 같다.

 
이 책은 작가가 부르사에서 보낸 유배생활을 담고 있다. 처음, 유배라고 하자 떠오른것은 고독, 외로움이었다. 아마도 '조선시대의 유배'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드라마에서 종종 나오는 유배생활을 보면 정말 고독하고 외롭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작가는 유배생활을 어찌 견딜까 싶었는데 책을 읽고서 참 놀랐더랬다. 내가 생각했던 유배랑은 차원이 달라도 너무나 달랐기 때문이다. 호텔에서 잠을 자고, 식당에서 밥을 먹고,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다는 것. 단, 유배지역을 탈출하지 않았다는 의미로 아침저녁으로 파출소에 가서 서명을 해야 했지만, 그정도라면 나도 견딜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작가도 밝히고 있듯이 이 책에 실린 기억들은 웃을 수 있는 일들만 담았다고 하지 않는가. 이 책에서 볼 수는 없지만, 서럽고 고통스러운 일들도 많지는 않았을까. 그리고, 웃을 수 있는 기억들만 담았다고 했지만, 중간 중간 유배를 왔다고 해서 편견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을 만날때면 씁쓸하기만 했다. 자신의 돈으로 집을 구해주고 도움을 준 친구도 있었지만, 보자마자 도망을 가거나 차를 마시다 유배를 온 사실을 알고 도망가는 친구, 또 도움을 받고자 찾아간 자리에서 국회의원에 출마할 몸이니 아는 척을 하지 말자는 사람, 교활한 화가 등을 보면서 저자는 담담하게 이야기하고 있지만, 얼마나 서러웠을지 생각하자 마음이 좋지 않았다.

 
첫장을 넘기자 나를 맞이한 글을 이거였다.

 '독자 여러분께 이야기하기에 앞서 먼저 이 책에 실린 글은 제가 상상하여 지어낸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밝히고 싶습니다. (물론 세상의 모든 이야기가 그렇듯이 이 글 속에도 어느정도는 제 개성과 어투가 배어있기는 합니다.) 지금부터 제가 들려드릴 이야기는 제 인생에서 많은 부분을 차지했던 유배생활에 대한 회고입니다.' (p5 中)

 
상상으로 지어낸 이야기가 아님을 밝히고 있어서인지, 가볍게 웃으며 읽을 수 있는 글이었지만, 그 상황을 상상해보며 여러 감정들이 오갔던 것 같다. 세상엔 정말로 다양한 사람들이 많은데, 이 책에서도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그 사람들에 얽힌 이야기, 그리고 다채로운 에피소드를 읽으며 그의 유배생활에 대한 이야기에 빠져들게 된다. 유배라고 해서 어둡고 슬픈 이야기로만 가득찰것 같은데 그의 입담때문인지 중간 중간 피씩 웃게 되는 이야기들도 많고 술술 읽혀 좋았던 것 같다.

 한때 힘들었던 일도, 고통도 시간이 지나면 추억으로 자리잡게 된다. 고통스러운 추억을 안겨준 사람들에게 원망스러운 마음이 생기기 보다는 그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는 글을 접하며 그의 글처럼 그의 내공도 대단하다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아마 나라면 나에게 고통을 안겨준 사람을 원망하며 용서하기 힘들텐데 아픈시절이 현재의 자신을 만드는데 도움이 되었다는 글을 접하며, 나도 아지즈 네신과 같은 내공을 쌓고 싶다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만약 내가 이렇게 유배를 왔다면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과 외면이 못견디게 서럽고 힘들었을지도 모를텐데 말이다. 사람들의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떳떳하고 당당한 그 모습이 너무나도 멋진 아지즈 네신을 만날 수 있어 좋았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불온문서'를 찍었다는 제목으로 현장에서 체포되어 유배생활을 하게 되는 그를 따라나서며 다채로운 이야기를 만날 수 있는 시간, 나름 좋았던 것 같다. 세상엔 정말 별별 사람이 다 있고, 별별 일이 다 있다는 생각이 문득 드는 하루다.

 '이렇게 왔다가 이렇게 갈 수는 없다.' 제목을 뇌까려본다. 정말 나도 무언가를 남기고 떠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아지즈네신, 이렇게왔다가이렇게갈수는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