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가 어렵다는 말을 자주 한다. IMF때도 그러더니, 또 다시 경제가 어려워져서 일자리를 찾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그래서일까? "정말 대단히 유감이지만, 당신을 해고시켜야 합니다." 라는 광고띠의 문장에 눈이 가면서 웬지 모르게 씁쓸함이 감돈다. 정말 정중한 표현이다. 정중하게 말한다. 정말 유감이지만 해고 시켜야 하노라고. 오히려 이런 정중한 표현이 더 무서운 법이다. 마치 아무일 없이 회사에 나가 일하고 있는데, 갑자기 상사가 불러내서 뒤통수를 가하는듯한. 그 충격은 실로 엄청나다.

 <호모오피스쿠스의 최후>는 광고회사에서 구조조정 바람이 불면서 일어나는 직장인의 비애를 담아내고 있다. 떠나는 자와, 남는자. 떠나는 자는 떠나는 자데로 힘들것이고, 남는 자 역시 순간은 '휴'라며 가슴을 쓸어내릴지 몰라도 언제 내줘야 할지 모르는 자신의 자리를 보며 위태위태할 것이다. 신경이 곤두서서 날카로워지는 모습을 상상해본다. 세상 살기 참 힘들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직장인의 비애란 이런걸까 하는 생각이 든다. 여튼 맘이 편하지 않다.

 구조조정 바람이 불면서 사람들은 기괴한 행동을 하기 시작한다. '크리스 욥'은 정리해고를 당한뒤에도 계속 회사에 출근하는가 하면, '칼 가버디언'은 마릴린(그의 잘나가는 의사아내)에 대한 열등감과 정리해고에 대한 스트레스로 정신불안증세를 보인다. 또 '톰 모타'는 정리해고를 당하고 난 뒤, 회사에 보복적인 언행이나 메일 보내기를 일삼는다. 갑자기 불어닥친 구조조정 바람은 사람들을 혼란스럽게 만들기 충분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들이 회사내에서 열심히, 성실히, 최선을 다해 일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중 몇몇은 정말 자신의 맡은바 최선을 다하는 이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근무시간을 수다로 보내는가 하면, 자신이 맡은 것을 대충해서 시간내에 올리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았다.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이 최선을 다했든, 그렇지 않았듯 정리해고를 당하는 입장에 당하게 되면 자신이 했던 행동을 떠나 억울하게 느껴지는건 어디서나 같은가 보다. 점점 사람들이 이상해진다. 보는 나 역시 혼란스럽다.

 
책을 읽기전 광고띠의 문구를 보며 어떤 내용일지 예상은 했었다. 또한, '내셔널 북어워드 최종 후보자, 뉴욕타임스 아마존 선정 2007 올해의 베스트셀러'라는 화려한 타이틀을 보며 기대감도 적지 않았다. '분명 정리해고를 당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일테고, 그럼 그 사람들은 이제 어떻게 되나? ' 그 생각을 하며 책을 읽어나갔다. 그러면서 광고회사라는것 때문인지 그와 관련된 재미있는 에피소드도 기대했던 것 같다.

 그러나, 나의 기대와 달리 광고회사 사람들이라고 해서 이 책에서 광고에 얽힌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기대하긴 어려웠다. 이 책은 주로 구조조정 바람이 불면서 벌어지는 사람들의 심리와 행동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혼란스러워하는 사람들을 멍하니 바라보며, 이런 저런 생각에 빠져든다. 남일 같지가 않았다. '경제가 어렵다'라는 말을 자주 내뱉은 엄마, 퇴직을 앞두고 몇년이라도 연장근무를 원했지만 (예전만 해도 몇년 연장근무가 가능했었는데, 지금은 경제가 어렵고 있는 사람도 내보낼 형편이라 연장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결국 퇴직을 하셔야 했던 아버지, 그리고 그런 부모님을 보며 조금이라도 더 경제에 보탬이 되고자 발버둥치는 나를 보며 한숨을 쉬어 본다.

 '정신적 스승을 찾아 히말라야로 떠나는 호사스러운 결말을 낼 수도 없고, 부양할 가족과 상상력의 결핍, 용기의 부족, 쥐꼬리만한 자족감으로 일을 집어치울수도 없는 찌질하고 궁상스러운 우리의 자화상' 이라는 책 뒤표지의 문구로 자꾸만 시선이 가는건 어쩔 수 없나 보다.

 딱 그랬다. 책속 인물 역시 그렇지 않았을까? 정리해고를 당하면서 큰소리 칠수도 없다. 이 일이 아니면 다른 일을 할 수 있노라고, 아니면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즐기며 살겠노라고 큰 소리 칠 수 없는 이 현실이 참 서글프다. 정리해고라는 현실 앞에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회사에 출근하는가 하면 정신불안 증세를 보이고, 회사에 악담을 퍼붓는 여러 사람들의 기괴한 행동마저 이해될 판이다. 나역시 그런 입장에 처하게 된다면 그렇지 않을까? 나 역시 사람인것을.

 
한참 IMF 로 힘들었을때, 서점에서 재테크 도서를 훔치던 도둑이 잡혔던 뉴스를 접했던 기억이 난다. 그는 평범한 시민이었다. IMF로 일자리를 잃고 책살 돈마저 없었던 그는 그 방법을 책에서 찾고자 했던 것이다. 여러권의 책을 훔쳐서 나오다 붙잡힌 그사람을 보면서 참으로 씁쓸했던 기억이 난다. 언제쯤이면 경제가 어렵지 않다는 말을 하게 될런지. 찌질하고 궁상스러운 우리의 자화상을 바라보며 씁쓸함을 감출 수 없었던 책 <호모 오피스쿠스의 최후> 였다.

 조금 아쉬운 점이 있다면 책이 좀 지루하다는 거다. 소문과 사실의 경계선에서 사람들의 이야길 흥미롭게 들여다 볼 순 있었지만, 이야기가 조금 뒤죽박죽 섞인 느낌이 들어 조금은 헷갈리기도 했던 소설이었다. 하지만, 어쩌면 서글픈 현실이 될 수 있는 이야기를 작가의 풍자와 세밀하게 묘사된 그들의 모습을 보며 담담하게 읽어내려갈 수 있었던 점(중간 중간 피씩 거리며 웃기도 했으니)은 이 책의 매력이기도 했다.

소설, 호모오피스쿠스의최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