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시다 슈이치의 신간소설이라는것부터 내 시선을 끈다. 그의 작품을 서너권 읽었던 나로서는 무척이나 반가웠던 작품임에는 틀림없었다. 개인적으로 <악인>만큼 강렬한 작품은 만나지 못해 아쉽기도 하지만, 섬세한 인간내면묘사라던지, 심리를 잘 파악하고 있는 글은 또 다른 매력을 안겨다 준다.

 <사랑을 말해줘> 제목만 본다면 뻔하고 뻔한 연애이야기를 떠올리기 쉽다. 그러면서도 웬지 모를 절절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책표지를 바라본다. 사랑을 상징하는 빨간하트 안에 점점히 박혀 있는 검은점. 마치 붉게 타오르는 사랑안에 콕콕 박히는 상처와 시련을 떠오르게 만든다. '그래, 사랑이란 그런게 아닐까? 마냥 행복하기만 할것 같아도 맘하고는 다른것. 사소한 사건으로 틀어질 수도 있고, 또 아주 사소한 것으로도 감동을 받을 수 있는 그런것...' 혼자서 이런 저런 사색에 잠기며 그렇게 책장을 펼쳤다.

 요시다 슈이치의 연애이야기 <사랑을 말해줘>를 만났다. 그의 연애이야기라고 하면 이전에 <여자는 두번 떠난다>라는 소설을 먼저 접한바 있다. 사실 그 소설은 내게 참 이상한 소설로 남아 있다. 그 이유인즉슨, 흥미롭게 시작해서 허무하게 끝나버리는 단편들 모음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정말 큰 일이 벌어질것 같고, 큰 사건이 벌어질것 같아 내심 조마조마 하게 만들다가 뒷부분에 가서 '엉? 이게 뭐야?' 를 내뱉게 만들었던 소설이었더랬다. 그런데 신기한것은 그런 단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단편속에서 내 젊은날, 한때 사랑을 했던 그 순간순간을 떠오르게 해준다는 거다. 왜 그런것 있지 않나. 길을 가다 어떤 물건을 보면 그 물건과 얽힌 추억이 떠오르고, 누군가 이야기를 하다 어떤 이야기가 나오자, 불현듯 그 사람이 생각나는...그래서 내겐 이상하고 묘했던 소설이 <여자는 두번 떠났다>였다. 허무소설인 동시, 추억을 회상하게 해주는 그런 이상했던 사랑이야기. 이번에 만난 <사랑을 말해줘>는 단편이 아닌 장편이라는 점에서 일단 '허무소설'로 끝나진 않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다. 아무래도 이야기가 짧다보면 결말 부분이 조금은 허무해질 수도 있기 마련이니.

 이야기가 길지 않다. 그리고 복잡하지도 않다. 많은 사건이 일어나지도 않는다. 간단히 줄거리를 말하라고 한다면 몇분만에 이야기 할 수도 있을것 같은 책이다. 순페이와 쿄코라는 여자가 만나 사랑을 하는 과정중에 일어나는 이야기를 담은 책이 바로 <사랑을 말해줘>이다. 여타의 연애이야기, 사랑이야기와 다른 점이라면 순페이의 세계와 쿄코의 세계가 다르다는 것이다. 세상의 사건을 다큐멘터리로 제작하는 순페이는 세상의 많은 소리를 듣는다. 많은 소리에 노출되어 있는 순페이와 소리가 들리지 않는 쿄코의 세상은 너무나 다르다. 언제나 조용한 세계에 살고 있는 쿄코는 겉으로 볼때엔 평온하고 온화해 보일지 몰라도 때때로 그 세계는 순페이에게 두려움과 무서움을 가져다 주기도 한다. 소리없는 세상, 조용함이 웬지 모를 섬뜩함을 안겨줄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새삼 해보게 된다.

 소리로 인한 에피소드가 몇가지 담겨 있는데 맘이 참 이상했다. 어떻게 보면 별것 아닐 수도 있겠지만, 나역시 순페이가 느꼈던 소리없는 두려움을 느꼈던 것이다.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소리를 들을 수 없는 상황을 그려보자 더 와닿았다. 그가 위험에 처해있을때 소리쳐 불러도 내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느낌이 들수도 있을것 같단 생각에 웬지 무섭다는 느낌이 들었다. '괜찮아. 상관없어. 난 그런건 신경 안써.' 나역시 그렇게 말할 것이다. 그러면서도 내가 의식조차 하지 못하는 사이, 조심스러워하는 나 자신이 그려져 웬지 맘이 묘해졌다.

 두 사람의 의사소통의 방법은 필담이다. 보통 연인들이라면 대화를 하고, 서로 의견이 안 맞거나 화가 나는 일이 있으면 바로 내뱉게 된다. 그런데 이렇게 필담으로 주고 받게 되면 입에서 바로 나오는 문장이 종이에 옮겨지는 과정에서 맘이 가라앉게 되기도 하고 한번 더 자신의 생각을 돌아보게 될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때로는 자신의 이런 저런 이야기를 마음껏 퍼부을 수 없다는 사실이 조금은 답답할것 같단 생각도 들었지만 말이다.

 보통의 연애이야기와 달리 둘의 세계가 달랐기 때문인지, 그들의 내면을 더 자세히 들여다 보게 된다. 어떻게 보면 큰 사건이나 긴장감 없이 진행되는지라 조금은 밋밋해 보일수도 있는 이야기인데, 책장을 덮고나면 한동안 묘한 여운이 남는다고나 할까.

 쿄코가 사라졌다. 연락이 되지 않는 쿄코...그리고 마지막 드디어 쿄코에게 온 문자..."우리집 못찾고 헤맬 때 기분이 어땠어?"라는 문장, 그리고 그 문장에 답을 하며 몇번씩이나 문장을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는 순페이를 보며 가슴이 뭉쿨했다. 그 문장 하나만으로도 쿄코의 말하지 못했던 그간의 심정이 어떠했을지, 그리고 순페이의 마음은 떠 어떠했을지를 짐작해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쿄코의 세계만큼이나 정적인 소설이다. 잔잔하고 밋밋해 보이기도 하는 소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장 문장들을 꼽씹으면 웬지 묘한 여운을 주는, 그래서 가슴을 짠하게 만들어 주는 그런 소설이기도 한 <사랑을 말해줘> 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