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닥치는 불행이나 사고는 영화나 소설속에서만 존재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나와는 거리가 먼 이야기라고만 생각했는데, 영화에서나 나올법만 일을 나도 겪었다. 생존율 50% 라는 의사의 말. 그리고 중환자실에서의 병원생활. 지금 생각하면 그 모든게 꿈같기만 하다. 그러나, 나에게 그러한 일이 있었다. 그래서일까. 이 책을 읽으며 더 공감했던 것 같다. 만약 내가 그런 긴병원생활을 하지 않았더라면, 의식을 잃고 중환자실에 실려가지 않았더라면, 이 책이 지금처럼 크게 와닿지는 않았을 것이다.

 

중환자실에서의 삶은 뭐라고 표현할 수가 없었다. 매일 매일 사람이 죽어나간다. 옆자리에서 숨을 쉬던 사람이 다음날 실려 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럽고 두려웠는지. 마치 내가 그리 될것 같아 얼마나 울었는지.

애써 모른척, 음악을 듣고, 어리광을 부리고 아무렇지 않은 척, 덤덤한 척, 씩씩한 척 그렇게 하루하루를 버텼다. 가족이 참 그리웠다. 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그런 감정들을 그 안에서 모두 느꼈다. 생일도 중환자실안에서 맞이했다. 지금도 기억한다. 여동생이 빨간모조장미를 선물로 가지고 왔는데 그 장미밑부분을 누르면 생일축하노래가 나오는..남동생은 날 위해 기도를 해주었다. 어리게만 봤는데, 내 손을 꼬옥 잡고 기도하는 모습을 보며 참 묘했던 그 느낌, 지금도 생생하다.

 

저자는 말했다. 견디기 힘들 정도로 슬픈 일 앞에서는 누구도 면역력이 없다고. 그리고 저자는 말했다. 행운과 불행은 언제나 보이지 않는 단단한 실로 함께 묶여 있다고. 나역시 그 사실을 그때 알았다. 하루하루가 정말 너무나 길었다. 걸을수도 없어 하루종일 누워만 있었다.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이 그렇게 고마운 사실이라는 걸 그때 새삼 느꼈다. 잠도 오지 않지만, 할 수 있는 게 없어 그냥 눈만 감았었다. 그때 소원은 '어서 빨리 중환자실에서 나가자' 였다. 그리고 보름후 나는 일반병실로 옮길 수 있게 되었다. 그 기쁨이란!! 중환자실에서는 하루종일 누워있기만 했는데 (간호사 언니, 의사선생님만 바라보며~), 일반 병실로 옮기자, 텔레비전이 있어 덜 지루했던 기억이 난다. 그래도 몸을 움직일수 없어 몇개월동안 계속 누워있었다. 그래도 중환자실에 있을때엔 산소호흡기를 달고 있었는데, 일반병실에서는 거추장스러운것들이 없어져서 한결 나았다. 몇개월뒤에 자리에서 일어나는 연습을 했는데, 난 좌절했다. 몇개월동안 누워있기만 했더니, 일어나자마자 피가 쏠리면서 그대로 쓰러져 버렸기 때문이다. 다리를 못쓰게 될꺼라는 좌절감. 아~그때 생각만 하면 아직도 눈앞이 캄캄하다. 벽을 짚고 3분만 서 있어도 피가 쏠리면서 다리가 보라색으로 변하면서 구역질이 나는데..그 고통은 겪어본 사람만이 알 것이다. 혼자서 서 있을수 없다는 사실에, 일어나자마자 쓰러지는 현실앞에 얼마나 좌절했던지.

갓난아기가 처음 걸음마를 배우듯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연습했다. 물리치료도 열심히 받고 운동도 열심히 해서 5개월인가, 6개월후에 퇴원을 할 수 있었다. 물론 퇴원을 하고서도 잘 걷지는 못했다. 피가 쏠리고 호흡이 가빠져서 참 힘들었던 기억...이 책 <살아가는 힘>을 읽으며 그때의 기억이 물밀듯이 밀려온다.

 

나는 사고였지만, 저자는 병이었다. 그것도 암. 나와는 조금 다른 케이스였지만, 한순간에 절망으로 빠지는 그런 느낌은 비슷하지 않나 싶다. 그리고 나처럼 삶에 더 애착이 생겼으리라. 삶을 조금 더 다르게 살아보고 싶은 마음, 그 마음 나도 안다.

 

저자는 말한다. '살아가는 힘은 내가 유방암 치료를 받는 동안 기쁨을 찾기 위한 조언이 필요할 때 내 스스로에게 쓰던 편지에서 시작되었다. 내가 사랑했고 잃어버린 것들을 위한 헌사였으며 여러가지 어려움을 겪고 살아남은 사람들을 위한 찬사였다. 비록 이 책은 회고록은 아니지만 이제껏 내가 쓴 책들 가운데 가장 개인적인 내용을 담았다.'(p131~132)

 

암치료를 받으면서 삶에 대해 다시 돌아보게 되는 저자를 보며, 나역시 삶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게 된다. 저자는 나에게, 우리에게 많은 조언을 해준다. 나만의 영웅을 만들고, 마음껏 즐기고, 함께할 친구를 찾으라고, 또,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고 슬픔을 받아들이고, 스스로에게 관대해지라고.. 저자가 말해주는 많은 조언들은 나 역시 그 당시 느꼈던 생각들과 일치하는 내용들이 많아 공감하며 읽어나갔다. 저자는 누군가를 용서하라고 했는데, 나는 저자처럼 마음이 넓지 못한 탓인지 아직도 내 삶을 다른 방향으로 가게 만든, 사고를 일으킨 그 사람을 끝끝내 용서 못하고 있다. 지금은 많이 누그러졌지만, 입원해있을 당시에 마음속으로 몇번이나 그 사람에게 저주를 퍼부었는지 모른다. 내가 왜 이렇게 힘든 고통을 받으며 이곳에서 이러고 있어야 하는건지, 내가 무슨 잘못을 그렇게 크게 저질러 이 고통을 견디고 있어야 하는건지, 나에게 묻고 또 묻었다. 용서란...그래서 나에게 참 어려운것 같다.

저자는 유방암 치료를 받을때 지원단체에 가입했다고 하는데, 그 글을 읽으며 나 자신이 조금 부끄러웠다. 여기(병원)서만 나가게 해주면 좀 더 나은 삶을 살겠다고, 봉사활동도 수없이 하며 나보다 못한 이들을 도와주며 살겠다고 마음속으로 다짐했는데, 실상은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래서 화장실 갈때 다르고 나올때 다르다는 말이 나오나 보다. 아~그때 가졌던 마음들을 좀 더 실천에 옮기는 내가 되도록 해야 겠단 생각을 해본다.

 

암진단을 받은지 십오년이 지난 후 예전에는 상상조차 하지 않았던 모습으로 살게 된 저자와, 사고후 긴 치료를 받으면서 예전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삶을 살고 있는 나는 묘하게 닮았단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책을 읽으며 나는 과거의 나와 조우하며 그때를 회상하게 된다. 그때 내가 느꼈던 삶은 지금 느끼는 삶과는 또 다르기에, 한없이 부끄러워진다. 최선을 다해 하루 하루 살아가겠단 그 다짐...지켜며 살도록 노력해야 겠다. 일상적인 삶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살아가는힘, 에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