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카 코타로의 <골든슬럼버>를 재미있게 읽어서, 그의 다른 작품 <마왕> 역시 큰 기대감을 가지고 있었더랬다. '초능력을 가진 형제와 파시스트 정치가의 어이없고 진지한 대결, 록밴드 공연에서 축구 국가 대표전에서 느끼는 이상한 공포의 정체는 무엇인가.' 하는 광고띠의 문구도 내 시선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골든슬럼버>를 철저학 오락소설이라고 광고하는 문구를 보며, 오락소설이지만 분명 생각할꺼리- 커다란 힘, 권력을 가진 국가 규모의 악의에 대한 우리 개개인들의 힘, 매스컴을 얼마만큼 신뢰할 수 있을까 하는 것등 -를 던져주었기에 그저 흥미와 재미만을 추구하는 소설과는 다른 그 무엇을 느꼈더랬다. 또한 한 남자에게 닥친 황당하고 이해할 수 없는 사건에 휘말려 들면서 얼마나 긴장하며 그를 따라다녔는지 모른다. 스릴감 있는 소설에 푹 매료되었었는데 <골든슬럼버>를 읽고 난 후 <마왕>을 접해서인지 이번에 읽은 <마왕>은  조금은 싱겁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우선, <골든슬럼버>와 같은 흥미진진한 스릴이 없었기 때문이고, 다음으로는 복화술 ( 30보 거리안에서 상대방을 응시하며 머릿속으로 그 사람이 되었다 생각하고 말을 내뱉으면 상대방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 그 말을 하게 되는 능력)을 가진 형 안도와 동생 준야가 세상에 대항하려고 했지만, 사실상 이렇다할만한 행동을 하진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형 안도는 이누카이에게 나름의 능력-복화술-을 이용해 대항을 하지만, 이렇다할 성과도 없이 허무하게 세상을 뜨기 때문이다. 준야 역시 형이 죽은후 자신의 새로운 능력을 알게 되지만, 긴장감 넘치는 사건전개도 없고, 그들의 심리나 돌어가는 일본의 정치 이야기들이 소설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어 뭔가가 조금 빠진듯한 느낌이 들었더랬다.

 <골든슬럼버>에서, 그리고 <마왕>에서도 우리 개개인의 힘은 너무나 미약했다. 삐뚤어진 세상, 잘못된 세상을 한번에 바로 잡을 수도 없고, 영화에서처럼 슈퍼맨이나 배트맨 같은 능력을 지닌 사람이 존재할리도 없다. 현실에서의 우리 개개인은 국가, 그리고 권력에 의해서는 나약해질 수 밖에 없는 존재라는 사실에 새삼 서글퍼졌다.

 그렇지만, 안도와 준야를 보면서 웬지 모를 희망을 보았다. 그들의 초능력이 보잘것 없고, 크고 거창하게 일을 도모하진 않았지만 그들은 분명 광기에 사로잡힌 군중들 앞에서 '뒤집힌 치마'를 바로잡을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그런 광기에 사로집힌 군중들과 같은 행동을 하진 않으리라 생각하지만, 방관자일 수 밖에 없다는 생각에 안도와 준야가 대단하다 느껴졌던 것 같다.

 예전 <마왕>이라는 드라마를 즐겨 본 적이 있다. 그 드라마에서도 초능력을 가진 사람이 등장한다. 드라마 <마왕>의 기획의도가 사회전반에 깔려 있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크고 작은 무심한 폭력과 차별이 인간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그로 인해 피해자와 가해자가 치러야 하는 희생의 대가가 어떤것인지 경각심을 불러 일으켜 주는 것이라 한다. 그리고 기획의도처럼 난 그 드라마를 보며 참 많은 생각들을 하며, 조금은 무섭다는 느낌도 가졌다. 소설 <마왕>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지만, 둘 다 우리의 경각심을 불러일으킨다는 점,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 안의 괴물을 보게 만들어 준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참 섬뜩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소설 <마왕>에서는 파시즘이니 평화헌법 (헌법 9조) 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정치에 대한 이야기들이 나온다. 사실, 정치하고는 담을 쌓고 있는지라 크게 와닿지 않을 줄 알았다. 하지만, 조금은 특별한 초능력을 가진 두 주인공을 등장시켜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서인지 거부감없이 책을 읽을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파시즘이란게 그렇게 무서울수 있구나 하는 생각도 해보고 말이다.

 '안도와 준야, 그리고 지배인이라는 독특한 캐릭터로 좀 더 흥미진진하게 이야기를 이끌어 나갔더라면' 하는 아쉬움도 없지나마 있었지만, 평소엔 관심가져보지 못했던 문제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