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깊은 나무>, <바람의 화원>을 재미있게 읽었는데 그 뒤를 잇는 2008 한국형 팩션이라는 문구를 보자, 호기심이 동했다. 역사소설을 즐겨 읽는 편이다. 역사적인 사건에 작가의 상상력이 가미된 새로운 이야기는 역사책을 읽는것과는 또 다른 감흥을 불러 일으킨다. <왕의 밀사>에 등장하는 조선통신사를 보며 웬지 모를 반가움도 느껴본다. 며칠전 읽은 <소년, 아란타로 가다>라는 책 역시 조선통신사들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그 책속에선 1764년 4월 7일 최천종이 일본인의 칼에 찔려 사망한 사건의 이야기가 나온다. 실제로 벌어졌던 한일사의 미스터리로 남는 살인사건의 이야기가 등장하지만, 살인사건이 주가 되기 보다는 그 사건속에 얽힌 조선의 모습이라던가, 인물들의 고뇌등을 옅보고, 점차 성장해가는 소년 청유의 이야길 들을 수 있었다. 청유와 함께 나 또한 성장해가는 느낌이 들었다면, 이 책 <왕의 밀사>는 조선통신사가 교토에 도착한 다음날 살인사건이 벌어지고 종사관이 살인범의 누명을 쓰게 되면서 진실을 파헤쳐 가는 추리소설로 볼 수 있다.

 조선통신사, 그리고 살인사건이라는 공통분모때문인지, 책을 읽으면서도 이전에 접했던 소설 좀 더 정확히는 그 소설을 통해 알게 된 최천종 살인사건-이 자꾸만 떠올랐는데, 아니나 다를까 작가후기에서 1764년 최천종 살인사건의 이야기를 끄집어 내며 <왕의 밀사>가 구상되고 시작된 지점이 바로 여기에서부터였다고 말해 웬지 찌릿한 느낌이 들었다. 그 느낌은 같은 역사적 사건을 바라보며, 작가의 상상력이 이렇듯 전혀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에 대한 감탄이었다. 그래서, 내가 더 역사소설을 즐겨 읽는지도 모르겠다.

 이 책은 앞서 잠깐 이야기 했듯 통신사절단이 교토에 도착한 다음날 살인사건에 휘말리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역관 박명준을 따라다니며 사건의 실체를 파헤쳐본다. 지금까지 읽었던 한국형 팩션소설의 무대가 대부분 조선, 신라, 고구려 등 우리의 역사적인 장소에 머물러 있었다면 이 책 <왕의 밀사>는 교토에서 이야기를 진행해 나가고 있어 조금은 색달랐던 것 같다. 아쉬웠던 점은 우리나라의 역사에 대해서는 어느정도 알고 있기에 소설을 즐겨 읽을 수 있었던 반면, <왕의 밀사>는 일본의 권력구조가 어떤지 일본의 역사가 어떠한지에 대해 너무 문외한이라 이전에 읽었던 <뿌리깊은 나무>나 <바람의 화원>처럼 술술 읽히지는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그렇기에 책을 계기로 일본의 권력구조나 역사에 대해 조금 더 알게 된 시간이 되기도 했다. 소설의 내용을 다 접해본 후에 '부록'편을 읽었는데 '부록'편에서 조선통신사 편성이라던가 당시 일본 권력 지형도, 그리고 소설에 등장하는 실존인물, 소설에 나오는 일본의 설화와 역사를 정리해 두고 있어 '부록'편을 먼저 읽고 소설의 내용을 읽는다면 좀 더 술술 읽히지 않을까 싶다. 개인적으로 부록편이 참 마음에 들었다.

 연쇄 살인극과 살인범을 추적하는 역관 박명준, 그리고 네덜란드 선교단의 복수와 명 왕조의 부활을 꿈꾸는 몰락 귀족, 그들이 꾸민 음모와 들어나는 실체를 들여다보며 긴장하며 책을 읽어나갔다. 무엇보다 사건이 벌어지고 그 사건이 왜 벌어졌는가를 밝혀나가는 과정, 즉 추리의 묘미를 느낄 수 있어 좋았다. 가장 큰 수확은 아마도 일본의 역사에 대해 조금 더 알게 된 것이 아닐까! 더불어 작가가 만들어 낸 상상력의 세계, 상상으로 만들어낸 역사적인 그 순간을 들여다 볼 수 있었던 것이 아닐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