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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킹을 처음 알게 된건 <Kingdom Hospital>을 통해서였다. 주말의 명화였던가, 아니면 특집방송으로 보여주었던가. 오래전이라 가물가물 하지만, 주말밤마다 보았고 꽤 긴 분량이라 며칠에 걸쳐서 (혹은 그주에 보고, 다음주에 연달아 보는식으로) 보았던 기억이 난다. 그 작품이 인상적이었던 이유는 현실과 환상이 교묘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고, 그 속에서 그가 뿜어내는 독특하고 특별한 공포를 보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시의 나는 ’공포’보다는 ’환상’에 더 관심이 있었나 보다. 현실과 환상이 그렇게 조화를 이룰 수 있다는것, 그리고 그 속의 캐릭터들에 빠져든것을 보면 말이다. 아직까지도 신비한 개미햝기가 기억에 남는다. 한남자가 뺑소니로 교통사고를 당하게 되고 킹덤병원으로 실려가 수술을 받지만, 식물인간이 된 그는 모든소리를 듣지만 몸을 움직일 수는 없다. 종을 울리며 돌아다니는 한소녀 (유령) 그리고 병원 깊은 곳에 도사리고 있는 어둠, 유령들, 그리고 한번씩 나타나는 그 신비한 개미햝기. 분명 병원에서는 무슨일이 있었다. 그리고, 그 일은 종을 울리며 돌아다니는 소녀유령과 관계가 있다. 타인의 눈에 비친 식물인간이 된 사내. 그 사내가 보고 겪는 이상한일들, 킹덤병원안에서의 비밀은 과연 무엇일까? 정말 참 재미나게 보았던 기억이 새록 새록 피어난다.

그리고 스티븐 킹에 얽힌 재미난 (혹은 대단한?) 일화도 있다. 이 일화는 내가 즐겨 보고 있는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에 나왔었는데 당시에 보고서 ’역시’라는 말을 절로 내뱉게 만들었더랬다. 스티븐 킹의 글이 식상하다는 비판과 함께 인기가 점점 식어갈때쯤 ’리처드 바크먼’이라는 사내가 <분노>라는 책을 내게 되고 그 책은 명성을 얻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스티븐킹과 리처드 바크먼의 글을 비교하며 이제 스티븐킹은 한물갔다는 식으로 이야기하곤 했다. 그리곤 리처드 바크먼을 천재작가라며 떠들어 댔다. 그러던 중에 스티븐킹이 소설을 쓰게 되는데 그 소설의 내용이 리처드 버크먼에게서 똑같이 일어나게 된다. 거기다, 리처드 버크먼이 죽게 된다는 끔찍한 결과까지 말이다. 스티븐킹이 책을 내면서 자신의 명성을 위해 리처드 버크먼을 시기해서 죽인것일까? 아니면 그의 소설에서 보이는 초자연적인 현상처럼 그에게도 예지능력이 있었던 것일까? 많은 말들이 오가는 가운데 나타난 진실은 사람들을 경악하게 한다. 그 진실은 ’리처드 바크먼’이란 작가가 바로 ’스티븐 킹’ 본인이었기 때문이다. 가상의 인물을 만들어 책을 내고 사람들을 놀라게 했던 작가..그때도 느꼈지만, 지금 생각해도 정말 대단하신 분이다.

이렇듯 <듀마 키>를 접하기 전부터 나는 스티븐킹을 만난다는 사실 (그의 다른 작품을 접한다는 사실) 에 가슴 설레었는지 모르겠다. <Kingdom Hospital> 이후, 그의 단편을 찾아보긴 했지만 장편소설은 접해보지 못한터라 더 그랬다. 교통사고 이후 그의 글은 예전만 못하다는 평도 들리긴 했지만, 오랜만에 만나는 나는 그의 또 다른 공포와 환상적인 교묘한 어울림이 주는 그만의 세상으로 하나 둘 발걸음을 내려놓았다.

불의의 사고로 장애를 입고 듀마키 섬에 요양을 온 사업가 에드거가 책속의 주인공이다. 끔찍한 사고를 당한 에드거의 심리묘사는 실제 교통사고를 당하고 죽음의 문턱까지 넘나들었던 스티븐킹의 경험이 묻어나 생생한 묘사를 이룬것 같다. 어렸을 적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스케치북에 그림을 그리면 그 그림이 살아서 밖으로 튀어나오는 상상, 혹은 그 그림이 현실로 이루어지는 상상. 하지만, 어릴적이었기에 그런 상상은 꿈과 환상이 있는 신기하고 재미난 몽상에 불과했다. 그런데 이곳 듀마키에서 그런 비슷한 능력을 가지게 되는 엘리자베스와 에드거의 능력은 그런 환상에 공포를 더해준다.

에드거가 사고 이후 듀마키에서 그런 그림은 걸작중의 걸작이 된다. 살아 숨쉬고 있는듯한 그림,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감탄사를 내뿜게 만드는..하지만, 거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다. 그가 그린 그림이 현실에서 이루어지게 된다. 그림을 그려 한쪽눈이 보이지 않는 친구의 병까지 고치는 에드거. 하지만, 그 그림은 그런 환상적이고 신비한 존재이면서 동시 불운하고 무서운 존재였다. 그 그림으로 하여금 모든 재앙이 닥친다. 그리고 그 그림을 통해 보이지 않았던 ’퍼시’라는 새로운 존재에 대해 알게 된다. 도대체 퍼시는 누구인가? 그런 재앙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 이제 그에겐 어떤 일들이 벌어질 것인가?

역시나 스티븐킹 답다. 이 소설에서 역시 환상과 공포가 아주 멋지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 공포스럽지만 끔찍하고 잔혹하기만 한것이 아니라, 끔찍함 속에 신비로운 환상을 담아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조금 아쉬웠던 것은 초반 (1권) 의 사건진행이 너무 더디게 간다는 점이다. 다행히 성격상 사건이 벌어지고 그 사건에 무언가 있음을 감지한 나는 끝까지 책장을 넘길 수 밖에 없었지만, 시건 진행이 더디고 긴장감이 덜한 소설을 따분하게 생각하는 독자라면 1권을 읽는데 많은 시간을 소모하거나 조금은 지칠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든다. 하지만, 1권을 끝내고 무언가 있음을 감지했다면 2권을 펼쳐보시라. 조금씩 조금씩 그 무언가의 비밀이 밝혀짐을 느끼는 동시, 어느새 손은 책장을 빠르게 넘기고 있을테니 말이다.

2권의 3분의 1정도가 지나고 나서야 나는 정신없이 책장을 넘기게 되었다. 그리고 절반정도가 지나고 나서는 빠르게 진행되는, 그리고 긴장감넘치는 그 일에 합류하여 정신없이 빠져들었다.

책을 덮은 지금은 스티븐킹의 <듀마 키>를 보며 포만감에 젖어 있다. 하지만, 퍼시의 존재에 대한 명확하지 않는 점들이 있어 조금은 아쉽기도 했다. 아마 퍼시에 대한 구체적인 이야기를 책속에 넣는다면 분량은 배로 늘어날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든다. 무더운 여름엔 스티븐킹의 소설이 제격인것 같다. 공포와 환상의 어울림이 가져다 주는 싸한 시원함을 느껴보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