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야베 미유키라는 이름 하나만으로도 잔뜩 기대를 거는 수많은 팬들이 있다. 신간이 나오면 촉각을 곤두세운다.

나도 꽤나 그 대열에 합류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여사님의 작품을 뭘 읽었나, 하고 꼽아보니 그다지 많지가 않다..

그건 두 가지 이유인 듯 한데, 내가 읽은 작품은 하나같이 어찌나 두꺼운지 읽은 것이 웬만한 책 몇 권을 읽은 것에 맞먹었다는 것이고, 또 다른 이유는 '추리소설'만이 아니라 다양한 장르까지 섭렵하시며 소설을 썼다는 것에 있지 않나, 하고. 뭐 어쨌든 내 생각은 그렇다.

 

그리고 <용은 잠들다> 이외에 내가 읽은 그녀의 작품들은 하나같이 모두 굵직하기 짝이 없는 사회파 미스터리인지라, 그에 비하면 조금은 가볍고 일상적일 것 같은 이미지의 <명탐견 마사의 사건 일지>는 조금 새로운 모습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앞섰다.

게다가 '개의 시선'으로 그려냈다는 점에서, 최근에 읽었던 <고양이 탐정 쇼타로의 모험> 시리즈가 떠오르는 것이, 뭔가 흡사하지 않을까 싶기도 했고. 그냥 실존하는 동물들을 마주치면 무서워 도망가버리지만, 책 속에서만큼은 귀엽고 듬직한 모습을 지켜볼 수 있겠지.

 

「마음을 녹일 것처럼」사랑스러운 어린 소녀가 웬 자동차 트렁크에 몸을 숨긴다. 이를 목격한 마사의 주인집, 하스미 가의 둘째 딸 이토코와 모로오카 신야는 소녀에게 다가갔다가 의식을 잃고 다음 날 집으로 돌아온다. 소중한 딸이자 동생의 외박에 충격을 받은 하스미 탐정사무소의 소장 고이치로와 사무소의 조사원 가요코. 가요코는 동생들의 이 피치 못한 사정을 알아보고 변해 주리라 마음을 먹고, 듬직한 파트너와 함께 탐문에 나선다. 매일 아침 익숙해진 산책에 정확한 시간 리듬이 지켜지는 두 파트너, 가요코와 마사는 「손바닥 숲 아래」에서 웬 시체를 발견하고 재빨리 경찰에 신고하러 달려가지만, 마사의 눈앞에서 시체는 갑자기 달려가더니 사라져버린다. 이 사실을 파트너에게 전해줄 길이 없는 마사는 발을 동동 구르기도 한다.

한 회사의 사장이 목숨을 잃는 사건도 있다. 유력한 용의자는 잠적한 상태에 상당한 부채로 인한 살해 동기도 명백해 보인다. 용의자의 누나는 하스미 탐정사무소에 '왜 동생은 빚을 졌는지 알아봐달라'고 의뢰하고, 그의 행적을 좇다 드러나는 것은 마음아픈 과거였는데.. 그럼에도 「백기사는 노래한다」. 평소에 휴가는 커녕 공휴일조차 제대로 챙길 수 없는 탐정사무소에서 3박 4일로 사원여행을 떠난다. 불량청소년들의 행실로 뒤숭숭한 마을 분위기 속에서, 탐정사무소 앞으로 토끼 다섯 마리를 가져다놓은 소녀가 '누군가 토끼를 살해하려 한다'고 하고, 그 와중에 한 남자가 살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탐정사무소가 비어 있어도 「마사, 빈집을 지키(다)」는 활약은 계속된다. 그리고 마지막, 하스미 탐정사무소를 찾아온 미야베 미유키라는 작가의 의뢰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짧은 페이지 속에 굉장히 미야베 미유키와 가까워진듯한 「마사의 변명」도 매력적이다.

 

내게 있어서 하스미 자매는 보물처럼 소중한 아가씨들이고

내 꿈은 어느 날인가 가요코와 이토코가 걸맞은 상대를 만나 웨딩드레스를 입은 모습을 보고,

그녀들이 손에 든 부케의 상큼한 향을 맡고, 그리고 그녀들을 시집보낸 뒤에

소장과 같이 돌아서서 남몰래 남자의 눈물을 흘리는 것이다.

-p.16, 「마음을 녹일 것처럼」

 

일본에서는 무려 1997년에 출간된 <명탐견 마사의 사건 일지>. 읽는 내내 귀여운(?) 맹견(!) 마사의 활약을 쏠쏠하게 지켜봤다. 과거 경찰견으로 활약하다 탐정사무소의 경호견으로 자리잡은 마사는 사실 인간으로 치면 '할아버지'에 가까운 나이 든 개다. 하스미 자매의 사랑을 받으며, 가요코의 파트너로서 활약하고 있는 마사의 모습은 다정하고 충직하다.

'사회파 미스터리의 여왕'이라는 칭호를 단 작가의 작품이었기 때문일까. 그냥 다른 작가의 단편이었으면 그냥 아.. 그런가보다..하고 읽었을텐데 왠지 이 책은 사회의 어두운 측면을 개의 시선으로 상당히 꼬집는 듯한 기분이 든다. 물론 실제로도 그렇다. 아동 유괴, 야쿠자와 마약 밀매, 사채, 마약 중독자, 동물 학대와 가정폭력... 뉴스에서 헤드라인으로 내세우면 온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들만한 사건들이다. 이를 사람이 아닌 '개'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으니ㅡ특히 「마사, 빈집을 지키다」에피소드에서는ㅡ상당히 인간으로서 마음이 뜨끔해지기도 했다.

어쨌든 그렇게 '사회파 미스터리'의 그림자를 드리우고 꽤나 심각한 문제를 다루고 있지만, 단편 한 편 한 편은 그렇게 심각하거나 어둡지만은 않다. 섬세하고 감성적인 미야베 미유키의 일면을 '마사'를 통해 본 건 아니었을까? 좀 낯설지만 다정한 미야베 미유키를 만난 것 같다. 적어도 나한테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