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T를 왜 듣냐,라고 하면 역시 영화 혹은 드라마를 볼 때의 감동이 되살아나기 때문이라 답할 것이다.

어디선가 귀에는 익숙하지만 머릿속에서 어렴풋하게 맴도는 노래가 있다, 이 노래가 뭐였지? 하고 고민하고 있다 보면 의외로 스쳐 지나가는 영화 속 음악에서 그 답을 찾는 게 쉬울 때가 많다. 그만큼 OST에서도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명곡이 많다.

나 같은 경우는 그런 OST라 하면 역시 히사이시 조의 음악이 기억에 많이 남는다.

 
예전엔 영화가 뭐.. 하고 그냥 넘어갔지만, 슬슬 어두운 영화관에서 몸을 배배 꼬지 않고 딱 집중하고 볼 수 있기 시작한 때가 중학교 1학년쯤이었던 것 같은데, 어쨌든 영화관에서 딱 집중해서 영화의 내용이 온전히 기억에 남아있었던 '첫' 영화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다. 돼지가 되어버린 부모님을 두고 당황해 하며 달려간 곳에서 치히로가 하쿠를 만날 때 흐르던 그 잔잔한 음악은, 여전히 잊지 못한다. 그렇지만 사실 이것도 역시 영화 속 장면이 너무나 생생해 뇌리에서 잊혀지지 않는 것이 아니라, 영화를 보고 난 뒤 영화를 잊지 못해 OST를 들으면서(중학교 1학년 주제에 CD를 살 용돈은 별로 없고, 이 때만 해도 mp3를 실시간으로 무료로 듣는 시절이었다.) '아.. 이 음악은 어떤 장면이었더라?'하고 갸우뚱 하다, 역시나 영화를 잊지 못해 영화를 다시 감상했고, 그 때 하쿠와 치히로가 만나는 순간 그 음악이 흘러나왔던 것이다.

아직도 나에겐 여전히 주저없이 손가락 다섯 개 안으로 꼽을 수 있는 장면과 음악이다.

 

혹은, 사소하고 짧은 순간이지만 올해 나를 즐겁게 해주었던 <지붕 뚫고 하이킥!>의 엔딩곡, 'Cause You are my girl~'로 시작하는 노래(제목도 모르겠다.. You are my girl인가?). 이것 역시 쉽사리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한때 월드컵의 안타까운 순간에 이 시트콤의 마지막회를 수없이 패러디하기도 했었고. 어쨌든 그냥 듣는 음악보다 뭔가 영상과 스토리와 함께 듣는 음악은, 쉽게 떠올릴 수 있고 음악을 들을 때의 감정을 살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두서없이 온갖 말을 가져다가 두 문단에 걸쳐 하는 이유는.. 그래, 나는 '막귀'의 소유자니까. 음악에 대한 지식은 거의 전무하고, 그냥 내가 듣고 싶은 것만 듣고 좋으면 좋고 싫으면 말고. 심지어 싫은 음악도 잘 없다. 처음엔 별로라 생각했지만 계속 듣고 있다보면 좋아지니까. 대중음악에서 음악성을 인정받고말고 이런것도 잘 모른다. 리스너(Listener)가 아니라 그냥 한 명의 '대중'이다. 남들이 다 듣는 노래는 들어보니 어라, 좋네, 들어봐야지. 그냥 돌아다니다가 특정 가수의 노래를 알게 되었다, 어라, 이 사람 노래 좋네, 다른 노래도 찾아 들어봐야지. 괜히 남들 모르는 노래를 나 혼자 알고 있으면 우쭐한 기분이 들기도 하는, 그야말로 그냥 그저 그런 대중의 한 사람이다. 말 꺼내놓고 다섯 줄이나 더 썼음에도 아직까지 별 쓸데없는 소리를 많이 내뱉고 있는 것도 역시 이런 음반의 리뷰는 낯설고 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무슨 말을 써야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 솔직하게 말해야지 아무것도 모르면서 대충 쓰는 것만큼 부끄러운 일도 없다.



▲노다메 칸타빌레 최종악장 Vol.1 포스터. 내가 사는 동네에는 개봉을 안 해(했었던들 짧은 기간동안만) 보러 가지 못한 불행한 일이 벌어졌다는..

노다메 칸타빌레는 만화를 원작으로 우에노 주리와 타마키 히로시를 주연으로 드라마가 제작되어 굉장한 인기를 끌었다. 일드 입문작으로 권장할 정도로 재밌고 유쾌한 드라마다. 뭐 그렇지만 이미 유명할대로 유명한 얘기고 이미 많이 알려져 있으니까 이 점에 대해서도 넘어간다.

그럼 무슨 이야기냐, 이건 빼놓을 수 없는 이야기이기에 간략하게 설명하자면, 항상 완벽하기로 소문난 치아키(타마키 히로시)와 괴짜 천재 피아니스트 노다 메구미(약칭 노다메, 우에노 주리)의 음악 이야기이자 중간중간에 깨알같이 사랑 이야기가 들어가 있다. 하지만 역시 가장 큰 매력은 클래식을 그려낸 것에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은 드라마가 만화보다 절대적인 우위에 있을 수 밖에 없다. 아무리 만화 지면상으로 노다메의 연주가 어쩌니 저쩌니 한들 알게 뭔가. 클래식과 별로 친하지도 않으니 제목만 보고 아 이게 어떤 곡이구나 하고 알 리도 없고. 그런 점에서 음악이 직접 드러나는 드라마가 당연히 아.. 이런 느낌이구나 하고 알 수 있기 때문에, 그야말로 치아키와 노다메의 사랑 이야기에 절대적인 초점을 맞추고 있는 독자가 아닌 이상 드라마를 더 즐겁게 볼 수 있을 것이다.

 

예술적 감수성과는 너무나도 거리가 멀기 때문에 항상 음악이나 미술 작품을 보며 '음..이 작품은..어쩌고저쩌고..'하는 전문가들의 의견이 너무나 신기했다. 물론 아는 만큼 보이는 거겠고, 난 아는 게 거의 0(아니..-1 이하라고나 할까)에 가까우므로 난 그림을 봐도 이게 뭔지 모르겠고, 화가의 영혼이 느껴지지도 않고 별 감흥도 없다. 음악, 특히 클래식 같은 경우는 곡은 정해져 있고 지휘자와 연주자에 따라 곡의 스타일이 달라진다고들 하는데 나는 그게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똑같은 음악이고 똑같은 곡조인데, A씨의 연주는 가볍고 경쾌한 반면 B씨의 연주는 묵직하다는 둥 하는데 난 그 차이를 그다지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노다메 칸타빌레를 보면서 나는 아, 이런 거구나, 하고 그 차이를 정말, 아주 정말 손톱에 낀 때만큼이지만 느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결정적인 계기가 노다메와 미네의 연주였다. 베토벤의 바이올린 소나타 제5번 작품 24 「봄」, 제1악장. 그들의 연주를 듣고 다른 학생의 연주가 나오는 것을 지켜보면서, 아, 이들의 연주는 '봄'이라고 하기엔 뭔가 따뜻함? 온화함?과는 거리가 멀구나.. 하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 외에는 그냥 그랬다. 치아키가 지휘하는 S오케의 연주와 교수님이 직접 우등생들을 선별해 지휘하는 A오케의 연주는 그닥 구분이 안되었다. 무슨 차이인지 몰랐다. 그냥 그런 것이다.

 

 
▲노다메 칸타빌레 드라마를 보고 냉큼 사버린 노다메 오케스트라 LIVE! 드라마면서 CD는 웃기게도 만화로 커버를 만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드라마가 끝난 뒤 한국에서도 라이센스를 달고 『노다메 오케스트라 LIVE!』가 샀을 때 왜 CD를 당장 샀느냐.. 하면 사실 그 이유를 잘 모르겠다. 그냥 노다메와 치아키가 연주하는 모차르트의 2대의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D장조 K.448, 제1악장이 너무 좋아서. 심지어 노다메와 치아키가 함께 처음으로 호흡을 맞추는 순간, 2소절(인줄도 몰랐지만 곡명에 그렇게 쓰여있길래)만에 틀리던 그 곡마저 디테일하게 살려놓은 것이 너무 좋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왠지 낯설지 않은, 어디서 들어본 듯한 클래식이 담겨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드라마를 볼 때의 즐거움, 혹은 치아키가 자신만의 컴플렉스를 극복해 나가며 성장할 때의 그 짠한 감동(이건 뭐 노다메 칸타빌레가 아니라 치아키 칸타빌레다)을, 클래식 연주와 함께 되살려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서였다. 하지만 웃기게도 CD는 오케스트라 편과 기악 편으로 나뉘어 있을 때 노다메의 피아노 연주가 담긴 기악 편만 거의 무지하게 들었다. 오케스트라는 곡이 10분 이상으로 흘러가는, 좀 길기도 길었고 말이다.. 그래서 드라마 노다메 칸타빌레 in 유럽이 특별편으로 방영되고 난 뒤에도, 역시나, 유럽에서의 노다메의 피아노를 듣기 위해 『노다메 칸타빌레 스페셜 BEST!』 역시 라이센스를 달고 살포시 레코드점에 놓여 있는 것을 집어 왔다.

 

 
▲노다메 칸타빌레 in 유럽 속 곡이 담겨 있는 노다메 칸타빌레 스페셜 BEST! 역시나 드라마임에도 불구, 커버는 만화다.  이전의 CD와의 차이라면, 배경색과 노다메 밑의 그림이 오케스트라에서 유럽에서 만난 두 외국인 친구로 바뀌었다. 남학생의 경우 엄청난 오타쿠!

 

 

그리고 이번에는, 영화로 나왔단다. 노다메 칸타빌레 최종악장 전편. 역시나.. CD도 발매되었다. 영화를 봤으면 또 그 기분에 휩쓸려 CD를 샀겠지. 그랬는데 덜커덕, 리뷰의 기회가 주어지고 만 것이다. 이번에는 무려 CD가 3장이나 들어 있다. 영화도 아직 못봐서 영화도 안 본 채 OST를 먼저 들어보기는 또 그냥 안 보는 드라마 OST 챙겨듣는 거랑 다를 바 없다.

 

 
▲오호라.. 드디어 영화 포스터를 그대로 가져온 OST. 구도는 비슷해 보이지만 역시 만화 속 노다메보다는 우에노 주리가 예쁘다.  여자의 입장에서는 여자 주인공은 항상 청순가련에 예쁘기만 하면 좀 짜증나는데(게다가 우유부단하면 정말정말 싫다, 순정만화보는 재미가 없다), 노다메 칸타빌레의 경우 여주인공의 편견을 뒤집었다 할 수 있다(캐릭터도 독특하지만 작가님 그림이..ㅠㅠ). 그렇지만 그게 더 짜증나더라. 주인공이 마음에 안드는 것은 참 오랜만이었다. 비호감 폭발(아님 나의 열폭?). 우에노 주리처럼 예쁜데 진상부리면 좀 귀엽던데. 역시 사람은 예쁘고 봐야하는 것인가.. 좀 슬프다.

 

 

하지만 다행히도 치아키의 베토벤 교향곡 제7번의 사랑은 계속되었나보다. 1번 CD를 재생하는 순간 낯익은 음악이 흘러나오고, 2번 CD 속 노다메의 피아노 연주 속에도 낯익은 곡들이 많이 들어있기 때문이었다. 다만, 3번 CD 속 마르레 오케는 도대체 누구야? 하고 고개를 갸우뚱할 수 밖에 없었다. 만화책도 안 보고 있어서 어느 정도 진척되었는지도 모르겠고.. 그래서 3번 CD는 아마 세 개의 CD 중 가장 감흥은 없었다. 그래도 꽤 귀에 익은 클래식들이 흘러나와 반갑긴 했다. 특히 7번 트랙의 베토벤 교향곡 제9번 D단조 작품125 「합창」 중 제4악장의 일부, 그 합창이 울려퍼지는 곡은, 또 다른 영화 <카핑 베토벤> 속 베토벤이 이 교향곡을 완성하는 순간의 전율이 되살아나기도 했고.

아차, 그리고 노다메의 피아노 연주를 담당하는 연주자가 바뀌었다. 오케스트라의 경우 기본적인 지휘자는 변하지 않았지만 체코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좀 더 낯선 분들의 연주가 추가되었고, 노다메 편의 경우 중국인 피아니스트로 추정되는 랑랑 씨의 연주인데, 지난 CD에서 다르다 한들 나는 그 차이를 별로 못 느꼈기 때문에 그냥 넘어간다.(결국 할 말이 없는 것이다..)

 

 

 
▲DISC1을 들어보니 치아키와 노다메가 다정하게 웃고 있다. 예쁘다.


▲CD 3개는 어떻게 들어있을까..했는데 여기에 한장, 그리고 뒷면에 두 장이 들어있다.


▲뒤쪽에 있는 나머지 CD 2개. 빨간색이 노다메 편, 초록색이 마르레 오케와 동료들 편이다.


▲역시나..Disc 3을 들어내보니 치아키에 대한 노다메의 애정이 느껴지는 사진이 담겨 있다. 역시 귀엽다.

 

 

 

이번 영화는 우리 동네 영화관에는 개봉을 안해서 영화보다 OST를 먼저 접한 것이 좀 많이 아쉽다. 덕분에 CD 속 곡들에 대한 이야기보다 다른 이야기가 많았다(아마 영화를 안봤더라도 비슷했을것이라고는 생각하지만). 하지만 이 역시 곡에 대한 해석이나 클래식에 대한 오래된 편견ㅡ어려울 것이다,라는 것은 전혀 신경 쓸 필요 없을 것 같다. 그냥 내가 드라마를 즐겁게 보고 OST를 들으며 드라마의 장면 장면을 종종 떠올렸듯, 영화를 보고 영화를 봤을 때의 그 즐거움, 그들의 순간순간을 머릿속에서 되살려가며 그저 '들으면' 된다. 그것만으로도 이 OST를 듣는 즐거움은 충분하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래도 얼른, 영화를 봐야겠다ㅡ.

 

 


▲영화 속 스틸컷이 담겨 있다. 그들의 일상, 치아키의 마에스트로로서의 카리스마, 노다메의 피아노 연주 모두 담겨 있어서 좋았다.  그리고 마지막 사진.. 너드(Nerd) 치아키 너무 마음에 들어서 사진으로도 찍어보았다.


▲곡 해설과 연주자의 프로필. 곡 해설이라기엔 조금 거창하고 이 곡은 어떤 곡이다..정도로 소개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