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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얼마 전, '살인진드기'의 등장으로 사회 전반적으로 불안감이 조성되었다. 어느샌가 또다시 잠잠해졌는데, 치사율이 낮다는 것이 밝혀진 다음부터는 꽤 조용하다. 살인진드기가 매일같이 뉴스에 등장할 때도 크게 신경쓰고 있을거란 생각을 별로 안 했지만, 막상 치사율이 낮다는 말을 보고서는 나무 밑을 지나가는 게 덜 불안한 걸 보니, 내심 나도 걱정을 꽤 하고 있었던 게 아닐까 싶다.

실은, '살인 진드기'의 존재를 1년인가 2년 전에 처음 알았다. 일본에서 살인진드기에 물려 사망자가 발생했다는 기사를 보고서는 안 그래도 한국에 일본인 관광객도 많이 오는데 입국 심사 좀 철저히 하지 그런 건 또 안하겠지? 라며 혼자 불신에 휩싸여 있었고, 중국에서도 사망자가 나왔다는 이야기를 듣고 결국 우리나라에도 얘네들 막 퍼져나가겠구만... 망했다... 하며 또 역시 혼자서 괜히 발 동동. 그리고 나서 최근에… 는 앞선 이야기의 반복이니 생략하는 걸로. 다만, 지금 생각해보면 '살인진드기'에 대한 불안감이 일본에서 조성된 것이 유행처럼 국내에도 넘어온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목적이나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그래도 역시 생명에 직결될만한 위협이 있다고 하면 위축되고 겁을 먹게 되는 것은 대부분의 본능이 아닐까 싶다. 심각한 위협이 없다고는 해도 일단은 조심하고 보자는 심리가 있고, 수치가 낮다고 해서 그 위험이 나에게 찾아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여기서 시작된 대중들의 불안과 여론의 흐름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든 꽤 높은 파급효과를 가져올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니 가끔은 궁금해지는 것이다. 이 시점에 무슨 일이 있나? 하고.

그래도 솔직히 그렇게까지 '살인진드기'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 적은 없었는데, 뭔가 시기가 비슷하게 음모론을 펼쳐볼 떡밥을 던져주는 책을 만났다. 가이도 다케루의 <나니와 몬스터>다.

신종 인플루엔자 '캐멀'이 전세계적으로 전염되고 있으니 몇몇 주요 공항에서도 거금을 들여 방역소를 설치하는 대안을 마련한다. 그리고 몇몇 지역에는 캐멀 바이러스 검출 키트를 나누어주며 혹시 모를 감염자 발생에 대비하고자 했으나, 국내 첫 감염자는 의외로 전혀 상관 없는 지역에 위치한 '나니와'의 초등학생으로 발견되었다. 그리고 그 아이의 가족은 작은 지역 사회에서 고립되어 결국은 마을을 떠나게 된다. 그 뒤로도 속속들이 전국적으로 감염자가 발견되기 시작했는데, 이미 이렇게 환자가 발생했다는 것은 공항에서의 방역이 더 이상 의미가 없다는 것을 의미했고, 또 캐멀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일반 독감과 비슷한 정도의 독성을 지녀 치사율 역시 낮은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에서는 왜 끊임없이 캐멀에 관한 이야기를 매스컴을 통해 전달하며 불안감을 부채질하는 것일까? 그 이면에 숨어있는 의도는 무엇일까?

하지만 <나니와 몬스터>에서는 그 이면에 숨겨진 비밀만으로 이야기를 완성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처음부터 나니와에 침투해 들어온 몬스터의 정체를 밝힌다. 그리고 그 몬스터를 만들어낸 바이러스 그리고 이에 대항할 백신을 제안한다. 그리고 처방범위는 기존의 의료 현장의 구조를 넘어서 '의익주의'를 주장하며 정치에서의 의료의 위치를 주장하며 스탠스를 넓히기까지 했다. 지금까지의 메디컬 엔터테인먼트 소설에서 본격적인 사회파 의학 미스터리로 지평을 넓힌 셈이다.

가이도 다케루는 <나니와 몬스터>에서 미래에 대한 청사진을 제시하고 있다. 중앙에 집중되어있는 지역 행정의 정치적인 독립, 정의로운 검찰, 의학계의 견제. 히코네의 입을 빌려 그저 '허풍'에 불과하다고 하지만 언젠가는 그러한 사회를 만날 수 있으리라 굳게 믿으면서 말이다. 게다가 이전까지는 미처 몰랐던 'Ai 화상 센터'의 존재감은 <나니와 몬스터>에서 압도적인 존재감을 내비치며 앞으로 가이도 다케루가 창조해낸 세상 속에서 본격적인 역할을 해 나갈 것임을 암시하고 있는데, 이미 그의 데뷔작인 <바티스타 수술 팀의 영광>에서부터 이에 대한 언급을 꾸준히 했던 것을 생각하면 그가 글을 통해서 하고 싶었던 말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가 있다.

그저 '사쿠라노미야'라는 소도시의 도조 대학에서 벌어지는 메디컬 엔터테인먼트에 불과했던 가이도 다케루의 작품세계는 점차 범위를 넓혀가고 있다. <나니와 몬스터> 역시 그가 완성하고자하는 세계 중 하나로 짐작되는데, 그래서인지 소설 구석구석에 사쿠라노미야의 사람들 혹은 과거에 벌어진 사건 등의 언급 등을 깨알같이 발견하는 재미가 있다. 독립적이면서도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세계를, 그의 새 소설이 출간될 때마다 하나하나 퍼즐을 맞춰나가듯 완성하는 즐거움이 앞으로도 기다리고 있지 않을까 싶다.

다만 아쉬운 점은 기존의 메디컬 엔터테인먼트에 비해 <나니와 몬스터>에서는 본격적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쏟아넣기 시작해서인지, 소설적인 재미는 떨어지는 편이다. 처음에는 그가 생각하는 비전을 녹여내고 있기에 '이게 실현되는 건 어렵지 않을까', '그렇다면 조금 더 그럴싸하게 재미를 넣어주지'하는 생각을 했는데, 알고보니 그가 제안하고 있는 제도는 이미 일본에서 실제로 논의되기도 했다고. 현실성을 더 뒷받침하는 '사회파'로서의 위치가 새삼 더욱 견고하게 느껴지면서도 그래서 재미가 조금 덜했나? 하는 의문도 생긴다. 결국 내가 느끼기에 가장 즐거운 판타지는 명쾌하게 이해하기도 쉬운 '이상' 그 자체가 아니었을까, 그렇기에 그것은 나의 환상 속에만 남아있게 되지 않을까, 책을 덮으며 그런 생각을 했다. 그러나 결국은 느리더라도, 좋은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다.

인식되지 않는 사실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갈파한 철학자가 죽은 지 몇 세기가 흘렀다. 아프리카 대륙 남쪽 사막 위에는 그 철학자가 파리의 길모퉁이에서 신음하며 인생의 진리를 탐구하고 방황하던 당시와 전혀 다를 바 없는 달빛이 조용히 쏟아지고 있었다._p.11

세상에는 가끔 이해할 수 없는 일도 일어나기 마련이다. 그렇지만 영문을 모를 일 이면에는 깊은 의도가 숨어 있기도 하지._p.35

이런 식이라면 인플루엔자 공포가 아니라 와이드쇼 공포로군._p.81

그래, 신은 지구에게 바이러스 같은 존재인 인간을 진압하기 위해서 여러 실험을 하고 있어. 그 항인간약제 개발을 위한 모르모트로 하늘을 나는 새와 사람 가까이에서 식량이 되어주는 충실한 돼지를 선택했지._p.180

우리가 지켜야 할 정의라는 이름의 경계선은 또렷하지가 않아. 그래서 요즘 시대는 누군가의 충실한 일꾼으로서 새로운 경계를 만들어내야 할 필요가 있어._p.258

뭔가가 불가능한 까닭은 상황이 나빠서가 아닙니다. 불가능하다고 믿어버리기 때문이죠._p.362

물론이죠. 이제부터가 진짜입니다. 이번 싸움은 더욱더 야비해질겁니다. 어쨌든 다음은 이권이 소용돌이치는 백신 전쟁이니까요._p.4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