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의 슬픔을 아는 것은 우리뿐, 우리의 괴로움을 아는 것은 우리뿐”(‘겨울밤’, 8쪽, 1963)이란 시인의 말처럼 산업화시대의 역풍을 맞고 있는 1960, 1970년대 농촌의 아픈 현실은 경제성장이란 미명하에 철저하게 묻혔으며 수많은 사람들은 도시로, 도시로 떠날 수밖에 없었다. 1973년, 신경림 시인이 <농무>를 발표한 해다. 그로부터 서른 해도 훨씬 지난 시점에 이 시집을 읽는다는 것은 그 시절의 농촌 모습뿐만 아니라 지금 농촌의 현실을 되돌아보게 만든다.
<농무>에는 시인이 등단하여 첫 작품을 발표한 1950년대 후반에서 1970년대 후반까지 발표한 시 40여 편이 담겨 있다. 1974년 제1회 만해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한 시집은, 200권 이상이 출간된 ‘창비시선’의 첫 번째 작품으로 수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으며, 농촌의 현실을 제대로 표현한 시집이란 평과 함께 널리 애송되고 있다. 시집에는 10여 년에 걸친 시인의 절필 기간 동안 고향에서의 경험, 그가 나고 자란 고향 사람들의 가슴 아픈 이야기들이 시로 다시 태어나 있다. 1980년대에 처음 읽은 <농무>가 가슴을 뛰게 하고 두 주먹을 불끈 쥐게 한 이유였다. 그런데 지금 다시 펼쳐든 <농무>는 한숨이 절로 나게 만든다. ‘잘살아보세, 새벽종이 울렸네’라는 노래처럼 희망적이지 못한 현실이 지속되는 오늘을 생각하게 만들어서.절로 나게 만든다. ‘잘살아보세, 새벽종이 울렸네’라는 노래처럼 희망적이지 못한 현실이 지속되는 오늘을 생각하게 만들어서. |
농촌의 현실을 목가적인 풍으로 전원생활의 향취를 담아내는 시가 있는가 하면 현실을 직시하고 그들의 애환,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닮아내는 시가 있다. <농무>는 아무래도 후자에 충실한 시이며 참여지향적인 시다. 하지만 <농무>는 생경하거나 딱딱하지 않다. 시들은 산문으로 표현된 듯하면서도 운율이 살아있어 노래가 되는 민요 가락이 느껴지고, 누구나 쉽게 받아들일 수 있게 제목을 제외하고는 한글만을 사용하고 있는 특징이 있다.
한편 시인이 그려내고 있는 농촌과 사람들 이야기는 내가 나고 자란 고향 이야기이며 우리 아버지 어머니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이야기이자 또 바로 우리 이웃, 친구들의 사연과 닮아있다. 억울한 일이 있어도 하소연 못하는 사연들, 6·25를 전후하여 자행된 민간인 학살 피해자들, 도시로 도시로 흘러들어 산동네에 자리잡게 된 그들의 이야기는 1970년대만이 아니라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우리의 이야기가 아니겠는가. 그럼에도 겉으로 보이는 물질적 풍요가 거친 현실을 미화하는 것에 익숙해져 우리는 그 힘든 시절을 건너온 우리 윗세대들의 아픔과 피땀 어린 희생을 잊고 사는지도 모른다.
 이 시집이 나오던 시절, 서슬 퍼런 군사정권의 폭압 때문에 제 목소리 낼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농촌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이야기하고 시로 쓰는 것이 죄인이 되는 시절이었다. 우리가 알던 농촌과 주변부 사람들의 이야기와 실제 모습의 차는 컸는데, 그 실제를 숙명으로 받아들이고 살던 그네들의 삶과 패싸움을 하고 ‘섰다판’을 벌리는 부끄러운 모습까지도 생생하게 담아낸 것이 바로 <농무>의 시들이다. 그래서 더 절실하게 다가오고 있는 것은 아닐는지.
비료값, 인건비도 안 나오는 농사를 짓고 추수철에 융자금 갚고 나면 빚만 켜켜이 쌓이는 현실에도 우리가 이만큼 살게 된 것은 다 그 분들 덕이라는 아버지의 말씀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보고 산 것 같은 착각을 불러 일으킨다. |
‘우리의 슬픔을 아는 것은 우리뿐, 우리의 괴로움을 아는 것은 우리뿐, 못난 놈들은 서로 얼굴만 봐도 흥겨운 이들과 목로에 앉아 막걸리 들이키고 묵내기 화투를 치며 긴긴 겨울밤을 이겨내고 불콰한 얼굴로 삿대질을 하다가도 금세 잊어버리고 젓가락장단에 맞춰 육자배기를 부르던 할아버지, 아버지 세대들의 아픔이 완전히 아물어 신명나는 어깨춤 저절로 나오는 그런 날이 오기’ 전엔 <농무>에 담긴 시인의 목소리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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