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란 우리에게 무엇인가?

부끄러운 것은 감추고 자랑스러운 것만 기록하고 배우고 알아야 하는 것인가? 역사의 기록이란 항상 승자의 입장에서 기술하는 것이라 패자에 대한 기록은 인색하고 왜곡되어 패망이 당연하다는 시각으로 적은 것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정사를 논하는 사람들은 편벽고루한 생각에 사로잡혀 민간 구비나 야사로 남겨진 기록물을 홀대하는 관계로 폭 좁은 해석에 머물러 있는 것일까?

최근 가족의 행복을 주제로 하는 심리학 책을 보면 어린이들에게도 인격적인 자존감을 세워주어야 성인이 되어서도 실패하지 않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고 하는데 역사를 해석함에도 민족의 자존감을 높이는 것이 주가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닐지. 이런 측면에서 엽기 고대왕조실록과 이전에 출간된 엽기 역사물 시리즈는 내게 물음표를 던져주고 있다.

 

여러가지 연유로 고대의 역사기록은 이민족의 침입으로 불태워지거나 승자의 시각에 맞는 역사의 기록만 남기고 불리한 기록은 금서로 만들거나 분서를 한 관계인지 거의 남아 있지 않아 작가나 역사학자의 상상력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은 것이 현실로 인정해야 하지만 그래도..

역사를 희화화하고 가볍게 다루어 사람들에게 우리 역사에 대한 관심을 높였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인 평가를 하겠지만 전혀 엽기적이지 않은 고대사회의 한계에서 오는 역사적인 사실마저도 엽기의 범주에 애써 집어넣고 요즘 인터넷세대들이 씀직한 말, 비속어, 코믹적인 언어로 그 시대의 사람들을 표현한 것은 우리 역사를 너무 우습게 만들어 버려 얻는 이득은 과연 무엇인가

생각해 보면 너무나 상업적인 책이란 평가 역시 가능하다고 본다.

 

어쨋든 이 책은 너무나 쉽게 술술 읽혀 나간다는 점에서 좋다. 그러나 나이 어린 학생이 읽기엔 무언가 꺼림칙하다.

최근에 출간된 다양한 역사 관련 서적을 참조하여 테마를 설정하고 작가가 살을 입힌 엽기 고대왕조실록은 아무래도 1989년 발견되어 위작여부가 논란이 되고 있는 신라의 학자 김대문이 지은 화랑세기와 삼국사기. 삼국유사 등에서 요즘의 척도로 보면 다소 비상식적인 주제를 가려 뽑은 것으로 보인다. 화랑세기에서 발췌한 주제를 제외하고는 모든 주제들이 많은 책에서 접할 수 있다. 저자도 참고한 텍스트인 色다른 우리역사(이희근著, 거름刊)는 43가지의 주제를 전문가적인 시각에서 통설로 알고 있는 것의 이면에 감추어진 비밀을 추적하는 책으로 함께 읽으면 좋은 책이다.

그래도 다른 곳에서 전혀 접하지 못한 주제나 내용, 다소 황당스럽고 엽기적인 신라의 풍습은 내게 신선한 충격과 앎의 지평을 넓혀주었으니 그래도 읽은 보람은 짭짤하다. 공자의 말씀처럼 三人行이면 必有我師라, 좋으면 좋은대로 나의 편벽고루한 시각과 다르면 다른대로 나름의 교훈과 가르침을 주니 이것이 책 읽는 즐거움이자 이유가 아닐까 싶다.

 

작가가 엽기적인 풍습이라 칭한 것중 대다수는 고대사회에 어느 민족이나 나라에도 있음직한 현상(순장, 형사취수 등등)들이 대부분인 것 같다. 공감이 가는 부분은 신라의 삼국통일은 불완전한 통일이요 외세의 손을 빌어 이룬 것이라 대대손손 속국의 지위를 면치 못해 자주적이 못하고 일등공신 태종무열왕 김춘추는 한류가 아니라 당풍을 신라에 끌어들였고 김춘추의 삼국사기는 본인의 출신지, 근거세력이 신라계열이라 신라중심으로 역사를 서술한 것이다.(김부식은 자주의식과 북진정책을 주창하던 묘청의 난(?)을 진압한 문신이다.)

 

엽기 고대왕조실록과 너무나 대조적인 색다른 우리역사

이 책에서는 일반인들에게는 ‘상식’으로 굳어진 잘못 알려진 사실들을 여지없이 반박한다. 가령 ‘한민족은 단일민족이다’라는 일반적인 통념은 거짓이었음을 증명해 준다. 또한 ‘공민왕은 우발적으로 살해당한 것이다’라는 주제 역시 반원파의 조직적인 책동이 왕을 살해하는 배경이 됨을 증명함으로써 공민왕 살해사건의 진상을 역사의 재판장에 다시 서게 한다. 소설 속에 의적으로 알려진 ‘장길산’이 사실 도적떼 우두머리였음을 역사적 사료를 토대로 증명한다. 민중예술로만 알려진 판소리와 탈춤이 사실 지방 향리 세력의 노력에 의해 보급되었다는 사실은 다른 장들의 색다름에 비하면 그리 큰 충격을 주지 못한다.
더 나아가 우리 국사학계의 통설이 사실은 왜곡된 것이었음을 밝혀 주기도 한다. 태종 이방원이 설치한 ‘신문고’가 과연 민본주의적인 정치를 위한 것이었는지는 다시 되새겨볼 문제다. 태종 이방원의 집권 과정을 들여다보면, 그의 집권은 피의 숙청을 통해 이루어진 것이다. 사실은 그런 태종이 민본정치를 할 정도로 인기 있는 왕이 아니었던 것이다. 정적을 제거하는 수단으로 ‘신문고’를 이용한 것이며, 가장 큰 능비로 알려진 ‘광개토대왕릉비’는 선왕의 업적을 기리기 위한 장수왕의 선업이 아니라 지방 호족들의 견제와 왕권이 강하지 못했던 고구려의 역사적 특징을 보았을 때 장수왕이 자신의 왕권 강화를 위해 가시적으로 보여준 상징물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통념대로 ‘거북선’은 정말 무적의 군함이었을까? 그렇다면 임진왜란 이후에는 왜 건조되지 않았던 것일까? ‘거북선’은 철로 만든 장갑선도 아니었고 결함이 많은 선박이었다. 우리가 생각하듯 이순신은 ‘거북선’에 의지해서 승리를 이끈 것이 아니라 ‘머리’로 왜군을 무찌른 것이었다. {예스 24의 책소개중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