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지니아 울프, 아마 에밀리 브론테와 마찬가지로 내가 오래전 읽었던 고전들 중에서 기억하고 있는 여류작가. 사실 이름만 익숙하지 그녀의 작품을 많이 읽어보지는 못했다. 헤르만 헤세나 또는 헤밍웨이처럼 중학교때 한창 읽어대던 여러 작품들 중의 하나였고 그저 그렇게 마음 속에서 잊혀졌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이 책을 읽을 기회가 왔을때 반가왔다. 그리고 내용도 다른 여타의 작품들보다는 가벼울듯 해서 쉽게 생각했다.

그러나 절대 이 작품은 만만하지 않았다. 일단 요즘 작가들의 작품과 비교했을때 가독성이 확연히 떨어진다. 내가 책을 늦게 읽는 편은 아니고 오히려 다른 사람들보다도 더 빨리 읽는편이데도 불구하고(웬만큼 두꺼운 책이라도 재미가 있다하면 몇시간이면 책한권쯤은 읽는다) 이 책은 그렇지 쉽게 읽어지지 않는다. 분명 한국말임에도 불구하고 단문으로 끊어지지 않고 계속 이어지면서 설명에 설명을 거듭하는 그런 문체의 글은 익숙하지 않기도 하거니와 그 말들이 주는 의미가 복잡해서 읽고 있노라면 이 문장의 주체가 누구였는지 잊곤 해서 다시 그 문장을 읽어야 하는 결과가 생긴다. 대부분의 책들은 웬만큼은 원서로 읽을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이 책은 절대로 원서로 읽을수 없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번역자에 대한 존경심이 다시금 솟아나는 순간이다. 한문장을 그냥 동작의 주체가 어떤 동작을 한다하는 그러한 식으로 생각하는 것이라 아니라 각종 수식과 미사여구를 동반하여 이끌어낸다. 가령 레이첼이 자신이 이때까지 살아온 인생을 생각하는 장면의 묘사가 이러하다.

이 새로운 영감으로 그녀는 처음으로 자신의 인생이 높은 벽들 사이에서 조심스럽게 움직이며 여기서는 옆으로 비끼고 저기서는 어둠에 처박히며 영원히 지루하고 불구의 상태로 장벽에 둘러싸여 느릿느릿 기어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요즘의 문체와는 확연히 다른 형태의 글들로 인하여 적응하는데까지는 상당히 오래걸렸다. 그러나 한번 적응하고 나면 익숙해지는 것도 아니다. 익숙해진 후에는 그 문장을 이해하려는 노력 또한 필요하다. 문장을 읽고 그 의미가 바로바로 파악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한번의 과정을 더 거쳐서 이해를 해야 하는 것이다.

강 기슭에 집중된 그들의 눈에는 똑같은 녹색의 그림자들이 가득 차 있었으며 허스트의 입술이 반쯤 의식적으로 신이란 단어를 대신할 각운을 찾고 있는 것처럼 간헐적으로 움직이는 것을 제외하고는, 마치 그들이 지나치고 있는 광경이 생각을 불러 일으키는 것처럼 그들의 입술은 꼭 다물어져 있었다.

이 문장이 단 하나의 문장이라면 과연 이 문장만 가지고 무슨 생각을 할수 있겠는가. 단지 이 문장은 날이 덥고 어떤 각운을 맞춰줘야 하는 문장이 있었다는 전제하에서 결국은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다라는  뜻을 이런식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런 문장에 비해 이야기의 핵심은 복잡하지 않다. 스물네살의 젊은 주인공 레이첼. 엄마 없이 고모 밑에서 자란 그녀는 또래의 다른 여자들과는 다르게 전문교육도 받지 않았고 그렇다고 다른 여자들처럼 남자들을 만날 기회도 없었다. 유일한 취미라고는 그저 피아노를 치는 것뿐. 그런 그녀가 아버지를 위해서 나선 유람선에서 외삼촌 부부를 만나고 외숙모는 그런 그녀가 안타까워서 그녀를 변신시키기 위한 노력을 한다. 결국 이 이야기는 그녀가 외숙모를 만나고부터 그 이후로 일어나는 모든 변화와 또한 그녀가 새롭게 만나게 되는 사람들 이야기를 그려놓았다 할수 있다.

이 작품에서는 두 커플의 이야기가 대비된다. 수잔과 아서 그리고 레이첼과 테렌스이다. 둘다 비슷한 시점에 만났다는 것을 보면 비슷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두 커플의 운명은 전혀 다르다. 수잔이 얼마나 많은 남자들을 만났는지에 대한 언급은 없지만 수잔과 아서는 처음 본 순간부터 좋아하면서 결혼을 이루게 된다. 지극히 단순하다고 느껴지는가 하면 레이첼은 좀 다르다. 처음부터 테렌스와 세인트 존 사이에서 방황한 듯이 보이다가도 자신이 테렌스를 선택한 이후로도 단순하다기보다는 복잡하고 어렵고 힘든 사랑이었다. 과연 사람은 어떤 것에 가치를 가지고 살아가는가를 잘 알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약간은 느슨하게 느껴질만한 이야기가 마지막권의 절반을 채 남기지 않고 레이첼이 아프면서 상황이 급반전 된다. 문맥도 지루하게 길게만 늘어지더니 이 대목부터는 짧다. 확 대조적이다. 이야기는 비극적으로 흐르지만 사람과 사람사이의 관계에 대해서 많은 등장인물을 교차시키면서 그들의 성격을 통해서 넌지시 알려주고 있기도 하다.

아마도 영문학을 전공한 사람이라면 버지니아 울프를 집중해서 보기도 했었으리라. 새삼스레 그녀의 삶이 그녀의 다른 책들이 궁금해진다. 이 책은 그녀의 첫번째 장편소설이기도 하고 십여년이란 긴 시간동안 수십번 고쳐 쓴 작품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어느 부분을 읽다가 보면 이 부분은 나중에 고쳐 쓴 부분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게끔 되는 문장들도 있다. 딱히 꼬집어 말할수는 없지만 그렇게 느겨지는 부분들이 있다.

또한 주인공인 레이첼이 그녀와 닮아 보인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정말 실제의 그녀의 삶은 어느만큼 이 주인공과 같을까. 연애소설일거라고 막연히 생각했던 이야기는 철학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고 그 당시의 사회상을 나타내고 있었다. 버지니아 울프. 그녀는 페미니즘의 선두주자로 알려져 있다. 그만큼 그때 당시의 여성들의 지위를 나타내 준다 할수 있겠다. 간단하지만은 않은 그녀의 초창기 작품을 통해서 나는 또한번 고전의 중요성을 생각하고 책을 읽는다는 것은 그냥 쉬운 취미생활이 아니라 많은 생각을 이끌어내는 지적 작업이라는 것을 느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