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를 읽기 전에 표지에서 딱 한장만 넘기면 이 글은 자신의 이야기라도 적고 있다. 그래서 자전적인 소설인가 하는 생각을 했다가 처음부터 '나'라는 등장인물에 이끌려 책을 읽다보니 어느듯 그러한 생각은 사라졌다. 그러다가 한 삼분의 일쯤 읽었을까 처음으로 주인공의 이름이 불린다. 재현아하고 말이다. 어디선가 들어본 듯 한 이름인데 하는 생각에 책 뒷장을 보니 작가 이름과 동일하다. 그렇다면 이건 정말 저자의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 하는 생각을 했다.

사실 자전적인 소설은 꽤 있는 편이다. 유명한 작가인 박완서도 자신의 유년시절을 바탕으로 그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를 썼으니 그걸 가지고 새삼 놀랄 일은 아니다 그것 보다는 이야기의 흐름 때문에 놀랐다. 자신이 몇개월동안 사랑하던 여자친구 그것도 헤어진지 얼마 되지 않은 전 여자친구의 죽음. 과연 그녀는 누가 왜 무슨 이유로 죽인 것일까. 이런 사건이 흘러가는데 그 사건의 주인공이 저자? 이러니 깜짝 놀라지 않을수도 없다. 이런 기분이 내내 흐르다가 가장 마지막장인 형의 편지를 읽다가 확 터져버렸다. 이게 실제사건일리가 없군 하고 말이다.

그렇지만 너무나도 자세한 장면 묘사들과 자세한 이야기들에 하마터면 나는 정말 포털사이트에 복현동살인사건을 검색해볼 뻔 했다. 실제로 일어났던 일인지 확인해보고 싶었던 것이다. 작가는 대구에서 학교를 다녔고 아마도 대구에 살고 있는 사람임에 분명하다. 실제로 이 책의 배경도 대구인데 나는 대구에서 오래전에 살았었다. 물론 기억에는 잘 남아있지는 않지만 책에서 여자친구의 할머니가 입원했다던 그 동산병원에서 나는 태어났고 서문시장도 가 본 적이 있으며 여자친구가 살다가 죽은 그 복현동은 막내이모가 이사가기 전까지 꽤 오랫동안 살던 동네였다. 나도 자주 갔던 동네이기도 하고. 그래서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게 더 몰입해서 흠뻑 빠져서 읽을수도 있었던 것 같다. 거기다가 지금은 여수에 살고 있던 고모가 살았던 김천까지 나오니 나는 내가 무슨 주인공이 된양 로드무비를 찍는 것 처럼 주인공의 옆에 동승해서 내내 이곳저곳 따라다녔다.

경찰이 일반적인 것을 물어보려고 나를 찾고 바로 그 다음날로 나는 추적을 피하기 위해서 핸드폰도 둔채 차를 가지고 외삼촌 집으로 간다. 그리고 거기서 외삼촌차와 바꾼채 여기저기 헤매이면서 예전 여자친구를 어떻게 만났고 그 동안 어떻게 사랑을 했는지 생각하게 된다. 정말 그 여자친구를 죽인 사람을 누구지. 그 와중에 여자친구와 친했던 남자, 지금 경찰이 가장 유력한 용의자로 보고 있는 남자가 나에게 메일로 만나자는 연락을 한다. 우여곡절을 겪고 만나보니 그는 여자친구에 관한 이야기보다는 얼마전 자살한 우리엄마에 관한 이야기를 한다. 엄마는 '글을 버려라'라는 딱 다섯글자만 남기도 아파트에서 뛰어 내렸다. 그에 얽힌 이야기들은 또 무엇이 있는 걸까.

글을 쓰는 것을 전공하지 않았다 해도 저자가 쓰는 이야기는 정말 읽는 사람을 잘 빨아들였다. 무슨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듯이 책을 읽었다. 문고판이라 작게 만들어진 책 하드커버가 아니라 손에도 잘 잡히는 책. 이런 책을 중학교때 김동리의 책을 읽은 이후로 오랜만에 잡아 보는 것 같다. 앞으로 이 작가의 책이 기대된다. 정말 나만 모르는 그런 이야기들을 다음번에 또 읽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