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만 바탕위에

8을 옆으로 눕혀놓고(∞)

송충이 깃털마냥 꼼지락꼼지락...

그 꼼지락 댐의 끝이 뵈지 않는 무한대에

입술에 깊게 패인 파이(π)는

옹알거림이 무색하리만치

무한히 계속되대 절대로 반복되지 않는

우리네 의식속을 헤집어 다니는 듯 하다.

 

일곱개의 고양이 눈이라...

외눈박이 고양이라도 발견했나?

어째서 고양이 눈이 일곱개지?

반쯤 얼굴을 가린채 은근슬쩍 내다뵈는

슬금슬금 곁눈질하며 옥죄여오는

또다른 눈길이 존재한단 사실인가?
난해한 마음을 차곡차곡 접어서

한쪽에 개켜 두고 책장을 펼쳤다.

퀴르발 남작의 성이라... 책 표지는 눈에 익은데 내용은 낯설다.

현상과 환상, 사실과 망상을 넘나드는 결정적 상상력으로 빛나는 최제훈의 첫 번째 소설집!

흥미로운 추리와 진지한 추론, 그리고 경쾌한 유머 감각 등이 격렬한 말의 소용돌이가 몰아치는 난장판 속에서

뒤집어지거나 비틀어지며 신명나게 펼쳐지고 있다.

저자의 능청스러운 거짓말에 정신없이 홀려서 경쾌한 서사적 탈주에 동참하다보면,

진부하고 명료하던 이 세계가 돌연 서늘하고 낯설고 쓸쓸하게 느껴질 거라고 소개된 이야깃거리였다.

아마도 그의 연장선 속에 의식의 세계를 좀더 짓이겨 놓인 글이 아닐가 싶어진다.

보여지는 차례는 이어지는 이야기의 작은 테마쯤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별개의 이야기가 꼬리를 물고 또아리 틀었다 풀어 젖히더니 다시 온몸을 뒤틀며

꼬리를 자근자근 물어뜯는 기묘한 형상으로 얼기설기 섞어버리는... 그런 기묘한 형상을 하고 있었다.

작은 벌레 하나가 뇌 속을 마구잡이로 헤짚고 다니는 듯한 불쾌한 감정으로 씩씩거리며 째려봤다.

 

QRcode를 스캔해 보라, 무엇이 들리는지!

 

나는 화장실에 들어간다.

나는 바지를 내리고 팬티를 내린다.

나는 변기위에 앉는다.

나는 오줌 소리를 듣는다.

나는 하얀벽을 쳐다보는 이유를 알지 못한채

나의 눈은 벽에 고정되어 있다.......

나는 뚝뚝 떨어지는 오줌소리를 듣고 있다.

나는 그 변기에서 일어나고 싶지 않음을 느낀다.

나는 무한한 시간동안 변기에 앉아 있슴을 꿈꾼다.

내가 왜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아니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른채 벽에 결려있는 영원히 마르지 않을 수건처럼 쳐다봤다.

 

잠들지 않는 밤을 위한 혹은 잠들지 않기 위해 쉼없이 뇌까리는 의미없는 말의 나열이라고 할 수 밖에 없는 반복됨...

어쩌면 여섯번째 꿈이 주는 뉘앙스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왜 화장실이란 좁은 공간에서의 붙박일까?

 

실버헤머라는 연쇄살인범을 다루는 웹사이트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회원에 한해 자신의 별장으로 초대하겠다는 메일을 받고서

하나씩 약도대로 찾아온 여섯명의 인터넷 동호회 회원들.

한니발인 영수는 서울대 법학도로 볼품없는 외모 대신 지적인 카리스마로 주변을 휘어잡으려는 그만의 생존방식을 터득한 이다.

불면증 현숙은 남들이 보기엔 선망의 대상일지도 모르나 딸아이로 인해 자신의 꿈을 접었다며 파르르 떠는 주부일뿐이다.

전신마취 민규는 대학병원 마치과 레지던트로 옭죄는 상황을 냉철하게 바라보고자 부단히 애썼던 인물이다.

유혈낭자 세나는 배우 지망생으로 아름다운 외모에 어울리지 않는 폭력적인 게걸스러움으로 팜므파탈적 성향을 가진 이다.

왕두더지 태식은 PC방의 음침함 속에서 살기 위해 꾸역꾸역 비대한 몸속에 하염없이 먹거릴 집어넣으며 일탈을 꿈꾸던 이다.

폐쇄미로 연우는 프리랜서 스페인 번역가로 있는 듯 없는 듯 존재감 없이 무리에서 일탈된 방관자다.

운영자 악마를 기다리면서 어설피 안면을 트며 진열장 속에 놓인 술잔을 돌리다 이들은 잠이 든다.

 

다음날 아침, 한니발 영수가 뒤통수에 움푹 패인채 죽어 있고,

밤새 그와 아웅다웅하던 유혈낭자 세나는 꿈인 듯 생신 듯 영수의 침대 발치에 있던 조각상을 들고 내리치는

검은 두건을 깊숙이 눌러쓴 남자를 봤다고 한다. 한순간에 살인현장이 돼버린 숲속의 별장...

유력한 용의자 세나의 사지를 묶어놓고 잠에 든 이들은 다음날 목이 죄인채 죽어 있는 세나를 발견하곤

서서히 죽음의 공포에 피비린내와 악취가 진동하는 시체 사이에서 혼돈과 두려움에 치를 떤다.

폭설로 발은 묶이고 식량은 없고 차는 방전된채 널부러져 있어 옴짝달짝 할 수도 없는 상황에서

몰래 욕실에서 과자를 먹다 뒷덜미에 칼이 찔려 현숙은 죽고,

자신의 등산용칼이 놓여 있음에 당황한 태식은 민규와 연우를 묶어놓고 탄성을 내지르다 빨랫줄에 목이 졸려 죽임을 당한다.

민규와 연우는 묶인채 쓰러져 있었는데 누가?

의식이 돌아온 민규는 연우를 흔들어 깨우다 그녀의 목을 죄는데 그의 뒤에 낯선 검음 그림자가 빨랫줄을 팽팽히 쥐고서 다가온다.

살아남은 자는 연우이련가? 의식을 잃지 않기 위해 그녀는 또 이야기를 꺼낸다.

지난 금요일 저녁. 우리 일곱명이 산장에 모였어.

하지만 정작 우리를 초대한 악마는 오지 않았지....

섬뜩하지 않은가? 한명은 왜 또 는 건지? 그녀가 기억하는 이야기는 기억속에 존재했던 기억였나?

나른한 단잠에 취한 이들의 꿈속을 사각사각 헤집어 자신의 꿈속으로의 초대...

자 초대 받아 들어갈 준비는 됐는지...?

 

표지속 안경을 쓴 남자가 노려본다.

무한히 이어지는 선율은 섬뜩하기만 하다.

 

간질병으로 쌍둥이 여동생이 성폭행 당하는 걸 목전에 두고도

발작을 하며 개거품 물고 축 늘어져 있을뿐

달리 손 쓸 방법이 없었다. 그게 하나의 족쇄마냥 여겨졌던 그는

긴 세월 끝에 성폭행범을 찾아내 근육이완제를 놓고

슈베르트의 죽음과 소녀를 깔고서 눈만 껌뻑이는 그에게

죽음과도 같은 말을 건넨다.

 

열심히 공부하기만 하면 그에 비례한 결과치를 보여줬던 공부,

그에만 매달려 쉼없이 달려온 법학도...

고시 2차를 앞둔 어느날 건달에게 폭행 당하며

여자친구를 성추행하는 모습을 맥없이 지켜봐야했던 죄책감에

시험장에서 도망치듯 줄행랑친다.

벗어날 수 있을거라 여겼지만 끝없이 되풀이 되는 속에

그는 기어코 치밀한 복수의 살인계획을 세운다.

 

간질로 발작하는 쌍둥이 오빠를 옆에서 지켜주느라 모든 걸 맘속에 묻어야 했던 여동생은

수없이 오빠를 죽이는 상상을 했지만 도둑이 꽁꽁 묶어 둔 테이프로 간질 발작이 나 숨이 막혀 오빠가 죽을 줄이야....

 

지적인 그에게 끌려 교재를 시작했지만 자신의 이상형과는 거리가 멀어 고시합격만 하면 헤어질거라 맘 먹었던 그녀,

그러나 불행인지 고시 2차 시험전날 건달에게 폭행을 당한 후 내리 낙방하고 스토커마냥 들러붙는 그에게 벗어날 길을 없어뵌다.

그가 군대 가자 부리나케 도망치듯 유학을 떠났다 편안한 안주의 대상으로 유복한 남자와 결혼을 해 정착하지만 무력하기만 하다.

 

한살 먼저 태어났다 죽은 형의 사주에 얹혀 지지리 복없이 살아가던 남자...

PC방을 운영하던 중 게임중독에 빠진 미성년자의 죽음으로 여관을 전전하다 게임에 몰려 도둑질까지 나섰다 우발적인 살인까지 한..

자살하려 던진 술병에 지나가던 사람이 맞아 죽을 정도로 박복한 인생였다. 죽은 그의 주민증으로 새롭게 인생길을 찾아나서는데

어느날 술에 코가 삐뚤어지게 마셨다 대리운전으로 집에 가려는데 몸이 꼼짝달짝 않는다,

슈베르트를 좋아하냐면서 자신에게 주삿바늘을 대는 알 수 없는 남자의 얼굴... 다시 이야기는 원점으로 돌아갔다.

그저 박물관에 걸린 명화 같다고나 할까....

한번씩 찾아가서 그 아우라를 느끼면 되는거야, 영혼이 정화되도록.

어차피 박물관은 나오는 순간부터 때가 타기 시작하겠지만 그러나 흉터는 달라.

오롯이 나만의 것이지. 내 몸에 악착같이 달라붙어 상처를 잊지 말라고 속삭여 주잖아.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의 상처가 유일무이한냥 떠벌리며 곰삭는걸까?

다수에 속했던 이들이 하나씩 까발라져 실체를 드러내는 순간 소리없이 잠식하고 마는 알수 없는 파편들마냥?

붉은 머리를 늘어뜨린 벌거숭이 소녀와 누렇게 변색된 해골 사나이의 입맞춤을 담은 죽음과 소녀의 그림은

슈베르트의 현악4중주 죽음과 소녀와 맞물려 어울리지 않는 부조화의 조화를 그렇게 잉태하고 있었다.

 

M은 지루한 번역에 장난스런 비밀표식을 남기는 기벽이 있다. 커피를 밀크티로, 커튼색을 자기가 좋아하는 색으로...

원서와 번역복을 꼼꼼이 대조해 보지 않는 한 알아채기 힘든 얄팍한 속임수로 그만의 트릭을 즐긴다.

그런 그에게 유원지 마술쇼에서 만난 여자와의 알 수 없는 동거가 시작된다.

출판사의 제의로 미스터리클럽Q의 첫번째 시리즈를 번역하면서 그녀의 폐쇄미로같은 이야기를 밤결따라 빠져드는 것.

 

하루는 빈집에서 하나를 훔치는 대신 하나를 남겨 놓는 도벽을 가졌다. 안경사에게 재미삼아 놔뒀던 모텔방 키,

그 키를 보자 집에서 떨어져 자살한 그를 보곤 화들짝 놀라 모텔을 찾아 그곳에 갔다가

몇년 전 죽은 한 커플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여자 친구를 죽도록 방치한채 도망치듯 나온 남자는 바로 하루 자신였던 것.

그런데 왤까? 자해를 하고 의사들 손에 끌려 처치를 받는 그더러 외상증후로 인한 정신분열증이란다.

의사의 차트에서 몰려 훔쳐본 하루에 대한 기록은 동굴속에서 쌍둥이 여동생을 뜯어먹고 살아남은....

 

M의 번역복은 실버헤머 웹사이트의 동호회 회원 로슈, 빈키, 카시코, 세리나, 메이, 타이쇼쿠가 폭설에 휩싸인

별장에서 한명씩 죽어가는 상황에 맞닥뜨리는 극도의 공포감과 삶에 대한 절박함을 담은 첫이야기와 맞닿는다.

한번씩 발작을 겪고 나면 다른 세상에 내던져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새로운 신이 막 창조한 또하나의 세상, 모든게 다 똑같지만 똑같은 것처럼 시치미 떼고 있지만

이음매 어딘가가 살찍 비틀어져 이전의 세상과 어긋나 있었다.

작가는 간질을 치명적으로 울궈낸다. 언제 어떤식으로 발작증세를 일으킬지 알 수 없기에

한바탕 쏟아내듯 퍼붓고 나면 망연한 눈빛으로 언제 그랬냐 싶게 일상으로 돌아가는 듯 보여 그런 걸까?

 

귀를 찢을 듯한 울림이다.

 

도서관에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완역복을 읽다가

무심코 목덜미를 쳤는데 툭 떨어진 송충이...

그 송충이가 타고 넘은 책을 툴툴 털다 보게 된

미스터리클럽Q의 일곱개의 고양이 눈...

 

공터에 죽어 있는 남자..

미미는 형사에게 어젯밤 일을 또박또박 얘기한다.

공연을 마치고 술한잔 했다가 마리화나까지 한 상태에서 사람을 치였다고.

약간 다친 것뿐이라며 병원에 가길 거부하는 그를 집까지 태워주며

그의 군대시절, 야삽으로 무릎을 쳐 쩔룩박이 신세가 된 사연을 들으면서 창고 같은 낡은 건물에 차를 세웠다.

 

폐관 시간이 돼 대출을 받고 싶었지만 연체된 책으로 대출마저 못 받은채 남들 눈이 닿지 않게 끼워두고 나온다.

일본으로 영화제 취재 가는 길에 날치기 당해 책을 반납하지 못한 걸 기억조차 못하고 있었던게다.

게다가 쌍둥이 여동생은 볼일이 있다며 뱅갈고양이를 덮썩 맡기고 가버렸고

망막박리 때문에 수술을 받고 며칠째 눈을 가린채 지내야해서 도서관에서 다시 읽지도 못한채 여러날을 보내야했던 그는

궁금했던 이야기의 뒷편을 나름대로 각색에 각색을 거듭한다.

 

유미미의 첫공연 모습에 반해 그녀를 쫓던 그는 망가지고 엉망진창으로 추락하는 삼류배우의 삶을

더이상 걸리적거리지 않고 멋지게 장식할 무대로 자신의 낡은 창고 속 허름한 무대를 헌납한다.

하지만 미미는 죽고 싶지 않아 그를 뿌리치고 도망치며 실랑이 벌이다 그를 죽인채 경찰서로 뛰어 든 것...

다른 식의 이야기 전개보다 이게 나으리라 흡족해하며 안대를 풀고 도서관으로 부리나케 달려 갔지만

그 책은 어디에도 뵈질 않는다. 출판사는 π, 작가 미상, 제목만이 나열된 그 책을 어디서도 찾을 수 없어 그는 직접 글을 짓기로 한다.

하지만 기억이라는 놈은 나이를 먹을수록 합리성에 복종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기 마련이잖아요.

어쩌면 우리는 어린 시절에 지금의 굳어버린 머리로는 납득할 수 없는 기이한 일들을 많이 겪었을지도 모릅니다.

시답잖은 어깃장에 불과한 이 의구심도 시간이 흐른 후에는 합리성의 연미복을 빼입고 거드름을 피우겠죠.

끝없이 미로속을 헤매는 것 같다.

내가 가진 기억이라는 것이 과연 존재했던 것인지, 내가 지어낸 것인지, 허구가 만들어낸 형상인지...

모르겠다. 내가 지어낸 씨실과 날실의 엮임이 이파리를 갉아먹는 송충이의 오몰거리는 입속에 녹아듬었음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