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10.17 독서일기에서 발췌..)

* 읽기 전에
이 책을 구입한 날짜는 2003년 5월 15일이지만,
이 독후감을 쓰는 날짜는 2007년 10월 19일이다. (북피니언에 올리는 날짜는 2009.5.28일이다.)
이 책은 150p 분량의 그럭저럭, 얇은 책은 아니지만
사진집이다 보니, 마음먹으면 한 시간 안에도 다 읽는다.
그래서, 이 책은 한번 정독했다기 보다는
2003년 5월~ 2007년 9월의 시간 동안에,
가끔 수시로 꺼내보곤 하던 책이다.

사진 속의 감동은 내 기억에 오래 남아 있어서,
(게다가 여러차례 반복해서 보다보니)
굳이 자주 뒤적일 필요도 없어졌는데,
재혁이 동생, 우리 둘째를 임신한 걸 알게 되고 일주일......
왠지 내 감정상태가(그리고 쉽게 피로를 느끼는 신체상태가)
’지적몰두의 즐거움’을 주는 책보다는
머리를 별로 쓰지 않고 쉽게 보면서도,
감성적이고 따스한 책을 찾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이 책이 그런 내 정서에 딱 맞아서
다시금 침대에 누워 편안한 자세로 다시 읽고 이 독후감을 썼다.

* 읽고 나니,
그림이나 사진같은 아름다운 ’시각적 이미지’를 좋아하기 때문에
다른 사진집들도 두 세권 사서 본 기억이 있다.
아마 그 중에서 이 책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책일 것이다.
사진속의 인물과 구도의 아름다움이 아니라,
사진속의 상황속의 이야기들, 그들의 따뜻한 모습에서 느껴지는 ’사랑’의 모습들이 
내 마음을 훈훈하게 해주었기에
한번 보고 나면 매력을 잃어버리는 다른 사진집과 달리
내가 이 사진집은 두고두고 꺼내보게 된 것 같다.

이 책은 특정 사진 작가의 작품집도 아니고,
어떤 특정한 장소나, 특정한 사건에 대한 기록적 사진첩도 아니다.
Moments Intimacy Laughter Kinship, 즉, M.I.L.K project라고 하여,
전세계 프로 & 아마추어 사진작가들에게
’사랑’을 주제로 한 작품을 공모하여 출품된 사진들을 모은 것이다.
그래서, 이 책 속의 ’사랑’의 사진들은,
어떤 한 사람의 어떤 한 각도에서 얻어진 작품이 아니라,
전세계의 ’사랑’의 모습들이 다양하게 실렸다.

이 사진들을 보면,
흑인, 백인, 가난한 사람, 부유한 사람, 젊은 사람, 노인 할 것 없이,
’사랑’이란 아름다운 감정은 모든 인류에 공통된 감정이라는 것,
비록 말이 통하지 않고 사상과 이념, 종교와 문화가 그들이라도,
그들이 서로 주고 받는 ’사랑’의 느낌은
모든 이들이 100%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다는 감동의 울림을 느꼈다.

특히 내가 좋아하는 사진들
- 운전하는 백발할아버지의 운전석 머리받침에 놓인 할머니의 쭈글쭈글한 손.
- 자리보존하고 누워있는 병자 할아버지 앞에 
  눈이 봉사인 할머니가 점자책을 손으로 더듬어 책을 읽어주고 있는 사진
- 터번을 두르고 콧수염이 있는 쪼글쪼글하고 빼빼한 아랍 할아버지가 품에 갓난장이 손주를 안고 바라보고 있는 사진
- 침대 하나를 사이에 두고 겨우 붙잡고 일어선 돌잡이 아이와 엄마가 까꿍놀이를 하며 마주보고 웃는 장면
- 노부부가 나체로 바다로 손을 잡고 걸어들어가는 뒷모습
: 이 사진을 재혁아빠에게 보여주니, 
  그 늙은 할머니의 커다랗고 울퉁불퉁한 엉덩이까지 포함해서 미래의 우리 부부의 모습이라고 한다.
  ( 이 사진이 이 공모전의 최우수작이 되었다고 한다 )


그런데, 마지막 사진 뒷장에는 각각의 사진들이
어디서 누가, 어떤 상황에서 찍혔는지가 에필로그로 정리되어 있는데,
이 사진집은 이 에필로그 부분이 또 압권이다.
이 사진집 속의 인물들은 사진 모델들이 아니라 보통 사람들이라서,
각각의 사진을 찍을 때 그 사람들의 ’실제 상황’이 담긴 것이고,
그 실제 상황에 대한 설명이 에필로그에 적혀있는데,
그 사연들이야말로, 
그 사진속의 ’사랑’의 의미가 어떠한지를 마음에 쿵하게 느끼게 해주는 것들이 많았다.

* 사연을 읽고 나서, 사진속의 ’사랑’을 재발견하게 된 사진들
- 노란 이슬람 전통옷으로 머리와 왼쪽 눈을 제외한 얼굴의 대부분을 감싸고 있는 한 소녀의 얼굴 클로즈업 사진
    : 이 사진 속에 얼굴에서 노란옷으로 가려지지 않은 왼쪽눈은 살짝 미소짓는 모습이다.
이 사진의 사연은, 뱃사람인 남자친구가 바다에서 돌아오기를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는데, 
연인의 안부를 묻자, 
남자친구를 걱정하는 마음에 흐르는 눈물을 감추기 위해 얼른 노란머리싸개 옷으로 얼굴을 가리며 애써 미소짓는 장면이라고 한다.

- 침대에 누운 병자와 그의 아내가 서로 그윽하게 바라보는 장면
: 사진작가의 친구가 뇌종양과 사투를 벌이던 마지막 몇 주간동안,
그의 아내는 이 사랑하는 사람과의 마지막 친밀한 장면을 사진에 담아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그 사연을 알고 나서 이 사진을 보면,
그저 평화롭고 잔잔한 병자와 아내의 마주보는 눈빛을 이해하게 되고,
그래서 이 사진을 볼 때마다 나도 눈물이 난다.

그 외에도 이 책 속의 모든 사진 속엔 ’사랑’이 묻어난다.
’사랑’이 얼마나 아름답고, 사람을 감동시키는지,
사람은 ’사랑’을 먹고 산다는 걸,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모든 도덕관념을 초월한 가치가 ’사랑’이라는 걸
이 책 속의 사진들은 한마디 설명 없이도, 마음으로 느끼게 해준다.

어쨌던, 우리 둘째 태교에, 이 책을 다시 꺼내 읽기는
참 잘한 일인 것 같다.

* 곰토의 평점 : 8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