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6.22. 독서일기에서 발췌..)

* 읽기 전엔..
이 책 제목과 대략적인 개요를 처음 접하고 떠오른 건 
한창 책을 많이 읽던 고등학교 시절 읽었던 <바디워칭>이라는 책이었다.
그 책은 몸 부분부분에 대한 과학적 설명, 진화론적 역사, 사회적 의미, 등이 망라된 그야말로 이 책의 제목같이 ’박물학’이었는데
아주 일상적인 소재에 대한 여러분야에서의 접근이
마치 통합강의를 듣는 것 처럼 지적 갈증을 마구마구 채워주는
정말 멋진 책이었다.

* 읽고 나니..
’조승희 버지니아 공대사건’과 우연히 읽는 시점이 딱 맞아떨어져 더 재밌게 읽었던
 ’살인자들과의 인터뷰’ 책처럼
이 책을 읽다보니, 스페인 여행 직후 이 책을 읽게 된 게 매우 시기적절했다.

책을 읽을 때, 그 책이 어떤 책인지 어느정도 파악하고 난후
독서행태를 결정한다.
이 책은 화장실 갈 때마다 틈틈이 읽으면 되겠구나...
이 책은 그냥 편안하게 읽어내려 가야지...
이 책은 밑줄 그어가며 정독해야지...
때론, 그냥 편안하게 읽으려고 생각했던 책이 
읽다가 보니, 핵심을 찌르는 말들이 많아서 다시 밑줄을 그어가며 읽게 되거나 하는 책들도 있지만,
어쨌든 이 책은 처음부터 밑줄 그어가며 정독하였다. 

’인간의 오감에 대해 다방면에서의 접근’이라는 내 기대는 
딱 맞아 떨어졌다. 
과학적 사실, 역사적 의미, 그리고 여러 감각을 이용하고 묘사하고 있는 문학적 예술적 묘사, 
세계 각 지역마다 인류학적으로 다양한 문화.. 그야말로 ’박물학’ 이었다. 
광범위한 지식과, 나도 몰랐던 그 지식의 참신하고도 깊은 의미를 알게된 지적 즐거움으로 너무 즐거웠다.

그리고
그냥 내 삶을 운용하는 아주 기본적인 소프트웨어에 불과한 
’감각’이라는 프로그램이 너무나 고마왔다.
물론 고통과 괴로움을 수반하는 ’감각’과 
즐거움과 아름다움을 수반하는 ’감각’, 
별다른 감정적 신체적 반응을 일으키지 않는 무수한 ’감각’이 있어, 
’감각’ 그 자체는 우리에게 철저히 중립적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감각’을 가진 생명체이며,
더우기 그 ’감각’을 ’느끼는’ ’뇌’를 가졌다는 것이 축복으로 느껴졌다.

같은 ’감각’이란 프로그램(능력)을 가지고도, 
삶을 더욱 풍요롭고 행복한 것으로 만끽하도록
그 프로그램의 가치를 충분히 활용하는 사람이 있고
(이런 사람을 감수성과 정서가 풍부하다고 하지..)
그 프로그램을 그저 
살아가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용도로만 이용하는 사람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왜 그런 차이가 있을까..
개인의 성향의 차이도 있을 것이지만,
마음의 여유의 차이도 있을 것이다.
내가 여기서 저기까지 가야하는데
바삐 걸어가야하는 사람에게는 오직 길 밖에 안보이지만
천천히 걸어가는 사람에게는 
길 옆의 나무, 지나가는 사람들의 모습도 볼 수 있다.
정서적으로 감수성이 있는 사람이라면
길옆에 피어있는 꽃들과 지저귀는 새소리가 들리며
생의 아름다움을 느끼며 행복감을 한점 더 보탤 것이다.
그리하여, 어쩌면 
’감각’이 주는 즐거움을 제대로 느끼려면,
일차적으로는, ’감각’을 제외한 나머지 삶의 모든 부분들이 안정적이고, 불행하지 않아야 
비로소 ’감각’을 ’행복’을 위한 도구로 사용할 준비가 되는지 모르겠다.
생사가 갈림길에 섰을 때, 생계가 위협받을 때, 
질병이나 불행으로 고통받을 때, 인간관계에서 절망하고 괴로와할 때,
감각이 주는 즐거움을 느낀다는 것은 얼마나 사치스러운 일?? 책을 읽은 것이 왜 시기적절 했느냐.
여행은,
우리가 미래를 위해 열심히 일한다거나,
다른사람과의 사이좋은 관계를 통해 정서적인 친밀감을 느끼게 해주는 일이 아닌
감각을 즐겁게 해주어서 우리가 행복을 만끽하도록 해주는,
오직, 우리가 느끼는 ’감각’에 대한 ’봉사’만으로 
우리 삶에 행복을 더해주는 대표적인 일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스페인 여행기간동안,
내 발은 매우 괴로왔다.
건강상태가 비교적 양호했지만 시차적응을 해야했고,
평소보다 많아진 운동량으로 피로했으며,
많이 걸은 발은 부어서 구두사이에서 헤지고 진물이 났다.
하지만, 
내 눈앞에 펼쳐지는 아름다운 풍광들, 
그라나다 알함브라궁전을 장식한 정교한 벽조각을 바라볼 때의 시각적 경이로움.
메론과 하몽이 입안에서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던 그 미각,
플라멩고 공연에서 마치 우리의 자진모리장단처럼 점점 템포가 빨라져가던 캐스터네츠소리를 들을 때 울렁거리던 내 심장,
말라가 해변의 지중해 바닷물이 내 발을 간지르던 촉감...

오직 ’감각’에 대한 봉사만으로 얼마나 많은 행복감을 느꼈던가..

이 책의 독후감상문은 
정작 이 책에 씌어진 내용은 하나도 씌여지지 않았네..쩝.
어쨌건, 감각에 대한 무수한 지식들을 읽어 내려가면서
’감각’을 다시한 번 골똘히 생각해 볼 수 있는 화두를 이 책이 던져줬다고 해야되겠지?

이 책의 내용은,
참신하고 새로운, 감각에 대한 지식들로 가득 차 있어서
우리아이들이 자란 후에도 꼭 읽으라고 권하고 싶다.

* 곰토의 평점: 8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