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
아날로그스러운 따뜻함이 묻어나는 단어다.
CD나 MP3가 아닌 '레코드'만이 낼 수 있는 수 있는 그런 정감이랄까??
그래서 선택하게 됐다.
왠지 잔잔히 스며드는 그런 사랑이야기일거 같아서...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른다고...서서이 빠져드는 그런 로맨스를 보고 싶어서...(^______^.)
결론부터 말하면 아주 만족스러운 작품이었다.
내가 읽은 작품 중 최고의 로맨스 소설로 꼽는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이 연상될 정도로...
30대의 조심스러우면서도 따뜻한 사랑이야기.
숯불이나 손난로같이 일정한 온도로 오~래가는 그런 사랑스런 이야기.(^____________^.)
신희수
아버지께서 일찍 돌아가신 바람에 어린 나이에 홀로서야 했다.
스무 살에 서울로 상경해 누구보다 열심히 공부하고 쉼 없이 일했다.
가족을 부양하는게 강요된 의무는 아니였지만 희수는 그렇게 하고 싶었다.
그래야 마음이 가벼워 질테니까...그래야 온전한 자신의 인생을 살 수 있을 테니까..
바늘 하나 파고 들 틈이 빡빡하게 일한 덕분에 빚도 청산하고 남동생 공부에 장가까지 보냈다.
그러고 나니 어느덧 희수의 나이는 서른둘이 되어 있었다.
문득 화장대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낯설움을 느낀 희수...
'이 낯선 얼굴이 내 얼굴이란 말인가??'
희수는 한 달 뒤 모든 사람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사표를 냈다.
가족의 희수가 아닌...자신만의 희수를 찾기 위해...
그러나 생각과 다르게 어디부터...뭘...어떻게 해야할지 몰랐다.
몇 달 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변한 것은 그리 많지 않았다.
같은 집에서 동고동락하던 절친이 시집가면서 라디오를 듣게 됐다는 것.
집 근처에 기가막히게 맛있는 두부가게가 있다는 것.
그 두부가게 단골 중에 눈길이 가는 댄디한 남성이 있다는 것.
두부남이라 칭한 그 남자가 은근히 관심이 간다는 것.
그 두부남도 관심이 있는지 자신을 빤히 쳐다본다는 것.
희수는 애청자가 된 라디오 프로그램에 '두부남'으로 사연을 보내게 된다.
우리동네 두부남.
우리동네 맛난 두부가게에서 종종 마주치는 남자가 있습니다.
이름도 나이도 모르지만 두부를 좋아한다는 것.
그리고 두부처럼 하얗고, 깔끔하고, 반듯해서 두부남이라 칭하고 있습니다.
이 동네주민 두부남이 요즘들어 부쩍 신경이 쓰입니다.
어느 날부터인가 이 두부남이 절 빤히 쳐다보기 시작했거든요.
처음 그 시선을 느낀 날은 너무 당황해 얼굴이 새빨개질 뻔했어요.
당장 집으로 달려가 얼굴에 뭐라도 묻었나? 옷차림이 이상했나? 살펴봤죠.
그런데 아무 이상이 없는거였습니다.
왜 두부남은 절 빤히 쳐다봤을까요?
그날 하루면 그려려니 하겠는데 그 후로 두부남은 계속 절 쳐다보고 있습니다.
차라리 말을 걸어 오면 좋을 텐데...한 마디 없이 걍 쳐다보기만 하니...
두부남과 마주칠 때마다 머리 속이 새하얗게 변해 버려요.
그런 날이면 하루 종일 두부남 생각이 머릿속을 떠돕니다.
그렇다보니 요즘 두부사러 갈때도 괜치 옷차림을 신경 쓰게 되고,
나가기 전에 거울을 들여다 보게 됩니다.
날 쳐다만 보는 이유가 뭘까?
또 마주치면 물어봐야지 하지만 막상 얼굴을 마주하면 입이 떨어지지 않아요.
그 이유가 좋지 않은 것이면 어쩌나...공주병에 걸린 여자라고 보면 어쩌나...
하지만 무엇보다 두부남으로 인해 느껴지는 이 묘한 긴장감이 깨지는게 싫어요.
사느라 잃어버린 줄 알았던 첫사랑에 대한 설렘이랄까요...
지금의 이 긴장과 설렘이 좋긴한데 그렇다고 막연히 이렇게 지낼 수는 없잖아요...
어떻하면 좋을까요...
이은세
라디오 DJ
방송에 출연하지 않아 대중적으로 얼굴이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홍대를 비롯한 언더쪽이나, 콘서트, 라디오에서는 알아주는 서른세 살의 뮤지션이다.
은세는 요즘 우연인지 인연인지 모를 상황에 아주 재미져 죽을 상황이었다.
결혼식 축가하러 갔다가 낯이 익은 여자를 봤는데 기억이 안나는 것이라...
'어디서 봤더라...분명 낯이 익은데...도통 기억이 안나네...'
그러다 단골 두부가게에서 종종 자신을 곁눈질로 훔쳐보던 아가씨와 부딪치게 되면서
'아~~~그 아가씨다...'
자신은 알아봤음에도 불구하고 아가씨는 자신을 못 알아본다는 사실에
은세는 묘~한 관심과 흥미가 돋기 시작했다.
'언제까지 날 알아보지 못할지 궁금해 지는데...이거...(^_______^.)'
그래서 다음날 부터 은세는 아가씨와 마주칠 때마다 빤히 쳐다보기 시작했다.
자기를 어디서 봤는지 알아달라고...도통 기억에 없는 얼굴이냐고...
TV를 안본다고쳐도 인터넷도 안하냐고...나 누군지 모르겠냐고...
이렇게 재미지게 지켜보고 있는 상황에서 두부남에 대한 사연이 올라온 것이다.
속앓이를 하다가 라디오에 사연까지 보내다니...
그것도 자신이 진행하는 프로그램에...
읽어보고 뒤집어 지는 은세.
푸하하하하하~~
450여 페이지가 짧게 느껴질 정도로 재미나게 읽은 작품.
난 어린, 발랄한 로맨스보다 난 이런 스타일의 로맨스가 좋더라~ (^________________^.)
잔잔하게 젖어드는 사랑이야기도 좋지만...
서른둘 희수의 잃어버린...아니 갖지 못했던 자아찾기 부분도 아주 좋다.
어디 이런 여자 없나??
라는 말이 자연스레 나올 정도로 사랑스럽고...보듬어 주고 싶고...함께 하고픈 여자...
그런 여자를 만나고 싶다면 한 번 읽어 보시라~~
물론 사랑하는 여인앞에서는 한 없이 다정다감한 멋진 은세도 보시고...
내용외에 문체, 문장, 구성도 아주 좋다.
긴말 필요없고...로맨스 소설 간만에 강추한다...단 30대 이상이면... ^ ^
잔잔~~한 사랑이야기여서 10~20대에게는 좀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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