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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리로 갈게......

이 한마디는 참 많은 힘을 가진다. 내가 향할 거기와 나의 관계가 이만큼 가깝구나를 확인하게 한다. 내가 향할 거기가 지금 나를 이렇게 간절히 필요로 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나에게 일깨운다. 언젠가 내가 그를 찾을 때 그도 당연히 나에게로 와 줄 것을 예감하게 한다.

저자는 이 소설이 우리 청춘들의 서재에 오래도록 자리할 수 있는 청춘 연애 소설이길 바란다고 했다. 우리 청춘이 '내가 그리로 갈게' 할 수 있는 사람이기를 그리고 누군가로부터 그런 말을 들을 수 있기를 바라는 인생 선배의 조언일까.

우리는 살면서 서로 얼마나 많은 약속을 하고 살아가고 있을까? 약속을 해 놓고 그 약속을 지키기도 하고 지키지 못해 결국 깨기고 하고 가끔 어떤 약속은 지키지도 아예 깨버리지도 않으면서 내내 가지고만 살아가기도 한다. 그 약속을 하는 것으로 우리는 서로에게 서로를 확인하고 그 약속을 지켜 우리의 관계를 증명한다. 하지만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 걸까? 부서진 약속은 관계까지 부셔버린다. 데이트 약속이 거듭 깨지는 연인들에게 이별이 가깝고 입금 약속을 계속 어기는 친구는 이미 친구라고 부르기 민망해지는 것처럼. 누군가 약속은 깨지기 위해 있는 거라고 했지만, 살아가는 동안 약속들이 깨지기 때문에 사람은 살면 살수록 부서진 관계의 잔해만 남은 외딴 섬같은 존재가 되어가는 것 아닌가 한다.

그래서 지킬수가 없는 약속들은 차라리 미루게 된다. 내일. 내일도 안되면 아예 다음 주. 아니면 그냥 내년에..... 그래도 안되면 언젠가는....... 약속이 완전히 깨져버리지만 않는다면, 아직 지키지 못한 약속은 늘 살아있다. 시간이 지나 습관처럼 손때가 묻은 오래된 모습일지라도 지키지 못한 약속은 여전히 살아있다. 그 살아있는 약속이 관계를 유지하는 가느다란 끈이 되곤 한다. 약속이 깨지면 관계도 깨지는 것. 그래서 우리는 약속을 깨느니 차라리 간직한다. 지키지 않은 약속을 오래된 사진처럼 간직하고 있다. 그리고 어느날 어디선가 나를 찾는, 그 약속을 재생시키는 전화 소리에 우리의 관계는 다시 부활하게 되는 것이다.

어느날 불현듯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기도 하는 것처럼

세월이 흐른 후의 어느 날 다시 한번 찾아 읽는 그때도 마음이 흔들리는 그런 소설로 탄생하기를요. ....

멀어져가는 가까운 사람들을 보내주는 마음이 읽혔으면 좋겠고

슬픔에 빠진 사람들을 위로하려는 나의 마음이 전달되었으면 합니다.

P374 작가의 말 중에서...

'내가 그리로 갈게'라는 주인공들의 말 속에서 그들을 지켜보는 나는 그들 사이에 흐르는 관계를 읽는다. 약속을 하고 약속을 지키고 가끔은 약속을 가슴 맨 밑바닥에 묻어두는 주인공들을 통해 내 젊은 날의 약속을 다시 읽는다. 사랑을 하고 사랑을 잃고, 약속을 하지만 가끔은 부서지고 또 가끔은 남겨두면서 지났던 그때. 생소하면서도 낯익은 듯한 이 오래된 약속은 관계의 기억을 불러온다. 젋은 날, 혹은 어린 날에 나는 관계를 읽는 눈이 없었다. 만남만 있을 뿐 거기에서 자라는 관계가 살아 움직이는 소중한 존재임을 알지 못했다. 그래서 관계를 읽게 된 오늘에서야 나는 내 부서진 관계의 잔해들을 안타까워 하곤 한다. 가끔 유보된 약속들, 여전히 남아있는 약속들을 떠올리고 안심한다. 아직 나에게 남아있는, 살아있는 것들이 있어. 그래서 전화벨이 울리고 그가 그녀를 찾았을 때, 나는 안심했다. 아직 살아있는 것들이 있어.

멀어져 가는 것, 어쩌면 사라져 가는 것. 그렇지만 지키고 싶고 간직하고 싶은 것. 그래서 아련하고 서글프지만 위로가 되는 것. 신경숙은 늘 그런 느낌을 주곤 한다. 내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없지만 그래도 끝끝내 어떻게든 남겨두고 싶은 것들을 동감해주곤 한다. 그런 그녀 작품의 힘은 그녀가 소망하듯 그녀의 책을 책장 한 쪽에 오래도록 남겨두겠지. 오래된 약속처럼 언젠가 다시 펴서 읽고는 관계의 부활을 느끼게 할 것이다. 나도 언젠가, 다시 이 책을 펴고 아직 살아있는 것들이 있다고 지금처럼 안심하게 될까. 그때는 또 아직 무엇이 살아있다고 느끼게 될까. 오랜 시간이 지나 윤이 그의 전화를 다시 받았던 것처럼 나도 그 때가 되면 살아있지만 변화한 또 다른 관계를 마주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