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이 엄청 거창하게 무려 <절대강자>인데 정작 표지에 그려져 있는 것은 이가 빠지고 여기저기 시간의 흔적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황토색 사발. 막걸리 한 잔 마시고 '인생, 별 거 아냐'라도 외쳐보자는 건지 했다. 워낙 술로 유명한 사람이었다고 해서 ㅎㅎ 나는 나도 모르게 '이외수'라고 하면 술부터 생각이 난다. (선생님.. 죄송해요 >,,< ㅎㅎ)

이미 소설 뿐 아니라 많은 에세이를 출간해서 인생과 사랑에 대해 구구절절한 글담을 풀어놓았던 작가 이외수가 대단한 제목의 에세이를 내놓았다. 아직 <하악하악>의 반응이 따끈따끈한데도 멈추지 않는 그의 인생론. 이번에는 어떤 이야기를 어떻게 풀었을까.

 

정태련 작가는 이외수 작가하고 합이 잘 맞는 모양이다. 이제 이외수의 책이라고 하면 정태련 작가의 그림이 절로 떠오른다. <절대강자>에서도 그 호흡은 여전한데, 표지에 담은 의미가 사뭇 궁금해서 책을 넘기던 차, 얼마 가지 않아 나는 표지와 책 속 일러스트의 의미를 알 수 있었다. 아... 그래. 절대강자, 그렇구나.

 

박물관이나 전시회를 돌아보다 보면 금방 알 수 있지만 우리나라 유물은 유독 깨지고 상한 것들이 많다.

다사다난한 한반도의 역사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것 같아 그런 유물들은 늘 가슴을 짠하게 한다. 그렇기 때문에 반만년의 시간동안 먼지로 바스러지지 않고 그대로 남아 우리에게 위용을 보여주는 이 나라의 유물들은 진정한 의미의 절대강자이겠지. 그 누구도 시간을 이길 수 없다 했건만, 이 유물들만큼은 시간을 이기고 우리와 마주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그래서 책 속에는 이외수 작가의 인생담과 함께 정태련 작가가 그린 아름다운 우리 유물들이 모습을 보인다. 청동기 시대의 거울, 구석기와 삼국 시대의 토기들, 여러 불상과 보당, 귀고리나 머리꽂이와 같은 장식, 화병과 실패 , 연적과 보자기... 우리 선조들의 삶을 지켜보았던 유물들이 아름다운 그림으로 실려 있다.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우리 유물의 대단함과 아름다움, 그걸 지면으로 옮긴 그림의 섬세함에 즐거워 진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 책을 즐겁게 읽게 하는 힘은 이외수의 글에서부터 온다.

너무 진지하거나 너무 무게 잡지 않는 그의 글. '내가 좀 살아봐서 아는데 말야...' 이런 젠 척도 없다. 비속어도 좀 섞어주기도 하고 우스갯소리도 좀 하고 그런다. 그래서 읽다보면 눈물이 찡 할때도 있고 크크크 하며 웃음이 터질 때도 있다.

그렇다고 글이 가볍다 할수는 없다. 그가 연이어 던지는 메시지는 '조낸 버티기'지만 그 버티기 속에도 많은 것들이 담겨 있다. 생각보다 마음으로 느끼라고도 하고 사랑이 없으면 안 된다고도 한다. 올해를 시끄럽게 했던 여러 사회 문제들에 대해서도 그는 그만의 화법으로 이야기를 던진다.

 

열등의 고치 속에 갇혀 있는 번데기는 하늘을 날아다닐 수 있는 미래가 자신을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모릅니다. 오로지 '조낸 버티기'만이 그 사실을 깨닫게 만들어 줍니다.

p89 - 언제나 내편 중에서

 

달리다보면 넘어질 때도 있는 법이지요. 넘어진 김에 잠시 쉬셔도 괜찮습니다. 다시 일어나 달리면 되는 거지요. 일등에만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완주에도 의미가 있습니다. 포기만 하지 않으면 됩니다. 도전은 언제나 거룩합니다.

아니, 진심으로 사랑을 하는데 유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까?

p241 - 사랑의 진실 중에서

 

 

읽다보면 어느새, 이 두툼한 에세이 한 권의 끝에 다다른다.

존재만으로도 고마운 우리 유물들과 막걸리 한 잔처럼 훈기를 주는 글. 그리고 나선 생각한다. 우린 너무 겁을 내고 있구나.

실패도 괜찮다고 생각은 하지만 그렇게 느끼지 않는다. 피폐하고 빈곤한 시기를 살아보지 않은 우리라서 우리에게 실패란 어떤 물질적 부유함에서부터 떨어져나가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겁을 내다 보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사랑조차도, 내 유치함과 맨 얼굴까지 보여줄 수 있는 용기가 나지 않아서 못하는 것 아닌가.

그렇게 겁쟁이들만 우글우글한 우리에게 이외수 작가는 말하고 싶었을까. 어차피 겨울 지나면 봄이 오는 법, 고난도 사랑이라는 것. 인생이 팍팍하고 고되긴 하지만 너무 겁내지 말라고. 눈을 크게 뜨고 힘들면 힘든대로 끝까지 가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