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기다림에 익숙하다. 누구라도 그렇다. 3분이면 완성되는 컵라면이 익기를 기다리고 어린시절 품은 꿈이 이루어지기를 죽기까지 기다린다. 어른이 되기를 기다림, 대학에 입학할 날을 기다림, 군대간 애인의 제대를 기다림, 연봉 협상날이 오기를 기다림, 아이가 태어나길 기다림, 자녀의 결혼식을 기다림. 인간은 기다림의 생물이다. 기다리기 때문에 존재하고 있다고 말해도 좋겠다.

 

 그러나 그토록 기다림에 열중하고 있는 우리는 중요한 걸 잊었다. 기다림은 약속으로부터 시작한다는 것. 오리라고 약속한 그로부터 기다림은 시작되었다. 오늘은 올 수 없지만 내일은 오겠다고 고도가 소년을 보낸 것은 그와 우리 사이에 약속이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갈테니 우리 만나자. 그 약속으로부터 출발한 기다림이 우리에겐 왜 기다리는지조차 잊어버리고 단순히 기다리기 때문에 기다리게 되어버렸다.

 

 고도를 기다리는 아저씨 두 사람이 고도를 기다리며 벌이는 이틀이 웃기는 비극인 데는 다 이런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그가 오기를 기다리지만 왜, 무엇 때문에 그를 기다려야 하는지 모른채 그저 기다린다. 심지어 여기가 만나기로 한 곳이 맞는지, 오기로 한 그는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른다. 그를 만나기 위해 알아야만 하는 것들을 모른채 그를 기다린다는 사실이 일단 비극인데 심지어 그들이 그들의 무지를 인지하지 못하는 상태가 이 비극을 더욱 비참하게 만든다. 고도가 아직 오지 않은 것은 오히려 희망이다. 어차피 고도를 알지 못하는 그들이 고도를 만난다고 알아보기야 하겠나.

 

  베케트가 쓴 '고도를 기다리는 세계'는 그래서 비극이고 그 희곡 밖에서 오지 않는 고도를 기다리는 현실의 사람들 역시 비극을 살아간다. 아무리 기다려도 기다리는 그것은 오지 않고 여느 때와 같은 어느 날, 사람은 기다려 온 고도 대신에 결코 기다린 적 없는 죽음을 만난다. 이 말도 안되는 비극을 살아가면서도 사람들은 이 비극을 깨닫지 못하고 먼지 같은 한바탕 웃음을 양념삼아 생을 지나간다. 사람의 인생이 고통이라 베케트는 비극을 쓸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사람들이 왜 고도를 기다려야 하는지 고도를 어떻게 알아볼 수 있는지 알지 못하는 한 인생은 계속 비극일 수밖에 없다. 고도를 기다리는 인생들을 쓴 저자 본인조차 '고도가 누구인지 알았다면 극에 썼을 것'이라고 했으니. 인류가 기다리는 '고도'의 정체는 인류 스스로 결코 알 수 없으리. 

 

 그러나 그렇다고 너무 쉽게 포기하지는 말자. 고도는 그의 약속만으로 이미 우리들과 있다. 약속이라는 무대위에서 그의 부재는 명백하게 그의 현존을 알린다. 그러니 우리의 일도 알 수 없다. 이미 우리들이 기다려야 할 고도는 벌써 우리 앞에 나타났을지 모른다. 그 모습을 우리 앞에 보여주고 '고도'임을 스스로 알려주며 우리가 잊었던 약속을 상기시켜주고 있을른지 모른다. 부재란 (부재를 깨닫는 순간이란) 그 어떤 것보다도 강력한 현존의 증거가 되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