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모든 글치들에게 고함

여행잡지 [Travle] 2011년 7월호에 실렸던 이야기다.

남자친구와 함께 태국 푸켓 여행을 계획한 모 여인, 여행상품을 구매하고 둘만의 오붓한 시간을 기대하며 비행기를 타고 날아갔다. 예약한 리조트 객실로 들어갔는데 아뿔싸! 분명 더블베드를 기대했건만 트윈베드가 놓여있는 객실이었단다. 결국 함께 침대를 사용하지 못하고 각자의 침대를 사용하며 여행을 하고 돌아온 뒤 모 여인, 여행의 목적을 상실했다며 여행사 쪽에 상당한 불만을 표하고 보상을 요청했다고 한다.

목적이란 이런 것이다. 더블베드가 있어야 할 객실에 트윈베드가 놓여 있을 때의 당혹감과 서운함 그리고 여행 후의 불쾌감을 느끼게 만드는 것이다. 그런데 목적이란 동시에 이런 것이기도 하다. 굳이 침대가 커야만 더블베드가 되는 것이 아닐 텐데 말이지. 침대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둘만의 오붓한 시간이 목적 아니었던가. 결국 여행의 완성도와 만족도를 결정하는 것은 침대가 아니라 충실하고 확고한 목적의식이다.

 

충실하고 확고한 목적의식이 필요한 것은 만족스런 여행을 위해서만은 아니다. 최근 베스트셀러로 뛰어오른 스튜어트 다이아몬드 교수의 협상 안내서 [어떻게 원하는 것을 얻을 것인가]에서도 목적의식이란 상당히 중요한 위치를 가진다.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필요한 것은 1)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아는 것과 2) 원하는 것에 절대적으로 집중하는 확고한 목적의식이다. 이 확고한 목적의식은 어떤 돌발 상황이나 애로사항 속에서도 내가 목표를 달성할 수 있도록 인도해준다. 마치 풍랑을 만난 바다 위의 배가 반짝이는 등대의 빛을 보고 무사히 귀환하듯이.

 

 

[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 [차베스, 미국과 맞장뜨다] 등의 저서로 유명한 작가 임승수가 세상의 모든 글치들에게 고하는 점도 그것이다. 목적에 충실하라! 어떤 글이든 그 글이 달성해야 하는 목적이 있다. 자기소개서라면 인사담당자의 눈에 들어야 하고, 기획서라면 상사의 마음에 들어야 하고, 연애편지라면 상대가 나에게 넘어오게 해야 한다. 보통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는 글에는 수려한 문장과 압도적인 문체가 있어야 되기 않겠나 싶지만 작가는 그게 아니라고 말한다.

 

 

많은 사람이 바로 이 지점에서 엇나간다. 자신의 아이디어와 기획에 도취되어 심사위원의 의중은 그다지 고려하지 않는다. 즉, 어떻게 하면 그것을 그럴듯하게 포장할 것인가에만 온 신경을 집중하는 것이다. 이것은 실패로 가는 지름길이다. 기획서 제안서를 검토하는 사람은 당신이 아닌 까닭이다.

p95

 

 

글이란 본시 '나'의 반영이다. 어떤 글이든 머리와 가슴에 내재된 나의 경험과 생각 없이는 절대 세상에 나올 수 없다. 저자 임승수는 대학에서 전기공학을 전공하던 시절, 자신이 느꼈던 글쓰기의 어려움을 곰곰이 분석한 끝에 경험과 생각의 부재가 그 원인이었음을 진단했다. 수권의 책을 출간한 유명 작가인 그 자신이 글치였기 때문에 저자는 자신있게 세상의 글치들에게 '좋은 글쓰기'에 대한 책을 내놓는다고 했다. 책 속에서 저자는 좋은 글이란 목적을 달성하는 글이며, 목적 달성을 위해서는 확고한 목적의식과 내 글을 읽는 독자의 입장에서 생각해야 한다는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책 중반부터는 업무나 그 외 여러 상황에 적합한 '목적을 달성하는 글쓰기'에 대해서 알려준다. 좋은 글쓰기라는 난제를 정복하기 위한 저자의 깊은 생각과 노력이 보이는 대목인 동시에 이 책이 실용서로서의 목적을 달성하고 있는 부분이다.

 

책 서두에 실린 스티븐 킹의 말은 담백하면서도 단단한 글쓰기를 추구하는 저자의 진심을 엿보게 한다. 화려한 꼼수나 기교가 아닌 영리한 글쓰기 방법. 어쩌면 [글쓰기 클리닉]이 필요한 것은 글치들만이 아닐지 모른다. '좋은 글쓰기'가 목적을 달성하는 글쓰기라고 정의했을 때 반기를 들지 않는 당신이라면 이 책은 당신에게 가치 있을 것이다. 글쓰기가 어렵지 않다고 느끼던 사람에게조차 이 책은 관점의 전환과 중요한 본질들을 전해주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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