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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내 또래면 기억할 수도 있겠다. '구니스'라는 어린이 영화가 있었는데 이게 몇 명의 말썽꾸러기들이 악당들을 피해 달아나다가 보물선을 발견하게 된다는 모험영화였다. 그 기발한 장치들, 스팩타클한 탈출과정, 그 속에서 아이들끼리 부대끼는 이야기가 얼마나 재미있던지 명절때면 어김없이 티비에서 방영해주던 걸 나는 놓친 적이 없다. 동네에 그 영화에 빠져든 아이가 나 말고 몇 명 더 있었는데 여름 방학이 다 끝나가던 어느 날, 우리는 한국판 구니스를 찍어보기로 했다. 당시 동네에는 공사가 덜 끝난 채로 방치된 커다란 하수관이 있었는데 손전등을 들고 거길 들어가보자고 우리들끼리 신이 났었다. 지금 생각하면 위험천만한 일이지만 그 때 우리들 생각에는 그 하수관을 따라 들어가면 꼭 영화 구니스에서 나온 것처럼 지하 동굴이라도 나올 것 같았다. 다행스럽게도, 모든 걸 다 집어삼킬 것 같았던 무저갱 같은 하수관 내부 그리고 쉴새없이 달려드는 모기들에 질린 우리는 몇 미터 들어가보지도 못하고 뒤로 물러나왔다. 탐험해 보지 못한 하수관의 아쉬움을 풀기 위해, 근처 풀밭에서 얼마나 많은 네잎 클로버를 뜯었던가. 미지의 보물 대신 시들시들한 네잎 클로버를 옷자락에 담아 집으로 돌아가서는, 자랑스럽게 무용담을 꺼내 놓았다가 혼쭐이 나는 걸로 구니스 흉내내기의 추억은 끝이 난다.

만약 그 때, 우리 동네에 상상 같은 아이가 있었다면 정말 하수관을 제법 깊게 탐험하고 돌아왔을까? (어쩌면 사고로 죽었을지도;;;;) 아마 하수관이 아니더라도 기상천외한 다른 어떤 사건 사고를 우리는 함께 했을지도 모른다. 모기장으로 물고기를 잡는 상상이니 동네 어머니들은 아마 우리집 아이 단속하느라 힘드셨을 것이다. 상상같은 악동하고 어울리면 말도 안되는 짖궂은 사고를 치고 다녔을테니까. 참, 상상의 이름이 상상이라 한국어로는 조금 헷갈릴 수도 있는데, 상상은 [상상의 초가교실]의 주인공의 이름이다.

[나의 라임오렌지나무]의 주인공이었던 제제가 말도 못할 장난꾸러기였던 걸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상상의 초가교실]의 주인공 상상은 아마 제제의 조금 성장한 모습처럼 다가올 것 같기도 하다. 가난한 제제가 식구들의 구박 속에 어른이 되고 뽀르뚜가의 진중한 사랑 속에 철이 들었던 것처럼, 그보다 나이가 조금 많은 초등학생 상상은 갖은 장난과 말썽을 부리다 첫사랑을 겪고 어른들의 세계를 엿보며 성장한다. 그 과정이 마치 짚풀로 지붕을 엮어 올린 소담하고 정겨운 초가 마을을 보는 것처럼 푸근한 느낌으로 그려진다. 산과 들을 마음껏 타고 놀았던 내 유년의 기억이 겹치면서 상상은 더욱 친근해지고 상상의 초가교실은 마치 내 추억의 일부처럼 생생하게 다가온다. 특히 한 가족처럼 정을 나누는 마을 사람들, 서로를 도와 살아가는 이웃들, 상상과 더불어 두소강, 지월, 세마 등 한 동네 아이들이 부대끼며 서로를 이해하고 어느새 끈끈한 친구이자 동료가 되어가는 과정은 가슴이 물큰해지기까지 한다. 이미 중국인들에게 아름다운 유년의 기억을 되살리게 하는 소설로 입지를 굳힌 작가 챠오원쉬엔의 문장은 단단하고 거추장스러운 것 없이 따듯하다. 말썽을 부려 크게 혼나고 난 뒤 나를 달래주는 아빠 손처럼.

상상은 잠시 막연해졌다. 세상일은 정말 너무 복잡하고 이해하기 힘들었다.

어떤 일들은 이해할 수 있었지만, 어떤 일들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해할 수 없었던 일들은 이제 영원히 알 수 없을 것이다.

상상은 그 점이 안타까웠다. 최근 6개월 사이에 유난히 많은 일들이 벌어졌다.

지금은 지월이 갑자기 떠났다. 세상 사람들 모두가 가벼움과 무거움, 기쁨과 고통, 희망과 상실감을 함께하면서

살아가는 것인지 정말 궁금했다.

상상은 계단에 오랫동안 앉아 있었다. 그리고 잠시 동안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고독한 풍경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p391

말하자면 이 책은 중국청소년들의 필독서라고 불러도 되겠다. [상상의 초가교실] 8장인 두소강의 고독한 여행 부분이 중국 국어 교과서에 실려 있으니까 말이다. 굳이 교과서에 수록된 작품이기 때문이 아니라도 이 소설은 참 훌륭하다. 수 억의 독자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대중성과 소설 자체가 갖는 예술적 가치인 작품성 모두를 만족시키는 소설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유년의 기억을 통해 평화롭고 아름다운 정서를 불러일으켜 유익한 감동을 주려는 작가의 메시지에 박수를 보내게 된다. 작가 후기에 쓴 그의 말은 옳다. 진정한 감동은 중국어로 쓰여도 한국어로 쓰여도 감동인 것이다. 중국인에게도 한국인에게도, 풍성한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아름다움, 영원하고 항시적인 것이 분명 있다.

오늘의 세계를 감동시키는 데 반드시 오늘의 세상을 그려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과거의 일도 오늘의 세상에 감동을 줄 수 있다. 이미 지나가버린 고난의 어린시절이 오늘날 우리의 아이들에게도 감동을 줄 수 있는 것이다. 그들이 처해 있는 현재의 외로움을 쓰고 우리가 동정심을 내보이는 것만이 그들을 감동시킬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만약 "반드시 오늘날의 생활체험만이 요즘 아이들을 감동시킬 수 있다"라고 결론을 내린다면 이전의 모든 문학 예술은 더 이상 사람을 감동시킬 수 없고 존재 이유조차 없다고 말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우리가 유일하게 기억해야 할 것은, 사람을 감동시키는 것은 예로부터 불변했다는 것이며 우리는 단지 그것들이 어떤 새로운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는가를 분명히 인식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영원하고 항시적인 것을 따르라.

우리는 이렇게 자기 자신을 일깨워야 한다.

p398 ~ 399 북경 연북원에서 챠오원쉬엔의 작가 후기 중에서

뉴스를 보며 한숨을 짓다 나는 그리워한다. 어릴 때 우리도 다들 상상 같았었는데. 상상과 두소강처럼 서로 경쟁하며 싸우다가도 정들고, 이해하고. 지월같은 아이에게서 어른스러움과 아름다움을 배우고 세마같은 아이에게서 그 진중함을 엿보기도 했었는데. 다들 말썽쟁이에 저녁마다 어머니의 야단을 맞기 바빴지만 그래도 다음날이면 어김없이 몰려나와 한 동네 아이들이 북적북적 어울려 놀기 바빴는데. 그 많던 악동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악동은 다 어디가고 악당들만 남았을까. 친구도 동무도 없는 그런 세상이 되어 버렸을까.

작가 챠오원쉬엔은 우리가 그러했듯, 방향을 잃고 속도만 내며 달려가는 중국에 반드시 지켜내야할 정서가 있음을 '영원하고 항시적인 감동'을 통해 이야기하고 있다. 예로부터 모든 것이 변해왔지만, 변하지 않는 것. 언제나 동일하고 변함없이 사람의 가슴에 흐르는 그것. 그래서 그의 작품 속에서 유년은 아프지만 따스하고 사람들은 부딪히다가도 어느새 서로를 이해하고 그렇게 인간적인 형상을 그대로 간직한 채 어른과 아이가 살아간다. 나는 이 중국의 작가가 이야기하는 영원하고 항시적인 감동을 잃어버린 우리가 안타깝다. 과연 이 따듯하고 아름다운 소설을 읽으며 상상과 두소강, 지월과 세마같은 아이들과 자신을 동일시 해볼 수 있는 아이들은 얼마나 될 것인가.

그리고 이러한 안타까움과 동시에, 그러하기 때문에, 이러한 정서가 사라져가고 있기 때문에 [상상의 초가교실]과 같은 이야기들이 더욱 더 많이 세상에 나와야 된다는 것을 느낀다. 잃어버린 정서를 회복하는 길은 그 정서를 대신할 또 다른 아름다운 정서를 보여주는 길 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저자가 작가 후기에 쓴, '지나가버린 고난의 어린시절이 아이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다'는 말을 나는 믿는다. 그것이 이와 같은 문학의 존재 이유이고 그것을 통해 누군가는 분명 구원을 얻을 것이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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