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들의 편지라기엔 표지가 너무 유치하고 촌스럽다 느꼈다.

빨강 파랑 줄무늬가 주변을 두르고 희미한 갈빛 줄이 늘어앉아있는데다 봉투를 여미고 있는 꽃모양 스티커까지.

어릴 때 '군인아저씨에게'라는 제목을 달고 멋쩍게 써내려갔던 편지지와 봉투를 떠올리게 하는 표지와 장식은 '시인들의 편지'를 기대하던 나의 설레임을 조금 덜어내더라.

중년의 두 시인이 주고 받은 편지글을 모은 이 책을, 나는 나만의 느낌대로 기대했었다.

점잖고 서정적이면서도 중후하고 단정한 그런 느낌이지 않을까, 책을 받기도 전에 나는 그런 모습을 이 책을 그렸다.

예상치 못한 천진한 촌스러움의 습격. 그래서 나는 알록달록한 책갈피를 골라 책을 폈다.

장석남 시인과 나희덕 시인은 모두 여러 권의 작품을 발표한 중년의 작가들이다.

한 사람은 광주에서, 한 사람은 서울과 강원도에서 이 둘은 서로에게 편지를 전하고 받았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을 지나며 홀연히 변하는 풍경과 우리 삶의 조각들을 정성스럽게 글에 담아서 주고 받은 그들의 기록이 [더 레터]다.

생년도 비슷하고 등단한 시기도 비슷한 이 두 시인은 정서도 상당히 비슷하다는 느낌을 주었다.

사물과 자연을 바라보는 그 둘의 시선, 감성, 생각의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사색과 통찰.

표지에서 받았던 '유치함'은 책을 읽으며 어느새 '순진하고 정다움'으로 바뀌어 버렸다.

두 시인이 자연과 인간사, 세상사를 마주하고 그 흐름 속에 이리저리 휘달려 살아가면서 그들은 때로는 다른 누군가의 시를 인용하기도 하고 오래전 스승으로부터 들었던 여러 이야기들을 전하기도 하거나 어떤 페이지에는 가슴으로 바람 한자락 실어보내는 그림과 함께 그들의 시를 읽어주기도 했다. 정치에 대한 이야기, 공부에 대한 이야기, 부모와 자식의 연에 대한 이야기. 삶과 죽음, 계절과 섭리, 사람과 사람.

그들의 이야깃거리는 끝이 없어 보였다.

그렇게 다양하게 주고받은 이야깃거리들을 대할 때, 그들의 시선과 자세는 늘 한결같았다.

글을 쓰는 것을 업으로 삼은 사람으로서, '글과 나' 안에 부던히 담아내야할 모든 살아있는 것(죽어가는 것)에 대한 어떤 깨달음. 그것을 흘러가게 하고 또 다시 새로운 다른 흐름을 탄생시키기 위한 다소곳한 치열함.

'시'라는 것이 결국 간결하지만 충만하도록 고통스런 연단을 멈출수 없는 것인지라 모든 시인들이 다 그러한가보다 느꼈다.

기꺼이 혹은 질질 끌려 구도의 길을 가는 사람들이 시인이구나.

편지가 너무 적어 아쉬웠다.

나희덕 시인의 표현을 그대로 빌려 '순한 다람쥐처럼' 도란도란 이야기를 까먹는 그들의 편지를 엿보며 나도 함께 순한 다람쥐가 되어 가는 재미가 있었다. 골치아프고 가슴이 답답한 이야기를 하면서도 그들은 적나라한 한숨을 내쉬거나 격정적인 언사를 내비치는 법이 없었다. 치고 삭이고 다듬어 세상에 내 놓아 이리저리 떠돌아도 그 어떤 이 해치지 않을 순한 이야기들이어서 좋았다.

그래서 '안녕' 이 글자를 보았을때, 아쉬웠다.

가을바람이 불고 얼마 뒤 첫 눈이 내리고 손이 시려워 오래 묵었던 장갑을 꺼냈다는 소식을 전할 때까지 편지를 계속 하지 그랬냐고 나는 마음속으로 아쉬움을 토로했다. 뒷산 소나무 가지에 서리가 하얗게 앉았다는 이야기들을 두 시인의 편지 속에서 보았다면 나는 아마 다가올 겨울을 기대했을지도 모를텐데.

참 글씨를 못쓰지만 손편지를 쓰는 일은 언제나 즐겁다. 자판으로 쳐 모니터에 비치는 활자가 담지 못하는 생기를 손글씨가 종이에 담아 오롯이 가져가곤 하니까. 받는 이가 '너 정말 기분 좋았나 보네. 그때 많이 슬펐구나..' 알아주는 그런 손글씨로 쓴 종이편지.

문득 정말 오랜만에 편지를 써야겠다 싶어 오래된 편지지를 꺼내놓고 보니 [더 레터]의 표지가 촌스럽다 타박할 일이 아니었다. 내가 가진 편지지 역시 참 유치하고 촌스럽다. 피식 웃다가 누구한테 편지를 써야 할까 오래 고민했다. 촌스러운 편지지보다 더 부끄러운 것은 편지를 써 보낼이를 좀처럼 떠올리지 못하는 이것이다. 아직도 여전히 책상 한 켠에 무안하게 놓여있는 편지지가 더 무색해지기 전에 '겨울바람이 부려나보다' 라고 인사하며 편지를 써 보내야 할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