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에게 가장 소중한 1초는 어떤 1초인가? 당신에게 가장 애틋한 1초는?

당신에게 가장 행복한 1초, 가장 즐거운 1초, 가장 아름다운 1초는?

이 시인은 모든 1초를 다 기억하고 싶었다고 했다. 어떤 1초는 왜 한숨을 지었는지? 어떤 1초는 무슨 음악을 들었는지? 그리고 어떤 1초는 누구와 사랑에 빠졌는지? 1초 1초가 모두 저마다 다른 빛깔로 다가와서 그 모든 빛을 간직해두고 싶었다고, 그는 이 책을 여는 글에서 도란도란 회고했다.

재생지의 투박하면서도 정겨운, 이 부드러우면서 거친 모순적인 감각을 전해주는 표지에 정성스레 적혀있는 '우리가 사랑한 1초들'이라는 제목을 읽었던 그 순간은 내가 이 책을 사랑하기 시작한 1초였다. 잔잔한 나뭇가지에서 은근하게 빛나는 초록빛을 쓰다듬으며 '예쁘다'는 혼잣말을 한 건 그 다음에 이어지는 또 다른 1초.

가을녁, 나뭇잎 아래로 켜켜이 쌓이는 노란색 가을빛에 더없이 잘 어울리는 [우리가 사랑한 1초들]을 한 페이지 한 페이지 읽으며 곽재구 시인의 인도에서의 1초들을 함께 거닌 순간들은 이제는 내 초가을의 행복한 기억으로 자리잡은 1초들.

한국을 동방의 등불이라고 노래했던 인도의 시성 타고르를 찾아 그는 떠났다.

인도 산티니케탄에서 시성과 지성, 감성 그리고 모든 사랑과 포용을 담아 그 곳에서의 1초들을 산문집으로 엮어 돌아왔다.

현지에서 뱅골어를 배우며 그들의 삶 깊숙하게 흐르고 있는 타고르의 유산을 캐내던 그 순간들에 대해 그는 [우리가 사랑한 1초들]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타고르를 사랑해서 찾아간 그 곳에서 그는 타고르의 유산들을 사랑하는 법까지 익혔으니 이 제목은 더 없이 잘 어울린다. 생애의 1초들이 다가와 다정하게 인사하고 다시 손을 흔들고 가는 그 만남과 헤어짐의 황홀한 반복이 인생이고 그 인생을 담은 것이 시라서 그 사라져가는 1초들의 반짝임을 사랑하게 된 시인.

좀처럼 오지 않던 막차를 기다리며 눈 쌓인 밤을 서성이던 가슴에 그가 접어보낸 1초가 반짝반짝 손을 흔든다.

신기하게도 그랬다.

뜨거운 여름볕 아래에서 땀을 흘리며 책을 폈을 때 나는 마치 인도의 폭염 속에 그와 함께 있는듯, 그가 전하는 산티니케탄의 풍광이 생생했다. 맨발의 사람들, 짜이를 권하는 소녀, 쉴새없이 페달을 밟는 릭샤왈라들.

그런데 가을볕 아래에서 책을 폈을 때 나는 작열하는 인도의 더위와 사람들 사이에서 내가 놓쳤던 타고르의 시상을 감지했다.

곽재구 시인이 전해주는, 인도의 공기 중에 그 바람 중에 녹아있는 타고르의 유산들이 팔뚝을 간질간질 흔들었다.

곽재구 시인이 왜 그리 타고르의 시를 사랑했는지, 그가 해석해 전해주는 타고르의 시에 다 들어있어서 나는 알았다.

이 사람, 정말 이 1초들을 사랑했구나. 이렇게나........

인생은 아름답지 않다. 그런데 이 아름답지 않은 인생이 시에 담겨있다.

인생이 아름답지 않을수록 시가 아름다워진다.

인생이 아름답지 않을수록 그 고통을 오롯이 담아낸 시에는 생명력이 넘친다.

이 역설 때문에 오늘도 시인은 시를 쓰고 우리는 그 시를 읽는다. 그리고 시인과 읽는 사람의 사이에 별과 별을 잇는 다리가 놓인다.

소중한 1초들은 즐겁고 유쾌하고 아름답기 때문이 아니라 지치고 곤하고 가끔은 괴롭기 때문에 소중한 1초들임을 나는 종종 잊어버린다.

시처럼 노래처럼 이어지는 곽재구 시인의 산문집 [우리가 사랑한 1초들]을 읽으며 그렇게 잊었던 사랑스러운 1초들의 뒷모습을 다시 바라보게 된다. 별과 별을 잇는 다리 아래로 지나가는 강물처럼 내 발치에 켜켜이 쌓여있는 우리들의 1초들. 도저히 사랑할 수 없을 것만 같은 1초조차도 헤어짐의 손을 흔들고 다시 돌이켜보면 소중해지고 애틋해지는 것을, 매 순간 내 앞에 손을 흔들며 다가오는 또 다른 1초들을 대할 때마다 늘 가슴 가운데에 새겨두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