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을 좋아해 이곳저곳을 누비며 공연을 하는 아빠와 적당히 기품있고 멋스런 엄마와 함께 평화롭고 안락한 생활을 보내고 있던 요시에. 그런데 어느 날 요시에는 아빠가 먼 친척이라는 모르는 여자와 동반자살을 했다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식을 듣게 된다. 가족을 버렸다는 배신감과 다정했던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으로 요시에는 실의에 빠져버리고 만다. 한편, 요시에의 어머니도 배신 당했다는 분노와 슬품에 빠져 좀처럼 헤어나오지 못한다. 급기야 집안을 돌아다니는 죽은 남편의 환각까지 보고 만다.

 

 아빠와 남편의 충격적인 죽음 뒤에 남겨진 이들은 식음을 전폐하다, 시모키타자와에 있는 비스트로 '레 리앙'이라는 레스토랑에서 샐러드와 빙수를 먹고 조금이나마 다시 일어설 기운을 얻는다. 아무리 힘든 상황에 놓여있어도 정성이 들어간 맛있는 음식은 역시 사람의 얼어붙은 마음을 녹이는 효과가 있나보다. 평소 요리에 관심이 있었던 요시에는 따로 시모키타자와로 독립하면서 '레 리앙'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다. 그리고 얼마뒤 엄마까지 시모키타자와에 찾아오면서 모녀만의 일상이 다시 시작된다.

 

 이 책의 배경으로 그려지고 있는 '시모키타자와'는 작가가 만든 가상의 마을이 아닌 실제 일본에 존재하는 유명한 쇼핑가이다. 우리나라의 홍대 앞 거리와 비견되는 곳으로 구제품을 파는 상점가나 아기자기한 식당가가 많다고 한다.(네이버 해외명소 정보 참고) 그런 만큼 여러 사람들이 모이고 활기 넘치는 곳이라 할 수 있다. 사람으로 입은 상처는 사람으로 치유한다는 말이 있듯이, 여러 사람들로 떠들썩한 시모키타자와 거리는 기운을 얻기 위한 최적의 장소인지도 모르겠다.

 

 소중한 사람이 곁에서 사라진지 2년이란 시간이 지났고, 나름대로 바쁘게 열심히 살면서 자신을 좋아해주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지만 모녀는 쉽사리 어두운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 얼핏 빠져나온 듯 보여도 잠깐이라도 방심하면 금세 눈물 방울이 고이고 마는 아슬아슬한 일상들의 연속이다. 모녀가 서로의 슬픔을 보듬기엔, 아내와 딸이라는 두 사람의 입장 차이도 너무나 크다. 이 책은 이러한 상실의 감정을 절실하게 그리고 있다.

 

각자 싸워 갈 수밖에 없었다. 죽을 수는 없으니까 살아야 한다면 오기를 부리는 길밖에 없다.

내일 가게에 나가면 나는 그 공간에 푸근한 위로를 받으리라. (-p126)

 

 "우리 삶에 조금이라도 구원이 되어 준다면 그것이 바로 가장 좋은 문학"이라는 작가의 모토가 이 책에서도 빛을 발한다. <아르헨티나 할머니>, <데이지의 인생>과 같은 기존의 작품들에서 느낄 수 있는 '치유'되어 가는 듯한 감정을 이 책에서도 십분 느낄 수 있으리라. 아무리 힘들어도, 주위 사람들의 따뜻한 배려, 그리고 자신의 마음 속에만 존재하는 기억의 조각들은 울고 싶은 순간 문득 희망을 가져다준다. 그리고 태어난 곳은 아니지만 '마음의 고향'이 되어주는 장소도 있다고, 그런 곳에서 사람들은 더욱 살아갈 용기를 얻을 수 있는 거란 메시지를 작가는 전한다. 무언가에 메달리고 싶을 정도로 지치고 힘든 일상 속을 살고 있는 누군가가, 찬찬히 넘기는 이 책 한 장, 한 장에 치유받을 수 있기를 바란다.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