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무려 4명이나??? 처녀 시절 양다리도 아닌 네 다리를 걸치고, 결국 결혼식장에서 4명이나 되는 신랑을 대동했다는 주인공의 어머니! 언뜻 보면 이거 요즘 흔하디 흔한 막장드라마 중에서도 단연 최고인데?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이 책을 쓴 작가는 다른 누구도 아닌 '이사카 코타로'. 심오하면서도 유머러스하고 마지막엔 감동까지 안겨주는 글을 쓰는 작가이기에 현실적인 면을 생각하기 보다도, 이번엔 어떤 재미난 이야기를 들려줄까 기대가 되었다.

 

 주인공은 고등학교 2학년 남학생인 유키오. 아직 사춘기를 벗어나지 못한 예민한 나이일 텐데 어쩐지 이 아이, 너무나 어른스럽다. 친구같은 아버지 4명과 함께 살게 되면 이렇게 될 수밖에 없는 건가, 조금 안쓰럽기도 했다. 하지만 제3자의 눈으로 보면 이 가족의 생활이 정말 유쾌해 보인다. 내기를 좋아하며 세상을 사는 데 가장 중요한 건 직감이라 우기는 촐삭대는 아버지 1, 대학교수이고 정신없는 집안에서 유일하게 의존할만한 존재인 아버지 2, 마흔 가까운 나이에도 여자들을 홀딱 반하게 만들 외모와 능력을 가진 아버지 3, 그리고 학교 체육 선생님으로 근무하면서 유키오의 체력 단련을 책임지고 있는 아버지 4.

 

 나름대로 평화로운 일상을 보내고 있는 유키오에게 갑작스레 머리 아픈 사건들이 연속해서 터진다. 오랜만에 만난 소꿉친구와 얽혀 불량배에게 협박을 당하기도 하고, 같은 반 여학생 때문에 존경하는 선배에게 미움을 받는가 하면, 결국에 한창 치열한 현지사 선거와 관련된 어두운 흑막까지 목격하는 바람에 위험한 사건에 휘말리게 된다.

그 밖에 등교거부 중인 같은 반 친구와 왕년에 대활약을 했던 전설의 야구선구 등등, 조각조각난 퍼즐이 하나, 둘 맞춰지며 뜻밖의 전개가 펼쳐진다.

 

 "...인간이란 말이지. 자기가 믿고 싶은 말을 믿는 거다. 그리고 그 소문이 재미있는 것일수록 널리 퍼지 법이고." (-p81)

 

  이사카 코타로의 작품을 읽을 때마다 어쩐지 마음 한 구석에서 기다려지는, 그만의 철학적이면서 냉담한 입담을 이번 작품에서도 역시 심심찮게 접할 수 있었다. 극단적일지는 몰라도 부정과 살인을 아무렇지 않은 듯 저지르는 정치가의 모습도 잠시나마 이 사회에 대해 냉철하게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준 것 같다.

 

 하지만 역시 이 작품의 백미는 네 명의 아버지와 한 아들의 애뜻한 가족애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생물학적으로는 당연히 단 한 명만이 진짜 아버지일테고 DNA감정이란 방법을 쓰면 확실하게 진실을 알 수 있을테지만, 그들은 진실을 포기하고 비록 불완전할지언정 '가족'을 택한다.  

 

"취향도 별나구나, 유키오."

"누굴 닮았는지 몰라." 유키오는 비아냥조로 말했다.

그러자 세 사람이 동시에 " 그야 날 닮았지." 하고 대답했다. (-p178)

 

 이 책을 재밌게 읽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이 불량가족이 너무나 부러웠다. 불완전한 그들 가족은 그 어떤 완벽한 가족보다도 진짜같고 행복해보였다. '가족'이란 공동체에 있어 정말로 중요한 건 형식적인 혈연보다도, 역시 서로를 소중히 여기는 마음, '사랑'이 아닐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