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하일 불가꼬프를 만나다

 

러시아가 자랑하는 작가 중 빠지지 않는

이름이 있다면 미하일 불가꼬프 일 겁니다.

<거장과 마르가리따>가 가장 많이 알려진

작품이긴 하나, <백위군> 이나 <개의

심장>도 그에 못지않은 재미를 선사하는

멋진 작품입니다. 훌륭한 고전이 예쁜

겉표지에, 소장하고픈 욕구를 한층

높여주는 양장으로 나온다는건 독자

입장에서는 진정 행복한 일입니다 - 그런

의미에서 출판사 '열린책들'의 열렬한

팬임을 고백합니다. 가지고 싶을만큼

아름다운 책을 만들어주는데에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역시 책은 일단

표지가 이쁘고 볼 일입니다. 

 

 

 

 

 

 

황당한 스토리, 그런데 정치소설

 

줄거리를 잠깐 살펴볼게요. 어느 교수와

그의 조수는 죽은 사람의 뇌하수체와

생식선을 개에게 이식하는 실험을 합니다.

수술 후 개의 모습이 변하고 두발로 걸어

다니고 말을 하면서 점차 사람처럼 변해

갑니다. 하지만 이 개인간은 불한당이나  

망나니처럼 행동합니다. 참 황당하고

어이없는 스토리죠. 작가의 기괴한

상상력이 만들어낸 놀라운 산물이기도

합니다. 러시아 문학작가 중 고골리도

기괴하고 독특한 소재로 쓴 소설로

유명하지요.

 

 

 

특별히 주목할 점이 있다면 불가꼬프가

1925년 작품을 완성한 직후, 정부에 의해

발표금지 제재를 당했다는 겁니다. 그냥

얼핏 보기엔 공상소설 같아 보이지만 이

작품은 오히려 정치소설에 가깝습니다.

정치소설이라 하니 조지 오웰의 '동물

농장'이 떠오르네요.

 

 

 

 

격동의 러시아, 그 속의 문학가

 

잠시 이쯤에서 1900년대 초반 러시아의

역사에 대해 잠시 살펴볼게요. 바야흐로

혁명에 이어 사회주의 사상이 들어서고,

소비에트 체제로 러시아가 재편되던

격동의 시대였습니다. 어느 사회나 '비판

세력은 있기 마련' 이고, 사상과 체제가

변화하는 때에는 그 비판세력의 활동이

더 많아질 수 밖에 없겠죠. 미하일

불가꼬프 역시 볼셰비끼 혁명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냈지만 정부는

발표 금지라는 철퇴를 날립니다. 이런

억압과 제재를 받은 문학가와 예술가가

한둘이겠습니까. 이렇게 러시아 문학과

예술의 암흑기는 시작됩니다.

 

울려퍼지는 작가의 메세지

 

불가꼬프는 <개의 심장>에서 여러 묘사

와 비유를 통해 혁명과 소비에트 체제를

조롱하고 비판합니다. 물론 사람들의

삶을 감시하고 통제하고 억압하는 체제와 

경직된 사회에 대한 비판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불가꼬프는 '이런 식으로

혁명을 통해 사회가 변해도 괜찮은 것인가'

에 대한 진지한 의문을 제기합니다.

 

"...자 의사선생, 연구자가 말이오, 자신의

연구를 자연의 이치와 나란히 보조를 맞춰

가면서 손으로 더듬듯 천천히 진행시키지

않고, 문제를 빨리 해결하려고 강행군을

해가며 확실히 밝혀내려 들어을 때, 어떤

결과가 얻어지겠습니까! 봐요, 봐, 보라구요!..." 

- p.190 

"...의사선생, 인류는 이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진화론적인 질서 속에서

매년 수없이 많은 대중으로 별 가치없고

쓸모없는 사람들이 배출되어 나오면서도

이 세상을 아름답게 장식하는 유명한

천재들이 수없이 창조되고 있다는 것을

말이오. 이제 이해가 가지요 의사선생?..."

- p.191 

자연의 법칙은 어디서나 통용됩니다. 그것은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에서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자연의 진화처럼 오랜 시간동안

점차 변해 가는 것이 아니라 한순간 갑자기

사회를 이끌어가는 사상과 체제를 바꿔

버리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불가꼬프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그것은 마치, 하룻밤

사이에 인간의 모습을 갖춘 수술받은 개와

같다고 말이죠. 아직 사람의 것이 아닌

개의 심장을 가진 저 존재는 불안정하고

부자연스러운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런

존재는 실패작일 수 밖에 없고, 불길하고

혼란스러우며 추악한 존재라고 말입니다. 

그렇게 혁명으로 하루아침에 세상을  

바꾸는 건 위험할 수 있다고 말이죠. 

 

 

 

 

역사는 반복된다

 

불가꼬프는 1940년 사망했습니다.

혁명이란 것은 점진적이며 자연스런

변화가 아니며, 자연의 법칙을 역행하는

것이기에 우리에게 불행과 재앙이 될 수

있다는 불가꼬프의 외침이 빛을 보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개의

심장>은 1987년에야 비로소 다시 발표

되어 세상에 나왔습니다. 불과 5년 후,

1991년 소비에트 연방은 해체되었습니다. 

결국 혁명은 실패했어요. 

 

여전히 사람들은 혁명을 이야기합니다.  

 또다른 혁명이 그 언젠가 어디선가  

시작될 수도 있습니다. 역사는 반복되니까요.

어쩌면 그 혁명은 현명한 사람들에 의해 

과거를 교훈삼아  실수를 반복하지 않아 

성공할 지도 모릅니다.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더 좋은 세상이 되면 좋겠습니다 

역설적이겠지만, 혁명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불가꼬프의 메세지는 여전히 빛을 잃진

않을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