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이런 제목을 갖다 붙였나

 

원제 <모든 걸 감춰야 해 Alles muss versteckt

sein>인 이 소설은 한국어판 제목 <타인은

지옥이다>도 아주 인상적입니다. 무엇을 그렇게

감추어야 하는지, 그리고 살인사건을 다루는

미스터리 소설에 왜 타인은 지옥이란 심오한

사르트르의 명언을 갖다 붙여야 한건지 궁금할

따름입니다. 

 

 

 

  

 

 

제목에서 이미 이야기는 시작되었다 

 

살아가면서 감추고 숨기고 싶은 것들이  

얼마나 많겠습니까만, 그런 것들 중에서

영원히 감출 수 있었던 건 무엇이고 감추지

못했던 건 무엇이었는지 한번 생각해

봅니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처럼

입이 근질근질해서 발설해 버린 것도 있고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의해 알려지게 되는

것들도 있죠. 제목은 이미 독자에게

이야기를 슬슬 풀어내고 있습니다. 무언가

감추지 못한게 있어. 그 때문에 문제가

생겼다고 말이죠. 

  

 

 살인 충동 강박증? 

 

교통사고로 인한 딸의 죽음을 목격한

주인공 마리는 그 이후 눈 앞에 보이는

사람을 살해하는 상상을 하는, 살인충동

강박증을 앓습니다. 어느날 아침에 일어나

보니 그녀의 옆에 그녀의 남자친구가 

칼에 찔려 죽어있었고, 생각을 뛰어넘어

현실에서 일어나버린 살인 사건을 주인공은

자신이 한 짓이라 생각할 수 밖에 없죠.

주인공의 머리속에는 살인의 기억이

없습니다. 이야기는 그 기억을 찾기

위한 모습을 그래내면서 점점 진행됩니다.

  

 

 

 

타인은 지옥이다 

 

만약 지옥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타인이다

- 사르트르

 단 두 줄에 불과하지만 파고들면 

밑도끝도 없이 들어갈 이 철학자의

말을 좀 간단하게 생각해 봅니다

사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자신의

모습을 만드는건 자기 자신이 아닐

때가 많지요. 타인에 의해 평가받고

인정받은 후에야 그것이 자신의

모습이 됩니다. 예를 들어보죠.

저 사람은 과묵해, 저 사람은 사교적

이야, 저 사람은 좀 이상해... 과연

정말 그 사람은 그럴까요? 모르는

일입니다. 그 사람이 어떠한지

결정되는 것은 타인의 평가에 의한

것이겠지요.

 

때로는 이러한 타인이 거대한

폭력이 될 때도 있습니다. 편견과

선입견이란 이름으로 그 모습을

드러내지요. 쟤 부모가 범죄자래

그러니까 같이 놀지마, 저 사람

저 나이에 승진도 못하고 결혼도

안했네 성격에 문제있나봐, 자동차는

큰 거 타야해 없어 보이면 안되거든,

대학은 좋은데 가야지 타이틀과

스펙이 제일 중요해... 뭐 이런 것들

이죠. 남들 눈에 비치는 것들이 

매우 중요하게 된 이 시대에 타인

은 우리가 갖추어야 할 양식이나

규범 같은 것이 되고 더 나아가

우리를 옥죄는 감옥이나 지옥같은

존재가 되겠지요. 무서운 사실은

정작 자기 자신이 어떠한가는

철저히 무시당한다는 겁니다.

   

이러한 이야기들은 강박증을 가진

주인공에게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타인의 시선이 내린 주인공에 대한

평가는 '비정상이다' 일 겁니다.

이는 더 나아가 그녀가 정상적인

사회생활이 불가능함으로

인식되고, 비정상적인 행위를 할만한

사람이기에 그녀의 살인은 당연한

것으로 받아 들여집니다. 이것은

주인공에게 있어서는 가장 치명적인

약점이지요. 그리고 작가는 이 약점을

아주 날카롭고도 치밀하게 파고 듭니다.

소설은 이러한 지옥같은 타인들을

이야기를 끌어나가는 첫번째 엔진으로

있는 힘껏 이용해 먹습니다.

 

  

 

 모든 걸 감춰야 해

 

그럼 자신에게 문제가 있긴 한데,

타인에게 좋은 평가를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구요? 숨겨야죠.

있는 힘을 다해 숨겨야죠. 모든 걸

숨겨야 합니다. 절대 드러내어서는

안돼요. 자신의 결함을 드러내는

순간 많은 것들이 끝장나버릴 수

있거든요. 그런데 숨기는 게 참

쉽지 않습니다.

 

"고속도로에서 사고가 나면 

왜 사람들이 가던 길을 멈추고

구경하죠? 왜 평화나 기쁨이

아니라 전쟁이나 살인, 죽음이

신문 1면을 장식하는 거죠?" 

 작가는 말합니다. 그것은 사람들이

원래 그렇게 때문이라구요. 그런 위험하고

끔찍하고 혐오스러운 것들에 대해

우리는 무서워하면서도 동시에 흥미진진해

한다구요. 거기에 스릴 넘치는 매력과 유혹이

있다는 겁니다. 거기다가 내가 당하는 일도

아니니 맘 편하게 볼 수 있잖아요!

  

 

 

판도라의 상자를 열지마라!  

 

자, 이번에는 타인의 평가를 받는 입장이

아닌, 타인이 되어 봅시다. 사르트르가

말한 그 '지옥'이 한번 되어 봅시다. 지금도

어디에선가 온갖 가십과 뒷다마를 까고

있는 완벽한 타인이 되어 보자는 겁니다.

다른 사람 이야기는 얼마나 재미있던가요! 

증권가 찌라시를 몰래 받아 보면서

엄청난 비밀을 손에 얻은 양 쾌감을 느껴본

적 있나요? 속닥속닥 나만이 알고 있는 비밀

을 다른 사람에게 몰래 알려주면서 짜릿한

스릴을 느껴본 적 있나요? 그것도 너만 알고

있으라고 말하면서?

 

그렇습니다. 감춰야 할 것들은 본인의

부주의와 잘못으로 드러나기도 하지만,

타인의 호기심과 재미 때문에 누설되기도

합니다. 판도라의 상자 같은 것이죠. 

상자를 여는 순간 그 결과는 때로는

엄청날 때도 있습니다. 영화 '올드보이'

기 그랬었죠. 이것이 바로 이 소설을

이끌어 가는 강력한 두번째 엔진입니다.

 

 

 

 

 두 개의 심장, 두 개의 엔진

 

이제서야 이 소설의 제목

<모든 것을 감춰야 해> 의 의미가

대략 윤곽이 보이는 듯 합니다.

소설은,

 

'타인에게 드러난 자신의 비밀,

그것을 보는 타인의 시선' 과

 

'타인이 끝까지 지키지 못해서

드러난 자신의 비밀, 그리고 복수'

 

라는 소재를 원동력으로 이야기를

힘차게 이끌어 나갑니다. 두가지 모두

감춰야 할 '무엇' 이었던거죠. 감추지

못해서 어떻게 되었냐구요? 사단이

났죠. 궁금하신 분들은 책을 읽어

보시는 걸로.

  

 

 

이 미스터리가 돌쇠같다! 

 

사실 스릴러, 미스터리 소설, 추리소설이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빠지는 것도 없지만

그렇다고 아주 신선하고 기발한 것도

없습니다. 강박증을 가진 주인공이란 점이

좀 독특하다 랄까요? 그렇다고 해서 이 소설이

어딘가 좀 모자란 작품은 결코 아닙니다.

복선을 깔고, 떡밥을 놓고, 독자가 미끼를

물기까지 기다릴 줄 알죠.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고, 사건 전개도 좋고, 이야기의 구조도

튼튼하지요. 최후의 끝내기 펀치 한 방을

날리는 것도 잊지 않아요. 튼튼한데다 성실하기

까지 하고 마님밖에 모르는 돌쇠같은 이야기가

재미없을 리가 없지요. 그만큼 책 페이지도

굉장히 빠른 속도로 넘어갑니다. 책 뒷면에

적힌 서평은 광고를 위한 아부 같아서 좀

맘에 들진 않지만, 판매 부수는 거짓말을

하지 않을겁니다. 잘 팔리는데는 뭔가

이유가 있다는 얘기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