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재난소설이다

 

대니 보일 감독의 영화 <28일 후> 와

<28주 후> 를 본 적 있으신가요? 묘하게도

의도한 것인지 우연인지는 모르겠으나

정유정 작가의 신작도 제목이 28 입니다.

그리고 이 소설은 전염병이 퍼진 어느

한 도시의 28일 동안 일어난 이야기입니다

그렇습니다. 장유정 작가의 소설은 '28'

은 바로 '재난 소설' 입니다.

 

 

 

 

 

 

 가장 무서운 존재는 작가

 

작가가 만들어낸 전염병은 특이하게도

사람과 개에게 동시에 발병 가능한 전염병

입니다. 치사율이 매우 높은 이 병에 

걸렸다는건 곧 죽음을 의미하죠. 이 무시무시한

재앙 속에서 인간은 어떻게 행동하는지

도시가 어떻게 되어가는지 작가는 도시 속

여러 존재의 시선을 통해 관찰합니다. 사실

이 모든 이야기가 작가의 머리속에서 나왔다는

사실을 다시한번 상기시켜 볼 때, 무엇보다도

작가의 시선과 상상야말로  잔인하기 이를 데

없고 무시무시하기 짝이 없습니다.

 

 

 

 

 

 

 미친 몰입감이란 바로 이런 것 

 

<7년의 밤> 에서도 보인 정유정 작가의  

능력은 <28>애서도 여지없이 발휘됩니다.

 

사건의 장면을 직접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의

사실감,

 

디테일을 잃지 않으면서도 빠르게 전개되는

이야기에서 느껴지는 엄청난 속도감,

 

그리고 400페이지가 넘는 책을 그 절반도 되지

않는 분량처럼 느끼게 만드는 미친 몰입감 

   

으로 요약되는 정유정 작가의 전매특허와

같은 특징들은 <28>에서도 여전합니다.

이전 작품 <7년의 밤>을 통해 독자들에게

큰 사랑을 받지 않았던가요? <28> 역시

독자들을 마음을 사로잡기에 모자람은

없어 보입니다.

 

 

 

 

 

 또다른 구제역, 또 묻을건가 

 

작가는 구제역 파동으로 인해 소와 돼지들이 

생매장 당하는 것을 보면서 작품의 모티브를

얻었다고 말합니다. 이제 작가는 그 모티브에서

좀 더 나아간 상황을 생각하고 질문을 던집니다.

 

- 그게 소 돼지같은 가축이 아니라 애완동물이라면

어떻게 할거지?

 

- 구제역 같은 일이 또 생긴다면, 또 구덩이를

파고 모두 죽여서 파 묻을거야?

 

- 그런 병에 사람에게도 생긴다면 어쩔거지?

사람도 그냥 전부 파 묻을거야?

 

작가의 대답은 의외로 단순합니다. 정유정

작가는 바로 "그렇다" 라고 대답합니다. 대답은

단순합니다. 어찌보면 소설 <28>도 그렇게

보면 단순한 이야기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도 그렇게 단순하다고 생각하진 않을겁니다.

 

 

 

 

복잡한 질문, 단순한 대답

 

작가가 던진 질문은 복잡하고 어렵습니다. 

질문이 복잡할수록 거기에 단순명료한 대답을

하기란 대단히 어려운 법입니다. 소설의

주인공들은 그 단순한 대답을 도출해 내기

위한 수단이자 도구로 처절하게 이용됩니다. 

그리고 우리는 예상할 수 있습니다. 결론에

도달하기까지의 과정은 슬프고 안타까운

비극의 연속일 거라는 걸 말이죠. 극한의

상황을 맞이한 인간들에게 휴머니즘이나

감동적이고 아름다운 일화 따위는 없다고 

보는게 오히려 속편합니다.

  

 

 

  

 일이 너무 커져버렸다

 

아, 정유정 작가님, 어쩌자고 이렇게까지 일을 

크게 만드신 건가요 - 책을 읽으면서 계속해서  

드는 생각 중 하나였습니다. 진짜 밑도 끝도 없이 

벌어지는 사건들과 무한정 번져가는 전염병을 

보면서, 떡밥을 너무 많이 깔아버리고 스토리가 

산으로 가버리면서 수습불가능했던 그 몇몇  

영화와 드라마와 소설들이 떠올랐습니다. 뭐 

어쨌든, 마무리는 되었으나, 자칫 잘못하면 

주화입마에 빠져버릴뻔 한 것은 아닌가라는  

걱정에, 읽는 독자의 마음이 참 불안하더군요. 

뭐 수습이 잘 되었는가, 마무리가 어떠한가에 

대한 평가는 독자 개개인에게 맡길 일입니다. 

  

 

 

다르진 않지만 다르다  

 

재난을 소재로 하는 수많은 작품 - 소설, 만화, 

영화, 드라마 장르에 관계없이 모두 다! - 들을 

보면 으레 상투적으로 나오는 그런 캐릭터들 

있잖아요. 눈물 콧물 쏙 빼놓기 위해 만들어진 

스테레오 타입의 캐릭터 라든지, 자기 한몸  

희생해서 지구의 평화를 지켜내게 된 영웅  

타입의 캐릭터, 자신에게 닥친 비극과 슬픔마저 

극복하고 진정한 인간애를 실현하는 휴머니즘 

가득한 캐릭터 들이요. 물론 <28> 의 캐릭터 

역시 거기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못합니다. 하나 

하나 살펴보면 좀 다른 점이 보이기도 하고,  

처지가 이해되지 않는 것도 아니지만, 독자 

입장에서는 다른 작품의 주인공들과 크게 다른 

점을 찾기 힘들지도 모릅니다. 다행인 것은 

이런 점이 소설의 재미를 반감시키진  

않는다는 점일 겁니다. 그것은, 주인공들보다  

더 중요한 건 전염병이 도는 상황이기 때문일  

겁니다. 한 개인의 행동이나 노력으로 나아지기 

힘든 현실에서  주인공들이 무엇을 했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우리'는 어떠한 선택을 했는가가 

더 의미있다는거죠. 

   

 

 

 

다음 작품이 궁금하다 

   

정유정 작가의 작품은 참 재미있습니다. <7년의

밤>에 이어 <28>, 그리고 또 다음 작품은

얼마나 재미있을지 진심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작가님! 다음 작품 기다리다가 현기증

나는 독자들을 위해서, 힘을 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