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더럽고 부패한 소송도 그럴싸한 언어로 양념을 하면

              악행의 외양이 희미해지지 않는가? 종교에서도

              아무리 저주받을 잘못이라도 목자가 엄숙한 얼굴로

              축복해주고 성경으로 다시 증명해주면

              그 흉악함은 번지르르한 장식으로 가려지는 것이 아닌가?

              소박한 악덕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겉에 미덕의 표지를 달고 있기 때문이다.

              속은 모랫둑처럼 헛된 겁쟁이들이 허큘리즈와

              얼굴 찡그린 마르스 군신의 수염을 턱에 달고 있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속을 살펴보면

              그자들의 간은 우유처럼 희멀겋겠지만 말이다.

              그런데도 이자들은 무섭게 보이려고

              용자(勇者)의 수염을 달고 다닌단 말이야. 미인을 보라.

              그러면 미(美)라는 것이 화장의 무게로 매입되는 것임을 알리라.

              그 무게는 기적을 만들어 가장 무겁게 화장한

              여인을 가장 가벼운 여인으로 만들어버리지.

              뱀처럼 구불구불 말린 매력적인 금발도 마찬가지다.

              이 금발은 아름다워 보이는 머리 위에서

              바람과 희롱하지만 종종 알고 보면

              남의 머리가 남긴 유물이거든.

              그 머리칼을 키운 머리는 해골이 되어 무덤 속에 들어가 있고,

              이러한 가식은 매우 위험한 바다로 유혹하는

              교활한 해변가, 인도 미인을 가리고 있는

              아름다운 스카프에 불과하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겉치레는

              교활한 세상이 가장 현명한 사람을 옭아매기 위해 쓰는

              허울 좋은 진리이다. 그런고로 그대 화사한 금이여,

              굳어서 마이더스가 먹을 수 없었던 그대를 나는 갖지 않겠다.

              또 사람과 사람 사이를 내왕하는

              창백한 천역의 물건이여, 나는 그대도 갖지 않겠다.

              하지만 그대 빈약한 납이여,

              그대는 무엇을 기약해주기보다는 위협하는 듯하지만,

              그대의 소박함은 웅변 이상으로 나를 감동시킨다.

              그래서 내 그대를 선택하노니, 기쁜 결과가 따르기를!

포오셔  (방백)  어떻게 다른 모든 감정들은 공중으로 날아가버리는 걸까!

              가령 미심쩍은 생각들이라든지, 경솔하게 품은 절망이라든지,

              몸서리나는 공포심이라든지, 녹색 눈을 한 질투심이라든지.

              오, 사링이여, 절제하라. 그대의 황홀감을 진정시켜라.

              그대의 기쁨을 절제 있게 내리붓고 그 과도함을 줄여라!

              내 그대의 축복을 너무 과하게 느끼고 있으니 그만 줄여줘.

              포식할까 두렵다.

바싸니오 뭐가 들어있지?(그는 납 상자를 연다)

              아리따운 포오셔의 초상화로구나! 입신(入神)의 화필로

              이처럼 신통하게도 실물처럼 그려놓았구나! 이 눈들은 움직이나?

              아니면 내 눈동자에 비치기에 움직이는 듯이 보이는 걸까?

              여기 벌어진 입술은 달콤한 입김을 내뿜기 위한 것이렷다.

              이처럼 달콤한 입김이기에 이렇듯이 정다운 두 입술을

              갈라놓을 수 있는 것이겠지. 여기 머리칼 속에서는

              화가가 거미가 되어서 황금의 그물을 짜놓았구나.

              거미줄에 걸려든 각다귀들을 잡을 때보다도 단단히

              남자들의 마음을 덮친다. 그러나 그녀의 두 눈!  

              화가는 어떻게 양쪽 눈을 다 그릴 수 있었을까? 하나를

              완성했을 때 그것은 그의 두 눈을 다 훔쳐갈 힘이 있어서

              나머지를 능히 완성시킬 수 없었을 텐데. 그러나 보라.

              내가 아무리 칭찬한다고 해도

              그것이 이 그림의 진가에 비한다면 미흡한 바와 같이

              이 그림은 실물에 비해 크게 뒤떨어져.....

바싸니오 아가씨, 당신이 내 말을 전부 빼앗아버렸기 때문에

              내 피만이 혈관에서 당신에게 이야기하고 있을 뿐이오.

              게다가 내 몸의 온갖 기능은 지금 혼란스럽소

              마치 자신들이 사랑하는 군주가 훌륭한 연설을

              마치자 기뻐서 와글거리는

              백성들의 혼란과도 같은 것이오.

              그때에는 각자가 뭐라고 말을 하기는 하지만 한데 섞여

              의미를 분간 할 수 없는 소음으로 화하고, 존재하는 것은

              다만 뭐라고 표현할 수 없는 기쁨의 황야일 뿐이오.

              한데 이 반지가 이 내 손가락에서 작별한다면

              내 목숨 또한 이 세상과 작별하는 것이오.

              오, 그때는 바싸니오가 죽었다고 단언해도 좋소!

3막 5장

제시커    말로 표현할 수 없이 좋아요. 바싸니오 씨는 이제

              바른 생활을 하는 것이 마땅해요. 그런 부인을 얻는

              축복을 받았으니까요. 그분은 이제 지상에서도

              천당의 기쁨을 맛보게 되셨어요.

              그런데 그분이 만약 이 지상에서 그것에 값하는

              고결한 생활을 하지 못하신다면요, 당연히 천당에

              오를 수 없어야만 해요. 그래야, 만약 두 신이

              지상의 두 여인을 걸고서 천당에서 시합을 벌이는데,

              그중 한 사람을 포오셔로 한다면 나머지 한 여인에게는

              그 외에 무엇을 좀 더 걸어야 할 거예요. 이 척박한 거친 세상은

              그분과 같은 사람을 또 갖고 있지 못하기 떄문이에요.

4막 1장

그라쉬아노 오, 당신은 저주받아 지옥에 떨어지는 천벌을 받고도 남을

              개가 되시오! 당신을 살려두다니 정의의 심판이 원망스럽소.

              당신은 내 신앙심을 뒤흔들어 짐승의 넋이 인간의 몸속으로

              기어든다는 피타고라스의 견해에 찬동하도록 만드는군.

              개의 것과 같은 그대의 넋은 본시 이리 속에 있었던 것인데,

              사람을 죽인 죄로 그 이리가 교수형을 당할 때 그놈의

              사나운 넋이 교수대에서 도망쳐서 그대가 아직 불결한

              어미의 뱃속에 누워 있을 때 그대의 몸속으로 기어든 것이오.

              그래서 그대는 이리와 같고, 잔인하고 굶주리고,

              갈까마귀 같은 탐욕에 찬 욕심을 지닌 것이오.             

5막 1장

포오셔    경쟁자가 없을 때는 까마귀의 소리도

              종달새 소리만큼 아름다운 법이며,

              두견새라 할 지라도 거위들이 제각기

              꽥꽥거리는 대낮에 운다면 굴뚝새보다

              훌륭한 음악가라고 생각되지 않을 거야.

              세상만사는 적당한 때와 장소가 조화를 이룰 때 행해져야

              비로소 정당한 칭찬을 받으며 완벽을 기할 수 있는 것이다.

              조용히! 달님이 엔디미온과 함께 잠들어

              깨려고도 하지 않는구나.

기독교인과 유대인

  포오셔는 4막 1장에서 재판관 자격으로 오로지 차용증서에 의거한 복수만을 고집하는 샤일록에게 기독교의 최고 덕목이요 가치의 하나인 자비의 본질에 대해 설교하지만('자비의 본질은 강압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마치 하늘에서 대지 위로 내리는/ 고마운 비와 같습니다. 이것은 이중의 축복으로/ 베푸는 자와 받는 자를 동시에 축복해줍니다./ 이것은 가장 위력 있는 것 중에서도 가장 위력이 있습니다'), 역설적이게도 그곳에 모인 기독교인들은 자신들이 설교하는 바를 실천하지 않고 있다. 도덕적으로 우얼하다는 인식과 실천이 따르지 않는 말뿐인 설교로는 그 누구도 종교적 박해와 온갖 인격적 모욕을 받아 원한이 골수에 사무친 샤일록의 얼어붙은 마음을 녹일 수 없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 앤토니오를 비롯해 기독교인들은 유대인 샤일록을 개 취급하면서 같은 인간으로 대접해주지 않는 편협함을 보였다. 몰인정하기는 양쪽이 마찬가지다. 셰익스피어가 유대인이라면 몰인정한 고리대금업자로 정의되던 자신의 시대의 보편화된 유대인상을 도외시할 수는 없었을 것임을 고려해보면, 기독교인들과 유대인에 대한 이와 같은 주장은 가히 진취적이고 획기적이라 할 수 있다.

  이 극은 유대인 샤일록이 잔인성, 몰인정, 돈에 대한 지나친 욕심등으로 몰락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지만, 동시에 기독교인들의 그에 대한 박해 또한 진정한 기독교 정신에 반하는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 오늘날의 시각에서 본다면 소수 민족인 유대인 샤일록에 대한 이들 기독교인들의 언행은 원수도 사랑하라는 기독교의 참 정신에서도 한 참 멀어진 것이다. 기독교인들은 샤일록의 딸 세키거가 노부의 돈까지 훔쳐서 기독교인 연인과 도망친 것을 '사랑의 도피'라 찬양하지만 이 또한 효심과 양심이라는 도덕률과도 거리가 있다. 셰익스피어의 개인적인 의도나 심정을 헤아릴 길은 없지만 이 작품은 독선적이고 편협한 기독교인들에 대한 풍자를 담고 있다는 풀이를 부정하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