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책에는 수 많은 전쟁들이 서술되어 있다. 그 전쟁은 각각의 명분을 가지고 있고, 갖가지 변화를 가져 온다. 그러나 전쟁이 일으키는 수 많은 결과 중, 가장 자명한 사실은 전쟁의 날카로운 상흔들이 아귀같은 갈퀴로 개인의 삶을 거칠게 할퀴고 지나간다는 것이다. 어떤 찬란한 명분을 가지고 있는 전쟁이든, 전쟁 후 현실적으로 개인에게 직접적으로 와 닿는 것은 시체의 악취와 남겨진 자들의 슬픔 등이 어우러진 진창이다. 우리나라는 특수한 지리적 환경으로 인해, 그 피해를 끊임없이 겪어온 민족이며 현재도 그 상흔은 완전히 지워지지 않고 현재 진행 중이다. 그래서인지 모른다. 전쟁 소설들이 먼 나라의 얘기로만 느껴지지 않는 것은.
프랑스 최고의 문학상인, 공쿠르 상을 수상한 이 작품, <오르부아르>의 작가는 우리나라에서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프랑스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와 친분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프랑스 작가들이 자신의 나라에서보다 우리나라에서 더욱 큰 인기를 누리고 있는 이유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좀처럼 구상하기 힘든 기상천외한 생각을 글로 풀어내는 재주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베르나르 베르베르 작가의 작품으로 가장 잘 알려진 <개미>나 최신작들보다는 사후세계 얘기를 풀어 놓은 <천사들의 제국>, <신>, <타나토노스>를 더 좋아한다. 이 중 가장 좋아하는 책은 <타나토노스>이다. 특히 <타나토노스>가 보여준 사후 세계에 대한 흥미로운 견해는, 밥 먹는 것을 잊고 책에 몰두할 정도로 재미있었다. 이런 신세계를 보여준 베르나르 베르베르보다, 한국에서 더 인기를 끌고 싶다고 말한 이 작가 피에르 르메르트에 대해서 이제부터 파헤쳐 보자.
<사진 출처 :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5/11/10/0200000000AKR20151110183400005.HTML?input=1195m>
피에르 르메르트는 작품을 쓸 때마다 상을 받는데, 그 이유는 문학성과 예술성이 잘 결합된 작품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오르부아르>를 읽고 나는 여기에 몇 가지를 더 덧붙이고 싶다. 역사성과 고발성, 그리고 유쾌함. 전쟁의 결과가 개인에게 어떻게 난폭한 피해를 입히는지 말하면서, 전쟁이 끝난 이후에도 끝나지 않은 전쟁일 치르는 수 많은 군인들의 삶과 모순성을 고발하고, 그 어두울 수 있는 얘기를 사기극으로 유쾌하게 풀어냈기 때문이다.
같은 프랑스 작가이기 때문에 베르나르 베르베르와 많이 비교되곤 하지만, 피에르 르메르트는 베르나르의 작품과는 궤를 달리 한다고 생각한다. 우선 문체, 뉘앙스, 서술 방식이 다르고 쓰고자 하는 주제들도 많은 차이가 있다. 또한 꽤 젊을 때 데뷔한 베르나르와 달리, 그는 55세라는 지천명을 넘어선 나이에 작가로 데뷔했다. 그만큼 소설은 거친 느낌보다는 매끈한 완숙미를 가지고 있다. 인물들의 심리와 모순적인 마음의 묘사도 뛰어나다. 왜 사람들이 비이성적인 결정을 내리고, 지나온 삶을 후회하고, 영예와 물질적인 욕심을 불태우고, 불 속인 줄 알면서 뛰어드는지. 그 모든 날에 대한 경험을 꽤 한 덕분인지 소설에 나오는 모든 인물들의 복잡다난한 속내가 자연스럽게 이해가 된다. 그가 약관의 나이를 조금 넘겼을 때 이런 소설들을 썼다면, 이렇게 매끄러울 정도로 등장인물의 심리를 표현할 수 있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많은 소설가들이 그랬던 것처럼 수십번의 퇴짜를 맞고도 끊임없이 도전하여 이렇게 훌륭한 소설들을 써 낸 그에게 마음의 박수를 친다.
<오르부아르>는 소설의 주축을 이루는 세 남자에 대해서 소개하면서 시작한다. 세계 제 1차 대전에 각각의 이유로 참가한 세 남자. 알베르, 에두아르, 그리고 욕망의 화신 프라델까지. 전쟁을 일으킨 것은 위쪽에 있는 높으신 분들의 결정이지만, 정작 전쟁의 말로 쓰이는 것은 다수의 국민들이다. 알베르는 유약하고 자기 주장이 약한 전형적인 소시민 회계사이며 병적으로 자신의 생활에 간섭하는 늙은 어머니와 '세실'이라는 아름다운 연인이 있다. 곧 이 '세실'은 가난뱅이에다 회사에서 쫓겨난 알베르를 버리고 만다. 전쟁 때문에 많은 것을 잃었다는 것을 제외하면, 알베르의 삶은 현재 우리 젊은이들이 포기하고 사는 것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에두아르, 한 때 아버지의 사랑와 어머니를 제외하고 부와 재능 등 모든 것을 다 가졌던 촉망받던 젊은이. 스토리 상 개인적으로 가장 안타깝게 생각되는 인물이면서 가장 사랑스러운 캐릭터다. 알베르 뿐이었다면 절대로 맛 볼 수 없는 통쾌함을 선사해 준 멋진 청년이기도 하다. 알베르는 전형적으로 돈과 권력을 밝히는 인물이다. 귀족이긴 하지만 몰락의 길을 가고 있어서 전쟁을 통해 한 몫 단단히 잡으려는 그의 야심은, 전쟁과 살인까지 불사한다. 이러한 그의 성향은, 자신의 목적을 위해 다른 사람들을 흔쾌히 소모품으로 사용하는 일부 지배층의 논리와 거의 동일하다.
처음 소설은 세계 제1차대전의 막바지, 프랑스 군인들의 진영에서 시작한다. 알베르는 눈치 없고 느리며 전쟁이 종결되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프랑스 젊은이이다. 게다가 욕망에 차 있는 귀족 출신 중위 '프라델'을 꺼림칙하게 느끼기도 하고. 이 눈치 없는 주인공은 이상하게도 희한한 곳에는 촉이 잘 발달했는지 온갖 사건에 잘 휘말리는데, 그 첫 사건은 바로 '프라델의 전쟁 조작'이다. 몰락 귀족인 프라델은 이대로 종전이 된다면 아무 공도 세우지 못하고 자신의 기회도 생으로 날아가 버릴 거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부하 두 명에게 적진을 살피고 오라는 명령을 내린 다음 본인이 죽이고, 독일군이 프랑스 군인들을 죽인 것처럼 사건을 조작한다. 결국 이 사건을 계기로 전쟁 막바지에 두 군영 사이에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게 된다. 알베르는 계속 주변을 살피는 초식 동물처럼 프라델을 잘 관찰하는 경향이 있는데, 무엇인가 이상함을 느끼고 병사 2명의 시체를 찾아 프라델이 그들을 죽였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프라델은 그것을 눈치 챈 알베르까지 함께 죽여버리려고 한다. 우연히 그 장면을 보게 된 에두아르. 폭탄에 다리가 너덜거리지만 한 사람을 살려야 겠다는 생각으로 둔한 청년 알베르를 구하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한다. 그러나 알베르를 구하는 데에는 성공하지만, 폭탄의 파편을 맞아 얼굴의 반을 잃어버리고 기괴한 모습으로 살아야 되는 기구한 운명을 맞는다.
알베르와 에두아르, 그 둘은 결국 병원에 실려가 목숨을 구하고 처참한 모습이 된 에두아르를 알베르는 정성껏 돌본다. 사실 에두아르가 알베르를 구하긴 했지만, 그러한 상황에서 알베르가 에두아르를 두고 도망가 버린다 해도 아무도 알베르를 비난할 수 없을 만큼 처참한 상황이었다. 살이 썪는 내가 병실에 진동하고, 매일 밤 고통에 차서 비명을 지르고, 고름이 썪어내리는 침대에서 알베르는 에두아르를 간병한다. 그리고 결코 집으로 가기 실타는 에두아르를 위해 신상명세까지 조작해 준다. 사실 이건 엄청난 위법 행위인데, 이런 행위는 겁 없이 잘도 저지르면서 동료를 사살하고, 자신을 죽일 뻔한 프라델 앞에서 입이 굳어 사실 하나도 뻥긋하지 못하는 알베르는 대담하다고 해야 할 지, 소심하다고 해야 할 지 갈피가 잡히지 않는다. 어째 됐든 알베르는 프라델 앞에서는 고양이 앞의 쥐같은 존재가 되는 것 같다.
전쟁이 끝난 이후에도 알베르는 에두아르를 돌본다. 치료를 받다가 모르핀에 중독된 에두아르를 위해 위험한 행동을 감수하면서까지 모르핀을 구하고, 생활비도 군말 없이 번다. 그 둘은 전쟁으로 인해 최하층민의 생활을 살아가게 된다. 그와 반면에, 프라델은 인생의 빛을 찾는다. 그는 에두아르의 시신을 찾기 위해 찾아온 에두아르의 사랑스러운 누이 마들렌과 결혼하고, 마들렌 집안의 가호를 뒤에 업고 사업은 승승장구 하며, 마들렌의 아버지가 죽으면 그 많은 재산은 그 자신과 마들렌의 것이 된다. 사회 지도층만 들어가는 클럽에 들어가고, 매력적이고 아름다운 수많은 젊은 아가씨들과 마음껏 잠자리를 갖는다. 이들의 대비되는 생활 수준은 전쟁과 자본주의의 모순을 극명하게 나타낸다.
에두아르의 아버지 페리쿠르는 프라델을 자신의 사윗감으로 못마땅해 했지만 마들렌의 고집으로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게 된다. 페리쿠르는 어느 날 쓰러지면서 자신에게 죽음이 머지 않았음을 깨닫고 골칫덩이였던 아들 에두아르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된다. 죽었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심지어 안심까지 했던 자신의 모습, 그리고 평생동안 못마땅해 했던 아들의 모습, 그리고 자신의 수중에 하나도 없는 아들의 잔해들... 그리고 죽음을 앞두고 아들을 위해, 전쟁에서 죽은 이들을 위한 기념물 건립을 마음 먹게 된다. 이 모든 사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기념물 건립!" 프라델은 이 기념물 건립을 통해 한 몫 단단히 잡으려고 마음 먹고, 삶에 대한 의지를 모두 잃어버렸던 에두아르는 기념물 건립 조각상을 통해 엄청난 대국민 사기사건을 저지르려고 알베르를 설득하는데...
이 소설은 배를 잡고 구를 만큼 웃긴 것은 아니지만, 은근히 웃기는 장치가 여러 곳에 있다. 어이 없는 일들은 주로 프라델이 돈을 긁어 모으려고 사업을 조작하는 데서 벌어지는데, 예를 들면 시체들을 넣을 관을 짜는데 그 가격을 깎으려고 세로 길이를 130cm로 맞춘다. 무슨 시체가 줄어드는 것도 아니고, 관이 그리스로마신화에 나오는 프루크러테스의 침대라도 되는 것처럼! (프루크러테스의 침대는,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거인이 나그네를 자신의 집에 묵게 한 다음 나그네의 키가 침대에 맞지 않으면 억지로 몸을 늘이거나 도끼로 머리나 다리를 쳐 내서 침대의 크기에 꼭 맞게 만든다는 얘기다.) 이런 식으로 작가는 비인간적인 자본주의에 대한 경멸과 비판을 교묘한 에피소드를 통해 곳곳에 집어 넣었다.
마지막으로, 소설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문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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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어떤 일이 일어나든 다시 회복된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전쟁에서 이기고 난 이후로 매일 조금씩 전쟁에 져가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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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65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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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장만큼 개인에 가해진 전쟁의 폭력을 잘 표현할 수 있는 말은 없다고 생각한다. 개인에게 전쟁에서 이겼냐 졌느냐 하는 것 보다, 전쟁이 가져온 굼주림과 가난, 불구가 된 몸 등이 더 큰 비극이 된다. 반면 전쟁을 결정하는 사람들은 이러한 불행에 대해서 깊게 생각하지 않는다. 미국의 전 대통령 '부시'가 미국의 경제를 위해 자료를 조작하고 가짜 명분을 내세워 '이라크 전쟁'을 일으키고 IS가 프랑스 곳곳에 자살 폭탄을 터뜨린 것처럼. 이러한 전쟁을 통해 개인은 엄청난 고통과 비극을 겪고, 자신의 가족들을 잃고 울부짖지만 그들은 개의치 않는다.
<오르부아르>에서 이러한 전쟁의 모든 비극에도 굴하지 않고, 우리의 덜 떨어진 알베르와, 장난꾼 에두아르가 '비정한 사회 지도층'과 '전후에 벌어진 더러운 자본주의'를 통쾌하게 농락하는 장면을 꼭 즐기기 바란다. 더불어, 모든 전쟁의 희생자에 대하여 다시 생각하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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