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이야기로 읽는 고시조, 임형선-시조 속에 숨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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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시 준비를 하는 학생들이 제일 싫어하는 것 중에 하나가 뭔지 아시나요? 바로 고전 시가입니다. 고전 소설은 그래도 말이 풀어져 있고 조선 중후기 것이 대부분에 줄거리가 있으니 읽을만 합니다. 게다가 고전 소설을 지금으로 치자면, 서민들 사이에서 그 당시에는 재미있기로 유명했던 최고의 드라마같은 것이었으니 어느 정도 흥미 유발도 됩니다. 그러나 고전 시는 대부분 고루한 양반들이 쓴 것이고 곳곳에 섞여 있는 고어에 따분한 말투에... 그렇지 않아도 따분한 국어시간을 죽음의 시간으로 만드는 일등공신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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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고전시는 정말 이렇게 알 수 없는 고어가 뒤섞인 재미없는 것일까요? 그렇다면 왜 많은 사대부들이 시 짓는 것을 풍류로 즐겼을까요? 충분히 재미있게 느낄 수 있는 '시'를 우리가 죽은 방식으로 공부하고 말 그대로 검은 것은 글씨요 하얀 것은 종이처럼 읽고 있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나요??? <죽은 시인의 사회>가 떠오르네요. 그 영화에서도 영국학생들이 오로지 입시를 위해 엄청 재미없게 시를 배워요. 하지만 새로 부임해 온 교사 '존 키팅'은 학생들에게 시를 감상하는 전혀 다른 방법을 가르쳐주죠. 그 수업을 듣고 학생들은 스스로 시 동아리를 만들 정도로 '시 감상'을 즐기게 되죠.

 

 

 <이야기로 읽는 고시조>는 이렇게 획일적으로 배우는 고전 시를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재미있게 인식하는 방법을 알려 줄 지도 모릅니다.  <이야기로 읽는 고시조>는 제목처럼 고시조에 얽힌 배경과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실제로 말하듯이 서술합니다. 물론 이 방법은 새롭지 않아요.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지만 시간과 효율의 문제로 실제 학교 현장에서 자주 사용하지 못 하는 방법이기도 하지요. 하지만 어릴 때를 생각해 봅시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엄마 아빠가 책 읽어주는 시간을 기다리지 않았나요? 눈을 초롱초롱 빛내면서 오늘은 어떤 재미있는 옛날 이야기를 들을까 기대하면서요. 재미있는 이야기를 듣고 그 때의 장면을 머리 속으로 상상하는 일은 생각보다 즐거운 일입니다. 요새 텔레비전과 인터넷, 핸드폰이 워낙 발달하다 보니 많은 사람들이 그 추억을 잊고 살지만요.

 <이야기로 읽는 고시조>에서 첫 번째로 다루는 사람은 바로 '임제' 입니다. "기녀의 무덤 앞에 한탄하며 술을 따른 한량 시인"이라는 제목으로 그의 호탕함과 자유분방함, 그리고 집안 이력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현대 사회에서도 고위직 공무원의 여자 관계가 복잡하거나 성상납을 받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어마어마한 타격을 받는데, 유교사회였는 조선시대는 그런 사회적 제재가 더욱 심했다는 것으로 이야기를 시작하네요. '임제'는 바로 임명장을 받고 부임하던 길, 기녀의 무덤에 술병을 들고 찾아가 기녀를 그리워하는 시를 읊은 현대사회로 치자면 아주 막장인 공무원이죠.

	청초 우거진 골에 자난다 누엇난다 홍안은 어듸 두고 백골만 무쳤난이 잔자바 권하리 업스니 그를 슬허 하노라 -임제-

 

 임제의 성격을 얘기하다 보니, 임제 집안의 분위기도 나오고 임제 아버지의 시조도 한 수 알게 되고, 임제가 추모했던 기생 '황진이'의 일생과 시조도 알게 되고. 이렇게 줄줄이 비엔나처럼 이야기를 읽다보니 어느새 시조 3수를 알게 되네요. 송도삼절 중 하나인 황진이의 일생은 덤이구요.

 그리고 임제의 이야기를 현대식으로 풀이하다 보면 오해할 수 있는 임제의 '방탕함'에 대해서도 열심히 설명해 줍니다. 요새 시각에서 생각하는 '불량 청년'이 아니라 당시 시대에서는 예술가적 기질이라구요. 조선 시대 얼마나 공무원이 되기 힘들었는지는 모두들 아시죠? 공무원에 임명될 만큼 학문과 문장에 뛰어났으며 예술을 사랑했던 사람이라고 하는 게 맞습니다. 그렇지만 정치에는 그렇게 큰 관심이 없었으며 풍류를 읊고 즐기는 삶을 추구했던 거죠.

 무려 3년 연속 수능에 나왔던(2014-2016수능) 고전시가의 주인공 '정철'이 <이야기로 읽는 고시조>에 나오지 않으면 무척 섭섭하겠죠? 당연히 나옵니다. 정철이 없었다면 국어공부가 훨씬 쉬웠을텐데 하고 한탄하는 수험생들이 많다니 정말 안타깝습니다. 물론 관동별곡, 성산별곡, 사미인곡, 속미인곡 등이 길고 어려운 편에 속하긴 하지만 그가 있어서 조선문단이 정말 풍요로웠는데 말이죠. 정치적으로는 무지막지한 피를 본 '정철'이 이렇게 아름다운 시들을 쓴 것을 보고 혹자는 놀라기도 하지요. 게다가 그에게 아름다운 사랑이야기까지 있습니다. 송강 정철이 사랑한 여자는 유명한 기녀가 아니고 시골에 있던 아무도 모르는 기녀 '진옥'이었습니다. 정철이 50대 중후반에 강계에서 쓸쓸히 유배 생활을 하고 있던 중 어두운 밤에 갑자기 문이 벌컥 열리고 한 사람이 들어옵니다. 그녀는 아주 아름다운 어린 소녀였는데 강계에 사는 기녀로 '정철'의 높은 학식을 사모하여 찾아온 것이었죠. 요새 여성이라고 해도 굉장히 대답한 행동이 아닐 수가 없는데요,  적적한 유배 생활 중에 이렇게 아름다운 소녀가 매일 찾아와 이야기를 나누니 마음이 동하고 몸도 동하지 않겠습니까? 정말 요새 젊은이 들어도 얼굴이 화끈해질 만한 야한 시를 '정철'이 불렀습니다.

	옥이 옥이라커늘 번옥만 너겨떠니 이제야 보아하니 진옥일시 젹실하다 내게 살송곳 잇던니 뚜러볼가 하노라 -정철-

 

 

 정말 핑크빛 기류가 가득하다 못해 철철 넘치는 시네요. 옥은 기녀 '진옥'을 말하는 것이고, 내게 있던 살송곳이 무엇인지는 여러분의 상상력으로 충분히 추리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뭘 뚫는다고 하겠다는지 말이죠. 사미인곡, 속미인곡만 아시는 분들은 정철이 이런 시도 불렀다니, 하고 충격을  먹을지도 모르겠네요. 게다가 많은 사대부들이 이렇게 야한 시를 부를 때에는 자신의 이름을 밝히지 않았건만, 정철은 그렇지 않고 자신의 이름을 당당히 붙여 불렀다 합니다. 시골 출신 기녀인 줄만 알았던 '진옥'도 여기에 지지 않고 아주 훌륭한 화답가를 즉석에서 지어 불렀습니다. 역시 '정철'을 사모해 당당히 그의 방으로 쳐들어 간 여자답네요. 책을 직접 읽으실 분들을 위해 화답가는 생략하도록 하겠습니다만, 조금 언급하자면 화답가도 정철의 시조 만만치 않게 화끈합니다~

 자, 첫 번째 '임제'의 이야기는 많은 분들이 알고 있어서 식상했을 수도 있겠지만 두 번째 '정철'의 사랑얘기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낯선 얘기였을 것입니다. 혹시 제 글을 읽고 시조의 '재미'를 조금 느낄 수 있었다면 <이야기로 읽는 고시조>를 보고 시간 가는 줄 모른 채 옛날 이야기에 빠져들게 될 거예요. 학생 뿐 아니라 많은 분들이 <이야기로 읽는 고시조>를 통해 우리 전통 문학을 좀 더 사랑하고 아끼게 되었으면 정말 좋겠습니다. '약간 야한 부분이 있어서 학생들이 읽기엔...'이렇게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을 수도 있는데 이미 애들은 알 거 다 알고 있을 거예요. 게다가 쌍화점, 만전춘별사 등은 제대로 해석하면 더 야해요. 

 고전 시가를 지루하고 어려운, 따분함의 일등 공신이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우리가 모르는 화끈하고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이렇게 조상들의 문학작품 뒤에 숨어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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