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장부터 길게 서술되는 프라임 스쿨의 소개부터 심상치 않았다. '프라임'이라는 말 그대로 지구의 다른 사람보다 우월한 소년들만이 입학하여 만 명을 다스리는 우두머리를 교육시키는 학교. 지구 구역 안에서도 1,2,3위 안에 드는 구역의 소년들만 입학할 수 있으며(형식적 말고 실질적으로) 그나마 2, 3지구 학생들은 거의 통과하지 못하는 입학시험. 말 그대로 전인격적 교육을 통해 사회 지도자를(=다른 사람에게 공감할 수 없는 이성을 가진 어른으로) 양성해내는 초엘리트 교육기관, 그 곳에 다윈 영이 다니고 있었다. 책을 잃어버리지 않은 것으로 취급하기 위해 '책이 공공재'라는 것을 받아들이라는 조언을 하며.

 <다윈 영의 악의 기원>에서는 '이름'이 많은 것을 말한다. 프라임 학교, 프리메라 여학교(굳이 프라임학교를 남학교라고 지칭하지 않은 것처럼 프리메라를 여학교라고 쓰지 않는 것이 더 좋았을 뻔 했다), 두뇌들이 모여사는 '호두나무 거리', 진화의 미싱링크를 추적해 나가는 역할을 맡은 '다윈'이라는 주인공의 이름 등.(진화론의 '다윈'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다윈 영의 악의 기원>에는 초반부부터 흥미진진한 인물들이 연이어 등장한다. 다윈 영의 아버지이자 문화교육부의 차관인 '니스 영', 다윈이 짝사랑하는 동갑내기 여자아이 '루미, 니스가 30년 동안 연이어 추도식을 열어주고 있는 죽은 친구이자 루미의 삼촌 '제이', 자신의 형 '제이'가 죽었는데도 그 날의 진실을 숨기고 거짓 진술을 한 루미의 아버지, 그리고 25년 만에 갑자기 등장한 니스의 학창시절 친구이자 <마약에 빠진 8지구 아이들>에 대한 다큐를 찍는 '버즈', 그리고 버즈의 아들이자 통통 튀는 이상한 생각을 가진 프라임 학교 동기 레오 등. 게다가 루미의 삼촌 제이의 죽음은 미스터리로 끝났으며 '다윈 영'의 아버지 '니스 영'은 계속 무언가를 마음 속에 숨기고 있는 듯 하다. 게다가 아들과 손자를 인생 최고의 자랑이라고 여기는 '러너'와 달리 '니스'는 아버지에게 애증을 가지고 있다.

 책 소개에서 <다윈 영의 악의 기원>이 새롭고 낯선 세계를 그리고 있지만 비현실적이지는 않다고 말한다. 계급사회로 회귀한 미래 같기도 하고, 과거로부터 온 이야기인 것 같기도 하다고. 1부터 9지구까지 계급에 따라 나뉜 생활구역은 <헝거 게임>을 떠올리게 하고 엘리트교육의 절정에 이른 '프라임 스쿨'의 교육은 과거 영국의 엘리트학교(현재도 유지되고 있지만)를 연상시킨다. 또한 현재 심화되고 있는 사회 계급의 격차를 생각하면 우리나라가 <다윈 영의 악의 기원>에 나오는 계급사회를 향해 진행 중인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개인적으로 지켜 본 바도 그렇고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는 사건들도 그렇고. 교육을 "계층의 사다리"라고 지칭하는 이론이 있는데 <다윈 영의 악의 기원>에서는 오히려 교육이 '엘리트 사회'를 더욱 심화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 자연스럽게 내가 살고 있는 세계와 이 가상의 세계를 비교하게 된다. 최근 우리나라의 명문대입학 통계나 영재교육원에 다니던 아이들의 경제, 사회적 상황을 생각해보면 교육이 가진 "계층의 사다리"라는 역할을 사회가 점점 축소시키고 있다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

 다시 책으로 돌아가서 미싱링크를 찾아내는 주인공 '다윈 영'은 내가 좋아하는 점과 그렇지 않은 점을 골고루 갖춘 16살의 프라임스쿨 학생이었다. 전형적인 모범생이자 선한 영혼을 가졌으며 아버지와 할아버지에 대한 어떤 의심도 하지 않고 그들을 사랑하는 워너비 아들의 대명사같은 존재. 체제에 순응하고 한정된 자유를 마음껏 즐기며 거기에 의문을 품지 않는 착한 학생. 하지만 대부분의 프라임보이와 다르게 교만하지 않고 겸손하며 따뜻한 마음과 시적인 영혼을 갖춘 남자아이. 사랑의 정적이 될 수도 있는 레오의 호감을 같은 호감으로 돌려줄 줄 아는 아이. 반면 다윈 영이 좋아하는 여자아이 루미는 7급 서기관이라는 직업처럼 순응적인 아버지에게 반항하는 마음을 가진 당찬 소녀이다. 누가 도와주지 않아도 제이 삼촌의 죽음을 파헤치기 위해 스스로 조사하고 진실처럼 보이는 것들에 의심을 갖는 아이. 마지막으로 1구역과 프라임 스쿨의 모든 체제에 의심을 품고 반항하는 아이 레오. 활기차고 의문을 갖고 가장 살아있는 인간처럼 보이는 생기있는 아이. 1구역에 살고 있지만 8구역이나 9구역과 같은 하층민의 삶에 관심을 두고 진실을 파헤치고 싶어한다. 나는 다윈보다는 루미와 레오가 훨씬 마음에 들었다. 아마 다른 독자들도 그렇게 느낄 것이다. 하지만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것을 제대로 표현하기 위해서는 '다윈 영'같은 소년이 반드시 필요했다. 우리 마음 속에는 언제나 이 세 명의 소년소녀와 같은 생각이 공존하고 있고, 부모가 되어서는 자식들의 자유를 제한하고 미래를 조종하고 싶어하며 아이들이 '다윈 영'처럼 행동하기를 원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우리나라에도 이제 이런 류의 소설을 쓸 수 있는 작가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내 식견이 좁은 것일 수도 있겠지만, 아마 작가의 이름을 보지 않고 읽었더라면 미국 작가가 쓴 것으로 착각했을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도 내내 미국 유명 소설 <헝거게임>과 <The giver>를 떠올렸으니까 말이다. 특히 계층에 따라 삶의 구역이 정해진 것을 제외하고는 많은 부분들이 <The giver>의 체제를 연상시켰다. 다른 점은 <The giver>에서는 모두 공평한 삶을 누렸으나 이 책에서는 그렇지 않았다는 점.

 

 많은 사람들이 <다윈 영의 악의 기원>을 읽으면서 미래에 대해 다시 생각해 봤으면 좋겠다. 요새는 지금처럼 흘러간다면 언젠가 이처럼 명확히 계급화되어 태어난 계급대로 살아가야만 하는 시대가 될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그 세상을 미리 보고 대비한다면 나는 어떤 사람이 되어 있을까? 나는 재빨리 기회를 노려 1구역 사람이 되거나 최소한 3구역 정도는 되는 사람이 되어 내 일신의 안일함을 노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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