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행하는 오류 중 하나가 바로 '과학'이 철학과는 영 거리가 먼 학문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과학적 행위와 가설, 이론 등을 자세히 살펴보면 어디 하나 '철학적 요소'가 들어가지 않은 곳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많은 sf 소설과 영화가 철학적인 주제로 발전된 미래 세계를 다루고 있는 것만 봐도 그렇다. 기계가 인간을 대신할 수 있는가, 만약 그렇다면 인간 본연의 역할은 무엇인가, 인간과 매우 흡사하게 만들어진 기계를 단순히 기계로 생각할 수 있는가, 기계가 인간의 신체를 대신할 때 어디까지를 인간으로 볼 것인가, 복제기술은 인간의 존엄성을 침해하지 않는가 등등. 철학이 필요한 것은 이러한 과학윤리 논쟁 뿐만 아니다. 아인슈타인의 주장에 따르면 과학철학은 과학사와 함께 탐구자의 상상력을 마음껏 자극한다고 하였다. 더 넓은 세상을 바라보는 과학자들은 결코 철학을 소홀히 여기지 않았다. 현재 인문학과 철학은 세상과 동 떨어진, 실용성이 매우 떨어지는 학문이라 여겨져 기피되고 있다. 하지만 인간의 기술과 문명이 더 높은 수준에 도달하여 많은 윤리적 문제가 야기되고 과학의 발전으로 인해 물질적으로 넘쳐 많은 폐해를 일으킬 때 인류는 다시 '철학'에 집중하게 될 것이다. 이제껏 인류가 발전의 정점에서 그리 하였듯이.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그 순간이 오기 전에 충분히 철학적 성찰을 하고 다가올 미래에 대비한다면 그만큼 발전의 부작용은 줄어들 것이다.

도덕성이나 인간의 자유의지에 대해 생각이 정립되어 있지 않는 한 과학자들은 진화에 바탕을 둔 이론이 인간의 도덕성에 끼칠 여파에 대해 제대로 된 판단을 내린다거나 신경과학의 발전 앞에 선 인간 자유의지 운명에 대한 평가를 할 수 없다. -서문 중에서-

 <과학한다, 고로 철학한다>는 1장에서 '과학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먼저 다룬다. 역사, 문학이 과학에 속하지 않는다는 데에는 보통 이의를 제기하지 않지만 경제학, 지적설계이론, 동종요법은 과학인지 아닌지 논란이 된다고 한다. 예를 들어 경제학은 일반 과학 분야처럼 수학이 바탕으로 되어 있고 권위있는 학문이지만, 미래를 예측하는 데 취약하며 실제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을 너무 단순화 시켜 파악한다. 실제로 유명한 경제학자들이 자신만만하게 주식에 도전하곤 하지만 투자금을 불리는 데엔 거의 성공하지 못한다. '과학이 무엇인지'에 대해 얘기하는 데에는 '칼 포퍼'가 빠질 수 없다고 한다. 수학 등 다양한 분야에 과학적인 입증 방법을 도입하게 한 이 유명한 과학자는 굉장히 독특한 성품을 가지고 있었나 보다. 담배 알레르기가 없다고 진단받았는데도 의사를 무시하고, 담배냄새가 나지 않는다는 확인을 받고서야 교실에 들어가 강의를 했다니. 게다가 세미나에서는 발표자의 말을 툭툭 끊으면서 상대를 난감하게 하는 반박을 하고.(한국 학계 세미나에서는 거의 반론이 나오지 않는다는 얘기도 있다.) 

과학하는 자는 어떠한 소망도, 어떠한 애착도 가져서는 안 된다. 그는 돌과 같은 마음을 지녀야 한다. -찰스 다윈-

 1부에서 과학과 과학적인 방법에 대해서 알아보았다면 2장에서는 과학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 지에 대해서 알아본다. 영국에서 인간생식 배아 관리국에 '미토콘드리아 이식의 효용성과 안전성에 대한 전문가의 의견'에 대한 자문을 부탁했다. 미토콘드리아 장애를 가진 사람이 유전병을 갖지 않은 아이를 가질 수 있도록 하는 새로운 기술에 대해 개인적 의견이 담기지 않은 순수히 기술적인 차원에서 평가해 달라는 조건이었다. 이런 기술적 문제를 인간이 생식에 끼여드는 윤리적 문제와 별개라고 생각한 것이다. 저자는 과학에 이미 가치가 내재해 있지만 그것 때문에 정책 입안자들에게 과학자가 조언을 하지 못한다는 것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그는 오히려 과학자가 올바른 가치관을 갖고 있지 않다면 현명한 조언을 할 수 없다고 여긴다.

 이 책은 인간이 과학적인 사고를 하면서 가질 수 있는 철학적 의문들, 그리고 그 의문들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등에 대해서 좋은 지표가 되는 것 같다. 이 글을 읽는 대부분의 사람이 과학자는 아니지만 우리는 학교에서 과학이라는 학문을 배우고 우리가 인지하지 못 하지만 많은 순간에 과학적인 사고를 한다. 심지어 과학과는 거리가 먼 분야라고 생각하는 '문학'에서조차 많은 작품들이 과학적 윤리문제에 대하여 다룬다. 과학에 둘러싸여 생활하지만 과학이란 무엇인지 생각하지 않는 우리들에게 꼭 필요한 책이라 생각한다.

함께 읽으면 좋은 책들 : 이 외에도 많은 추천 책이 있다, 책의 뒷장을 참고하시길.

1. 칼 포퍼의 '추측과 논박'

2. 게리 왓슨의 자유의지

3. 토마스 쿤의 과학혁명의 구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