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우리는 유명한 소설가나 시인의 수필집을 읽는다. 하지만 나는 평론가의 수필집이 가장 흥미롭고 읽을만 하다고 생각한다. 보통 작가들의 수필집을 읽어 보면, 그들의 작품과 크게 다르지 않다. 알고 있는 페이지를 약간 말만 바꾸어서 다시 읽는 느낌이 든다. 평론가이자 번역가이자 편집장인 최윤정 산문집은 그렇지 않을 것 같아서 흥미가 갔다. 평론을 하기 위해서 엄청나게 많은 수의 작품을 읽고 분석했을 것이고, 번역을 하느라 또 그랬을 것이고, 읽고싶지 않아도 편집을 위해서 또 읽었을 것이다. 게다가 여러 곳을 여행하고, 여러 작품들을 읽고 느낀 생각들을 볼 수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내가 아직 읽어보지 못한 수 많은 책의 문자들을 그녀를 통해서 접할 수 있다는 점도 좋았다.

 

 '입 안에 고인 침묵'이라는 제목은 역설적이다. 이미 책으로 낸 시점에서 더 이상 침묵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평소 마음 속으로만 생각하던 이야기들을 적어 냈다는 점에서 맞는 말이기도 하다.

 

 처음 이 책을 접했을 때, 표지의 수묵화가 매우 마음에 들었다. 입 안에서 웅얼거리고 머릿속에서 웅웅거리는 갖가지 생각은 언제나 명확하지 않은 상태로 물에 번진 수묵화처럼 밖으로 나오기 때문이다.

 

 책을 읽으면 언제나 말들이 스멀스멀 타고 올라와서 뭔가를 쓰고 싶어지기 때문에 책을 잘 읽지 못한다는 문구를 읽으면서 공감했다. 나는 뭔가를 쓰다 보면, 다른 것을 읽고 싶어지기 때문에 글을 잘 쓰지 못하는 편에 속한다. 마구 읽다가 다시 쓰고 싶어지고, 쓰다 보면 또 읽고 싶어지고 악순환의 반복이다. 제대로 읽지도 못하고, 제대로 쓰지도 못하는 일의 연속이다. 이 병은 좀처럼 고쳐지지 않는다.

 

 문학상, 상금 인플레 시대에 대해서는 사실 평소에 별 생각이 없던 분야였다. 문학상도 많고 거기에 따라붙는 '금'도 많은 모양이다. 저자는 문학상의 '먹튀'에 대해서 고민하지만, 나는 이것이 우리나라의 전반적인 현상이 아닌가 싶다. 물질만능주의, 결과주의 말이다. 뭔가 증진을 시키고 싶거나 홍보를 하고 싶으면 어김없으 '금'이 따라 붙는다. 황금의 힘은 위대하다. 때로 펜과 사유의 힘을 삼켜버릴 만큼이나.

 

 <입 안에 고인 침묵>은 내게 한번에 쭉 읽어내려가는 그런 책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몇 개 읽을 때마다 새로운 생각할 거리가 쏟아졌기 때문이다. 재빠르게 훅 읽어버리고 싶은 책이 아니다. 두고두고 곱씹어보고 싶은 생각 덩어리이다. 그래서 '입 안에 고인 침묵'이라 했나 보다. 이 생각 덩어리를 파헤치는 데는 더 오랜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 앞으로 이 책을 더 읽으면서 리뷰를 업뎃해야겠다.

 

 책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책을 읽고 싶은 사람에게, 책을 쓰고 싶은 사람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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