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람들은 "미쳤다"라는 말을 굉장히 많이 쓴다. 우선 "-광"이라는 말도 미칠 정도로 빠져들었다라는 뜻에서 미칠광을 쓰고, 책의 제목에서도 <공부에 미쳐야 한다>라고 하는가 하면 일상에서도 "일에 미쳤다", "미친듯이 공부해야 한다" 등 온통 미쳤다는 말 투성이이다. 말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한국 사람들은 가끔 미친 저력을 행동으로 보여주기도 한다. 이처럼 "미쳤다"는 것은 때로는 부정적으로 때로는 부정적으로 작용한다.

 

 처음 책을 받아 보았을 때 <한국인은 미쳤다>라는 자극적인 제목을 보고 자극을 받기보다는 "음, 이번엔 또 사람들이 뭐에 미쳤다는 거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LG전자를 10년이나 이끈 외국인이 "한국인은 미쳤다"라는 책의 저자인 것으로 알고, 외국인들이 보기에 '한국인의 미친짓'으로 간주될 것 같은 여러가지 미친짓(?)이 떠올랐다. 우선 밤 10시가 넘어서도 계속 이어지는 대한민국 고등학생의 살인적인 스케줄은 어떤 외국방송의 해외토픽감으로 삼았을 정도로 유명했다. 그 외에도 엄청난 학부모들의 교육열, 끊임없이 이어지는 야근, 밤에도 환한 도시들과 상점(많은 나라들이 8시 이전에 상점의 문을 닫는다), 2002월드컴 등등이 떠올랐다. 오죽했으면 외국인이 책 광고문구에 "한국의 대기업에서 보낸 10년은 기상천외한 경험이었다!"라고 하면서 책을 썼겠는가 싶었다.

 

 

 대기업에 우리나라 사람들은 두 가지 상반된 감정을 가지고 있다. 많은 젊은이들은 대기업에 취업하기 위해서 명문대를 들어가는 것으로 시작하여 끊임없이 회사에서 선호할 만한 스펙을 쌓는다. 아들과 딸이 '이름을 알 만한 대기업'에 들어갔다고 자랑하는 누군가의 부모님들의 모습은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잇다. 그런가 하면 해외시장에서는 소비자들에게 많은 혜택을 주면서 내수시장에서는 그렇지 않은 대기업의 이중적인 행동이나 이익금을 사회로 환원하지 않으려 하는 모습, 혈육에게 회사 승계하는 방법 등에 대해서는 비판적으로 바라본다. 과연 이 외국인 CEO는 한국의 대기업을 어떻게 바라보았을까? 미리 대답을 하자면 제목에 그대로 나와 있다. 미쳤다고 생각한 것 같다. 그러나 단순히 '한국의 대기업은 미친 곳이야'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저자는 일본 최고의 그룹들이었던 필립스, 소니, 도시바에서 25년간 근무했다. 그가 일본에서 한국 대기업으로 이직할 때, 많은 일본인들은 손사레를 치면서 왜 그런 곳에 가냐고 말렸다고 한다. 일본은 '아시아의 영국인', 한국인은 '무식한 농부, 경직된 군인'의 이미지라니 한 번도 그런 식으로 생각해 보지 않았던 나는 조금 충격적이었다. 하지만, 처음 한국 회사에 입사했을 때 본 광경이 그에겐 더 충격적이었던 것 같다.

 

 LG에 입사하자마자 상사가 부하직원에게 소리를 지르면서 서류철을 던지는 모습을 귀로 목격했으니 말이다. 그리고 산같이 쌓인 서류더미와 꽉 막힌 듯한 사무실, 고함치는 소리 등을 들으면서 "조용한 아침의 나라에 온 걸 환영한다" 라니 얼마나 반어적인 표현인가! <조용한 아침의 나라>는 1900년대 초 버라토시가 한국을 여행하면서 겪은 일을 적은 책의 이름이기도 하다. 한국을 다른 나라에 알리려는 열정과 한국에 대한 올바른 정보를 알려주기 위한 책인데, 한국에 대한 버라토시의 따뜻한 마음이 잘 드러나 있다. 그런데 이제 한국 대기업의 모습을 비판하기 위한 문구로 쓰였다. 그 외에도 초등학교를 입학하면서부터(그 이전부터 시작되기도 한다) 시작되는 끊임없는 경쟁과 평가 등으로 단련된 한국인들이 대기업에서도 얼마나 피를 말리는 경쟁레이스를 펼치는지, 태어나면서부터 부모님을 통해 단련된 덕분에 상관의 행동을(불합리하고 모욕적인 행동이라 하더라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행동이라든지, 얼마나 미친듯이 야근을 하면서 일을 늦게까지 하는지, 상관이 도착하는 시간을 위하여 외국경찰에게 교통통제를 해 달라고 할 것을 요구하라고 부탁한다는지(외국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등 외국인의 눈에서 본 온갖 한국인들의 이상한 점들이 나열되어 있다. 또한 인간적으로 한국임원들과 친해지고 싶었으나 결국 그러한 관계를 하나도 만들지 못하고 마음의 상처만 입은 모습도 나오며, 외국에서 매번 노동자를 착취하여 법적인 문제에 휘말리는 대기업의 모습도 나온다. 그러나 한 편으로는 이런 이상한 행동을 하면서 끊임없이 경쟁을 견디는 것, LG를 자신의 또 하나의 가족이라고 생각하고 최선을 다하는 것, 불가능해 보이는 목표를 세웠지만 결국은 해내는 모습, 한국인의 끊임없는 열정과 부지런함 등에는 굉장히 놀라워한다.

 

 저자는 처음엔 한국인들의 장점은 남겨두고 단점을 고쳐, 더 나은 기업문화를 만들고 싶어했지만 주변의 반대에 부딪혀(직간접적인 반대들) 실패했다고 서술한다. 그리고 그 패인을 엘지에서 한국인보다 더 한국적으로 행동하지 못했고, 그 시스템 안에 들어가지 못했다는 점에서 찾는다. 저자는 자신이 반은 한국기업인이라고 말하지만 내가 보기에 그는 여전히 한국에 잘 융화되지 못했고 한국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외국인 중 한 명으로 보였다. 불합리한 일에도 복종하는 것을 태어나면서부터 부모님을 통해 익혔다고 생각하다니, 이 부분은 좀 충격적이었고 그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는 다른 아시아 기업의 CEO로 갈 지는 몰라도, 아마 다시 한국의 CEO가 될 것 같지는 않다. 전체적으로 약간 한국에 질린 뉘앙스였기 때문이다.

 

 이 책은 전문 작가가 지은 책이 아니고 외국인의 얘기를 번역했기 때문인지, 내용이 깊이 있지 않다. 책의 내용은 어렵지 않고 순식간에 읽히지만, 자신이 이상하다고 생각했던 기업문화를 나열하는 데 그쳤다. 전체적인 뉘앙스는 매우 비판적이지만, 직접적으로 비판하지는 않는다. 비판을 하더라도 주변인의 얘기를 통해 한국의 단점을 제시한다. "누가 이랬다더라"하는 식으로. 또한 본인이 생각했던 문제점에 대한 대안점도 깊이있게 제시하고 있지 않다. 그렇기에 훨씬 심층적으로 비판 할 수도 있었던 경험과 글이 외국인의 단순 경험 나열에 그친 것 같다. 한국의 기업현실을 비판하려고 했지만 현실 고발이라고 치기엔 20프로 부족하고, 그렇다고 해서 진지한 대안점을 찾지도 않았다. 참신한 눈으로 본인이 직접 겪은 한국을 쓴 것은 좋았지만, 문제제기만 하고 끝나버린 찝찝한 느낌이다.

 

 마지막으로 기억나는 문구가 있다. 저자가 한국 대기업에서 일하고 있을 때 어느 날 아들이 말했다고 한다. "아빠 저는 절대 LG제품을 쓰지 않을 거에요. 왜냐하면 LG가 아빠를 뺐어갔기 때문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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