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낙 인기 있는 드라마였고 주인공들의 연기력 또한 뛰어나 몇 년이 지난 지금도 당시의 감동을 잊을 수가 없다. 허준, 그는 조선 최고의 명의이자 의사들이 본 받아야할 위대한 생명존중의 정신을 지니고 있었던 뛰어난 학자였다. 동의보감은 그가 중국과 조선의학을 집대성한 한의학의 백과전서다. 그런데 우린 결과만을 놓고 인물을 평가하는 경향이 짙다. 한 인물의 삶에는 그가 느꼈던 수많은 경험과 감정들이 녹아있다. 양반이 주류인 사회에 천민태생으로 정1품에 오르기까지 누가 감히 그의 인생횡보를 가늠이나 할 수 있을까?

소설 동의보감은 오랜 기간 베스트셀러로 자리를 굳혔던 책이다. 워낙 사실적이고 치밀한 구성력이 돋보이는 작품으로 허준의 일대기를 통해 조선 의학의 정수를 보여준다. 작가는 일찍이 타계하긴 이 은성님으로 거상 임상옥을 비롯한 수많은 드라마를 집필하신 분이다. 허준은 천첩의 자식이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아버지가 고을수령으로 어려서부터 어머니의 훈계를 받들어 글을 배웠다는 점이다. 그는 과거를 보러 떠나는 또래의 친구들을 보며 울분을 터뜨리지 않은 날이 없었다. 아무리 공부해도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고작 기생들의 품 안에서 글을 안주 삼아 떠드는 것 밖에 없었으니, 신분이 주는 압박감과 사회의 부당함에 얼마나 심한 고통을 받았을까?

그는 신분이 없는 곳으로 떠나는 꿈을 꾸었다. 하지만 아버지의 허락 없이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었다. 소설은 허준이 눈이 덮인 산길을 내려오다 다희를 만나면서 시작된다. 인적이 드문 밤중, 눈길을 따라 내려온 다희의 모습에서 허준은 알길 없는 묘한 감정을 경험한다. 결국 일이 꼬이려고 했는지 죄인인 아버지를 둔 다희를 보며 허준은 그녀와의 감정이 일순간 적이라는 것을 깨닫지만 아버지의 죽음으로 그는 언감생심, 어머니의 중재로 다희를 아내로 맞이하게 된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천민이라는 지워지지 않는 신분이 있었다. 아버지는 흔쾌히 허준모자를 신분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도와준다. 아버지 역시 성공에 대한 갈망이 큰 허준이 새로운 삶을 통해 자신의 의기를 표출하기를 기대했을 것이다.

소설의 백미는 허준과 당대의 명의 유의태와의 만남이다. 허준은 괴팍하고 잘난체하는 유의태와의 첫 만남을 통해 그의 신비로운 의술에 매료된다. 하지만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약초를 캐고 검수를 받는 일뿐이었다. 유의태 역시 허준의 비범함을 익히 알고 있었다. 허준은 의술에 자신의 인생을 걸기로 한다. 일에 대한 열정이 생기면 아무리 어렵고 고단한 일도 일이 아니라 즐거움의 대상이 된다. 낮에는 약초를 캐러가고 밤에는 약초의 효과에 대하 공부하는 사이, 허준은 유의태의 외동아들 도지의 책에 매료되고 귀동냥으로 들은 부자간의 의학문답을 나름대로 정리해 나간다.

조선시대엔 허준 못지않은 실력을 지닌 어의나 내의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왜 우린 허준을 조선 최고의 명의로 기억하는 것일까? 이는 그가 이룬 위대한 의학적 업적이 가장 큰 작용을 했지만 그의 스승인 유의태의 의학 철학에도 기인하는 바가 크다. 허준은 유의태와 도지가 밤마다 되뇌던 진정한 의술에 대한 사고를 자신의 것으로 승화한 인물이다. 유의태는 심의를 자신이 지켜야할 평생의 의술로 생각했다. 의술에 대한 본질이 상업적인 대상으로 바뀐 지금 눈빛만으로도 환자의 마음을 안정시킬 수 있는 따뜻한 의사가 있을까? 오히려 망의나 사의가 훨씬 많지 않을까? 숨막힐둣한 속도감과 반전을 거듭하는 소설 동의보감, 파란만장한 허준의 일대기를 그려본다.

 

[네이버 북카페를 통해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된 서평입니다.

본 서평은 작성자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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