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후반, 가공할 화력을 앞세운 서구 열강은 전 세계를 식민지화 합니다. 그들의 표적은 엄청난 자원과 인구를 자랑하는 아시아에 집중되었습니다. 세계는 정복국과 식민지로 나뉘어져 갔으며 중앙아시아의 조그만 나라 티베트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달라이라마와 성지 라싸로 잘 알려진 티베트 변방엔 투스라는 부족장이 세를 이루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산 너머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길 없는 부족민들은 투스에게 절대적 복종을 합니다. 투스는 그들의 생사여탈권을 가지고 수천의 자유민들과 노예들, 그리고 소족장을 거느리며 자신의 세를 과시합니다. 심지어 라마라 해도 투스의 말을 거역하는 건 죽음뿐입니다.

난 마이치 투스가문의 둘째 아들입니다. 내가 지금까지 살아있는 것은 누구나 인정하는 바보여서입니다. 절대적인 권력을 가진 투스는 장자 승계원칙이 있어 내가 정상적이거나 똑똑했다면 아마도 형이나 아버지에게 죽임을 당했을 것입니다. 내가 바보인지는 모르겠지만 사실 난 마음속에 있는 말과 뱉어낸 말이 잘 일치 하지 않아서 많은 곤란을 겪기도 합니다. 정상적이지 않는 다는 것, 중국인인 어머니는 바보인 나의 모습에 긴 한숨을 내 쉬지만 난 지금 무척 행복함을 느끼고 있습니다. 내 곁은 언제나 나를 따르는 두 명의 용사와 촐마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노예입니다. 하지만 내가 그들과 주고받는 눈빛은 친구 이상의 것을 가지고 있습니다. 촐마는 나에게 남성을 알게 해 준 푸근한 시녀입니다. 그녀는 바보인 나를 가장 잘 이해해주고 나의 마음을 받아준 유일한 여성입니다. 그리고 용맹스런 망나니 얼은 끝까지 제 곁을 지켜줍니다. 전 지금 투스의 이야기를 하려합니다. 티베트 변방에 잠시나마 존재했던 투스시절, 혀를 잃은 사관 덕택에 우리의 역사는 누군가에게 전해지고 있습니다.

아버지 마이치 투스는 왕뻐 투스의 도전에 중국관리를 만나러 갑니다. 황이라 불리는 중국관리는 기관총과 가공할 화력으로 왕뻐 투스를 견제합니다. 하지만 그가 떠나기 전 주고간 씨앗은 투스 민족의 삶을 완전히 바꾸어 버립니다. 투스민족은 전통적으로 옥수수와 곡물을 재배하며 살아왔습니다. 황의 위치가 워낙 커서 그런지 아버지 투스는 모든 농장에 씨앗을 심습니다. 추수가 가까워 올 무렵 아버진 주체할 수 없는 욕정에 소족장의 아내를 탐합니다. 빠알간 열매와 흐느적거리는 줄기 잎은 양귀비였습니다. 그 후 부족민들은 아버지를 그리 신임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아버진 양귀비로 엄청난 돈을 벌었습니다. 지하 감방을 두 개로 나누어야 할 정도로 은돈은 가득 찼습니다. 문제는 이러한 부를 독차지 하고 싶은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아버진 양귀비 씨앗이 다른 투스지역으로 가지 않기 위해 갖은 방법을 동원하지만 결국 투스 전체 지역은 양귀비로 뒤덮이게 됩니다.

난 점점 커가면서 ‘나는 누구인가?’ 라는 의문에 쌓이게 됩니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나를 바보로 생각합니다. 아버진 나를 남쪽으로 보냅니다. 형이 만들어 놓은 성채에 있는 곡식을 팔기위해서입니다. 저의 짧은(?) 생각으로 아버진 양귀비 대신 옥수수와 곡물을 심었는데 운이 좋게도 풍년이 들어 부족민들이 아주 좋아합니다. 하지만 인근 투스족들은 양귀비만 심어서 굶어죽는 사람이 속출합니다. 전 아버지 명령대로 보리가격을 10배로 올려받기위해 인근 지역 투스지역민들에게 보리냄새를 풍깁니다. 투스들은 나를 바보로 여기며 무시하고 다가옵니다. 하지만 그들이 가져간 것은 부족민들의 배고픈 원성입니다. 나는 배고픈 사람들을 구휼하고 그들에게 인심을 베풉니다. 또 한 가지, 시장을 만들기로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사고 팔수 있는 시장을 만들어 물물교환을 하고 거래를 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는 곡식을 가지고 있는 나에게 엄청난 이익과 명예를 가져다줍니다. 점점, 난 똑똑한 바보라는 소리를 듣게 됩니다.

타나는 여투스의 딸입니다. 그녀는 첫눈에 반할 정로로 아름다운 미모를 지니고 있습니다. 난 그녀를 아내로 만들고 싶습니다. 그래서 여투스와 거래를 하고 아버지의 승낙아래 약혼을 합니다. 하지만 그녀는 날 사랑하지 않습니다. 단지 내가 바보라는 이유 때문입니다. 앞으로 몇 년을 그녀는 자신이 원하는 남자를 만나러 다닙니다. 그녀가 원했던 것은 권력과 부가 전부였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 어느 것도 그녀 곁에 있지 않았습니다.

나를 시기했던 형의 죽음으로 난 투스에 오를 가능성이 아주 많았습니다. 하지만 난 마지막 투스가 되지 못했습니다. 투스제도를 인정했던 청의 몰락, 국민당의 출현, 중일전쟁, 그리고 국민당과 공산당의 전쟁등이 우리 곁을 휩쓸고 지나같고 큰 탱크를 앞세워 우리땅을 점령한 공산당이 어느 것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결국 투스는 아버지로 끝나게 됩니다.

사실 이 소설을 읽기 전 티베트에 아는 건 고작 달라이라마에 관한 전설과 중앙아시아의 변천사 정도였습니다. 몇 백 년을 이어온 투스에 관한 이야기는 영원히 들을 수 없는 전설이었을지도 모릅니다. 마치 고대신화에 나오는 왕권쟁탈전과 바보를 가장한 현자의 이야기는 한민족을 위대한 성지로 인도할 것만 같은 깊은 철학을 배우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들은 현실을 이야기합니다. 무력 앞에서 무릎을 꿇는 노예들, 또 다른 권력 앞에 죽임을 당하는 투스와 부족민들, 결국 세상은 힘과 권력이 모든 것을 파괴하고 바꾸어 나간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현재 티베트인들은 절규에 찬 목소리로 독립을 외치고 있습니다. 하지만 굳건한 권력은 요지부동입니다. 색에 물들다는 티베트 근대사를 통해 잃어버린 그들만의 역사를 전해주고자하는 작가의 강한 바램이 깃들여있습니다. 꿈틀거리는 인간의 욕망, 부를 향한 집념, 권력 앞에 힘없이 쓰러지는 희망, 가만히 생각해 보면 현재와 별다른 차이가 없다는 생각입니다. 결국 우린 역사의 과정 속에서 ‘나’라는 존재를 인식하기도 전에 사라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